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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마태복음 17:1~8; 누가복음 9:28~36 에 동일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요한은 말년에 그의 복음서에서 이 것을 침묵하고 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이 있기 전에 주님께서는 공관 복음에서 이 말씀이 기록되기 바로 앞에 동일하게 자신의 십자가의 희생과 함께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각오에 대해 말씀하셨다. (마16:21~27; 막8:31~38; 눅9:22~27) 그 공통적인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간절히 부탁드리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했다가 오히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라고 호된 책망을 들어야 했다.
연이어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것이 결코 양탄자 위를 걷는 영광이 아니라 고난의 길임을 각오시키신 것이다. “ …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는 제자들의 고난에 대한 각오를 말씀하셨고 영광과 권능을 기대했던 제자들에게는 이 말씀은 뜻밖의 충격이었었을 것이다.
오늘도 동일하게 주님을 따른 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각오해야만 한다는 원리는 꼭 같다.
주님께서 그러한 말씀에 절망하는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러한 신비한 영적 책임을 주신 것이다.
Ⅰ.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의 체험이다.(2)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
주님께서는 열 둘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훈련을 시키셨다. 그러나 언제나 중요한 일에는 이 세 사람을 데리고 다니셨다.
야이로 라는 회장장의 딸을 고치러 가셨을 때도 그러셨고 “…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눅8:51)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물론 그러셨고(마26:36~46,막14:32~42; 눅22:39~46) 이들은 역시 복음의 역사에서도 가장 귀중한 역할들을 감당했다. 은혜는 언제나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이 체험하게되는 것이다.
Ⅱ.우리 모두는 예수의 영광을 목격해야 한다.(2~4)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 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1.예배를 통해서 경험되어지는 영광이다.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우리는 매 주일을 지난 엿새 후에 또 다시 같은 영광을 경험한다. ‘안식 후 첫날’ 혹은 주님의 부활의 날이다. 누가복음 9:28에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일을 포함한 계산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 주님의 날마다 새로운 신비를 체험하는 것이다. 세상의 체험의 연장이 아닌 전혀 다른 하늘로부터의 체험이어야만 한다. 예배를 통해서 이러한 감격과 흥분이 있지 못하면 엿새동안의 세상의 고난과 역경을 감당할 수 없다. 예배 중에 어떤 순서를 통해서 은혜를 경험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부으시는 구속의 은총과 십자가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는 고백이 되어질 만큼 감격할 수 있어야 한다.
2.황홀과 감격을 경험해야 한다.(5~6) 주님의 영광과 위엄을 체험해야 한다.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 세 제자들은 분명 다른 때에는 맛보지 못한 영광을 체험하고 감격에 떨고 있었다. 다른 복음서들에 보면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마17:6) “ …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눅9:3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저희 앞에서 변형 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17:2)
3.율법과 예언서가 확증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왜 여기 주님으로 더불어 말씀하시는 사람이 엘리야와 모세였을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일 수도 있고 위대한 사사 기드온 일 수도 있고 영광의 왕 솔로몬이나 위대한 이스라엘의 영웅 다윗일 수도 있을 텐데;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해서 가나안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느보 산에서 죽은 모세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회오리바람 가운데 승천한 엘리야 일까?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자신의 구속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보면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7) 라는 말씀을 보면 바로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의 대표성을 이 두 선지자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5:39) 사실을 이해할 수가 있다.
4.십자가의 희생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누가는 이를 더 자세히 기록하기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눅9:30~31) 변화된 영광 가운데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의 논의는 바로 만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실 주님의 희생이 그 중심이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서 감격해야 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군요 주님께서 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셨군요..!” 나를 위한 희생의 십자가를 새롭게 체험하는 것이 가장 큰 은혜요 감격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바울은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예배 중에 회복하는 감격은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어떠한 체험과 은혜보다도 중요하고 매주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주님을 위해 살 각오를 새롭게 가지는 것이다.
Ⅲ.이 체험을 통해서 우리 각자가 변해야 한다.(5~7)
(5)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7)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은 아직도 부분적이다. 그러나 매 주님의 날마다는 우리는 전혀 색다른 말씀과 영광과 사랑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이다.
1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7f)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 ” 무엇보다도 예배의 귀중한 경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들었던 이스라엘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 …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출19:16~20)
그러나 복음 속에서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후로는 두려움과 공포의 경험이 아니라 평화와 은혜의 음성으로 들려졌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6~17)
2.이러한 격정의 감격은 최종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어야 한다.(7b) “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우리 신앙의 모든 신비한 체험들은 반드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데로 결과되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왜냐하면 이런 은혜의 체험은 바로 이를 위해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말씀과 명령을 순종치 않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시는 체험이라고 할 수 없다.
3.이 변화는 당연히 우리 각자의 변화를 요구하신다. 여기에 쓰인 “저희 앞에서 변형 되사”는 바울의 그리스도인을 향한 당부에서 쓰여지고 있다. 첫 번째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이것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이 세상과 다른 변화를 거듭하여 교회로서 성도로서 합당한 영광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당부이다. 참으로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죄에서 거룩한 형상으로 화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미래에 완성될 변화를 소망하는 표현이다.
달이 해의 빛을 반사하듯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세상에 반사해야만 한다.
Ⅳ.절망의 세상으로 내려갔을 때에도 이 체험을 가지고 이긴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베드로는 황홀경에 빠져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 신비한 체험을 하고 있는 그 산 바로 아래에는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다른 제자들에게 대려와 고쳐달라는 한 아버지의 탄식과 함께 시달리며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있었다.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쁨과 영광과 신비가 충만한 경험 속에 머물기를 바라고 그 감격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끼리 모여 살고 저 험한 세상에 내려가지 않기를 바라는 욕심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또 하나의 이기적 욕망이다.
믿는 사람끼리 함께 모여 살고 세상 꼴을 아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들 생각하지만 그것은 신비를 체험하고 천국을 맛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PIMBY(please, in my back yard) 현상이다.
주님께서 희열과 감격의 체험을 주시는 것은 바로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세상을 주님께로 이끌기 위하여 주시는 체험임을 이해한다면 언제까지나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는 이기적인 욕심은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초막[(헬)skene 천막, 초막, 거처, tent]에 사는 인생들이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계속해서 변화 산에 머물 수만은 없다. 반드시 세상에 내려가야 하고 이것이 신비와 황홀을 체험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바로 그 변화 산에서의 체험 같은 감격을 가지고 세상의 죄악과 고통을 넉넉히 이긴다. 바울 사도는 고백하기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예배에서 경험한 영광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신앙인의 삶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고 세상에 속할 수는 없지만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외면하고 나 혼자 또는 우리만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는 이기적인 욕심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심을 알아야 한다.
Ⅴ.결론.
우리는 매 주님의 날마다 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면서 변화 산의 체험을 하는가?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와 위기를 뒤집을 만한 체험을 하는가? 주님의 신비를 체험하는 사람은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이 험한 세상의 유혹과 시험의 세파를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주님의 영광과 위엄을 맛봐야 하고 이 기회는 늘 열려 있다. 그 은혜는 주님의 미래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이며 그로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데로 가야만 한다. 그리고 이 주님의 영광을 맛보는 감격은 나를 변화시키는 모습으로 가야만 한다. 이런 주님의 영광의 변화는 나만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잃어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시는 것이다. 오늘도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변화된 주님과 우리 각자의 변화를 체험하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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