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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요 10:7~10 2003-05-13
나는 양의 문이라!  
우리는 주님께서 요한 복음 속에서 일곱 번씩이나 자신을 가리켜 무엇,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을 우리 삶 속에 생각하고 있다. 지난 두 번에 걸쳐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요6:35) 라고 선언하신 말씀과 “나는 세상의 빛이”(요8:12) 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했었다.

이러한 선언은 적어도 주님께서 우리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긴한 정도를 넘어서 절대적인 분이심을 성경은 선언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문이니” 라고 확인하시는 음성을 듣게된다.

사람은 태어나서 병원 문을 나서면서 자동차 문을 드나들고 자신의 거쳐하는 문과 이웃과 친척의 문을 들어 다니고, 단계적으로 학교 문을 들락거린 후에 직장의 문을 찾고 그 외에도 국가의 의무를 위한 군대의 위병소 같은 문과 결혼을 위한 예식의 문, 관공서와 투표를 위한 문, 그리고 어디든지 담으로 둘러쳐진 곳이면 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관 뚜껑을 닫아 못질할 때까지 그야말로 문을 여닫으며 인생의 길을 간다. 어떤 문은 사람이 미어질 정도로 복잡한 문이 있고 또 어떤 문은 문의 역할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한가한 문이 있다. 되도록 병원 문은 한가했으면 좋겠고 교회의 문들은 북적거렸으면 좋겠다.

그런가 하면 이문에 잘 들어왔다고 생각되는 문이 있는가 하면 어떤 문은 들어서서 후회하는 문도 있다. 떳떳한 앞문이 있고 구린 뒷문이 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의 문이 아닌 이상 뒷문은 없어야 한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예배당을 들어오셨는지… 참으로 주님의 품안으로 들어오는 감격을 가지셨기를 …

Ⅰ.주님은 양의 문이시다.(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우리는 곧잘 양을 비유할 때는 언제나 온유함을 말하게 되고 순종의 표상으로 모델을 삼는다. 양은 스스로는 절대로 포악한 동물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목자에게 의존하고 순종하므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주님은 바로 그러한 양의 문이시라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포악한 사자나 늑대가 들락거리는 문이 아니라 온유한 성품을 가진 양의 문이라는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바로 양의 성품을 가지셨다고 하시면서 힘겨운 사람들을 초청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라고 말씀하셨다. 밀림에서는 힘 샌 동물이 자유스럽고,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잃고 동물화 되어 가는 세상일수록 힘의 논리가 효과가 있다. 그러나 예로부터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하였고 주님의 산상보훈에서도 예수께서는 같은 말씀을 교훈으로 주셨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주님은 양의 문이시다. 예수는 스스로의 힘을 부인하고 목자이신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순종하는 양의 보호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허세를 부리지 않으신다. 늘 옆에서 큰소리 치고 허둥대었던 베드로 사도가 그의 말년에 주님에 대하여 말하기를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2:23) 라고 자신과 대조되는 주님의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어리석고 둔하며 양순하기 이를 데 없는 양이지만 목자만은 확실히 알아보는 것도 양의 특별한 속성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목자 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다 가짜였었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양은 순복 할 수가 없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보내신 진정한 선지자들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8) 이 말씀은 바꿔 말하면 진정한 양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은 반드시 듣는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타락하여 멸망으로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신 진정한 목자이시고 이러한 사랑과 희생의 주님께 순종이 안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양일 수 없다는 말씀이다.

문은 바로 안과 바깥을 구분해주는 경계선이다. 이것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요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는 경계선이며 종국적으로는 천국과 지옥을 분리하는 경계가 될 것이다. 목자의 얘기는 다음에 다시 생각하겠지만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10:16)

아직도 분명히 보호를 받지 못하는 담 밖의 양들이 있고 이들이 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한 문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데 주님의 음성은 바로 오늘 우리를 통해서 듣게 될 것이므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훼손하지 않도록 구별된 삶을 살면서 전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이 모든 양들이 들어갈 구원의 문이다.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다른 문은 없다. 믿으시기를 …

Ⅱ.들어가면 구원을 얻는 문이다.(9f)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

이 문 즉 예수 그리스도는 그냥 열고 들어감으로 끝나는 문이 아니다. 바로 들어가기만 하면 영원한 보호와 영광이 약속되어 있는 문이다. 세상에도 중요한 문들이 있고 이를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①꼭 거쳐야 하는 문이 있다. 세상에서 그런 문들은 어떤 것들인가? 교육과 국방의무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문이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사람들은 예외가 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문을 거치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불이익과 제약을 받는다. 그것보다도 중요한 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라는 구원의 문이다. 세상에서 꼭 거쳐야 하는 문을 돌아서 가면 일 평생에 어려움과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손해를 보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영원히, 영원히 저주와 슬픔을 각오해야만 한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마귀 사탄에게 속아서 인간 스스로가 만든 비극이다.

이러한 비극을 불러들일 죄를 해결할 다른 방법은 이 인류에 아무 데도 없고 이것을 해결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이것은 선택의 항목이 아니라 모든 인생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절대 필요한 과정이다.

②들어가기 까다로운 문이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들어가고자 하는 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공부하는 학생들이면 꼭 들어가 보고 싶어하는 서울대학교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공통적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심은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열어주지 않은 문들이 이 세상에는 많다. 여러 가지 ‘국가 고시’들도 그렇고 ‘자격시험’ 같은 것은 물론이고 운동선수들의 기대도 그렇다. 어는 야구팀이나 올림픽 종목 모두 들어가고 싶어하는 등용문(登龍門)이지만 모두에게 열려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 라는 은혜의 약속이다. 이것은 우리 일평생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영원으로 연결되는 필수적인 문, 생각 같아서는 아무에게나 열어줄 수 없는 귀중한 문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은 한계가 없다. 이 귀중한 생명으로 가는 영생의 문을 “누구에게나” 열어 놓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나와 여러분들이 이 은혜의 자리에 있음을 감사하자. 세상의 기준처럼 못생긴 사람, 키 작은 사람, 공부 많이 못하거나 잘하지 못한 사람, 돈 없는 사람, 권력 없는 사람 다 가린다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잘 생긴 사람이나 공부를 잘 한 사람은 아멘이 잘 안 되는가?) 그러나 우리 하나님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해서 들어오도록 열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할렐루야!

범죄로 인하여 포악한 짐승의 피를 가진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악의 피가 해독되고 생명의 피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볼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Ⅲ.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 문이다.(9b)

“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과 꼴이다. 중동지대에서 양떼를 몰고 다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정도로 풀이 없다. 뉴질랜드나 호주 같은 목초지 하고는 전혀 다른 형세다. 여기 꼴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요긴한 것들을 말한다. 인생에 필요한 것은 대단히 많고 세상은 그것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먹을 음식 입을 옷, 마실 물과 공기, 거쳐와 가족, 그리고 보호와 안전, 그러나 사실 이런 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고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못된다. 모든 사람은 행복과 평화를 원하지만 이런 꼴은 세상의 마트(mart)나 백화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들어가기 어려운 문을 통과하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필요한 모든 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 할렐루야!

주님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자에게 확실히 약속하신다.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꼴을 다른데서 찾으려고 한다. 혹시 오늘 주님 앞에 앉아있는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자. “들어가며 나오며”는 항상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고 “꼴을 얻으리라” 값없이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에 절대적으로 요긴 한 것은 오늘 우리는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바라고 사회적 안정을 요구하는데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드 있고 풍성히 있음을 기억하다. 그러나 이것의 죄진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며 죄의 값이 치러져야 하고 죄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고 행복이나 평화를 맛보기 전에 죽어야 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이를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가 받을 저주와 형벌을 십자가에서 감당하신 것이다. “너희들이 받을 저주와 형벌은 내가 이미 십자가에서 다 치렀다. 이제는 허락된 평안과 행복을 내 안에서 풍성히 누려라!”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제 남은 주님의 약속은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는 것이다. 아직도 다른 곳에서 인생의 풍요를 얻어보겠다고 헛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님을 향해 눈을 드시기 바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 귀한 것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양이라면 주님은 우리가 싱싱하고 풍성한 풀과 깨끗하고 단 물을 풍성히 누리기를 바라신다.

Ⅳ.생명을 풍성히 얻을 수 있는 문이다.(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께서 앞에서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8) 라고 말씀하셨다. 거짓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자신을 앞세운다. 사람이 앞서고 물질이 앞서고 명예가 앞서는 것들은 결과적으로 주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도며 강도이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 모두를 멸망으로 끌고 갈 뿐이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10f) 주님보다 앞세우는 모든 것들은 누가 무어라고 하든 우리를 침륜과 멸망에 이르게 한다.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고 선언한다. 주님을 앞서서 부하려 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 풍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멸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b)고 약속 하셨다.

다윗의 감격스런 고백은 바로 이러한 약속을 근거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시23: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늑대나 사자의 문이 아니고, 하이에나의 문이 아니고 양의 문이시다. 주님은 그러한 악한 존재들은 자신에게 그대로 머무르는 것을 결코 허락지 않으신다. 다만 죄로 인하여 포악한 사자와 같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100% 삶이 바뀌어 주님께 절대적 순종과 온유의 양들의 문이시다. 세상에서는 육신적(肉身的)인 삶이라도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통과하기 어려운 문을 거쳐야 하지만 그것도 완전히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고 그에게 들어오는 자들에게는 들어가며 나가며 인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꼴을 풍성히 얻게 하신다. 주님을 앞서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약속이 있다고 할지라도 거짓 것이며 속이는 것이다. 우리 주님만이 불변하는 사랑과 은혜의 문이다. 우리는 이 달을 사회적으로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데 가정의 행복과 평화 이 모든 것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 안에 모든 것이 있다. 행복과 만족을 다른데서 찾으려고 하는 대신에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 안에 있다면 자신의 가진 행복과 만족을 확인하여 어디든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넘치도록 누리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