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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가복음 21장은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과 함께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의 멸망과 주님의 재림 때 일어날 일을 함께 말씀하시면서 깨어있을 것을 당부하시는 내용으로 연결되어 지고 있다.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과 혼란, 그리고 사랑의 고갈과 장차 세상에 임할 재난과 공포, 그런 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의 환난, 그러나 철저한 보호의 약속[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17~18]과 함께 재림의 징조와 함께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 질 것인데 그런 가운데서 깨어 기도하는 삶을 당부하시면서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36)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 말씀과 제목은 별로 연관이 없는 듯 보여지지만 대단히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말씀이라 믿는다. 우리는 대개의 경우에 입으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고 격려하면서도 그것이 우리 신앙의 삶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것은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와 삶의 방법을 가름하는 중요한 주안점이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이러한 신앙의 과제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사실적인 자신의 삶에 긴장을 가져오는 귀중한 교훈이었으면 한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25~32에서 자연 속에 자라는 식물이나 새들의 양육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면 ‘그보다 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얼마나 더 귀하게 보살피시겠느냐?’ 는 교훈과 함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3~34)는 귀한 신앙적 교훈을 주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의미는
Ⅰ.우리 인생의 목표를 주님의 다시 오심에 맞추라는 의미로 이해하게 된다.(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 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표준개정)
여러분들의 인생 목표는 어디에 있는가? 영어에서는 목표를 "골(goal)"이라고 한다. 마치 운동 선수들이 상대의 네트에 공을 차 넣으려고 있는 힘을 다하여 땀흘리고 뛰는 것처럼 인생의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전력투구(全力投球)하기 위한 목표로서 우리의 골이 가치가 있고 분명한 것인가를 늘 확인할 필요가 있다.
1.어떤 일이나 상황에서 항상 하늘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이나 상황을 대하면서 이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는 손익 계산을 먼저 따진다. 그보다 좀더 낳은 사람은 우리 사회에 득이 되느냐, 그보다 좀 훌륭한 사람은 그것이 국가에 이익이 되느냐 묻고, 박애정신을 가졌다고 할 정도의 사람은 인류의 손익을 계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개인의 안녕과 평안과 이익보다는 어떤 일에든지 그것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 교회에 득이 되느냐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고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부하고 있고 고린도전서 10:31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직장을 선택해도 사업을 해도 결혼을 해도 이것이 내가 주님을 섬기는데 장애가 되지 않고 영광이 되겠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이 시대에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시고 또 귀한 존재이다. 여러분들은 모두가 이런 사람이 되시기를…
우리 땅에서의 인생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원한 목표가 분명한가? 또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 공부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까지 하다. 오로지 점수를 더 얻기 위하여 시험을 잘 치는 요령만 터득하는 그런 식의 교육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방법이다. 또 설령 이 땅에서는 그럴싸한 요령을 터득해서 점수를 잘 받는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우리 인생의 목표에는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리석을 정도로 우직하게 곧이곧대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오늘의 안타까운 현상은 세상에서 인생의 요령을 중요시 하다보니 하나님 앞에서까지 요령을 부리려고 하는 신앙의 자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는 절대로 요령을 부려서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요령을 피우려고 하는 자세에 대해서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천국이 요령꾼들로 채워진다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도록 요령으로 적당히 들어가는 사람이 천국에는 없게 하신 것이다.
2.믿음의 사람들의 인생의 목표는 이 세상이 아니다.
즉, 재림을 준비하며 사는 삶을 말씀하는 것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믿음의 사람들의 목표는 다시 오셔서 우리를 대리고 들어가실 새 예루살렘 영광의 하늘 위의 집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권면 하시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고 당부한다.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집이 있어도 두고 갈 집이며 은행의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주님 오시면 두고 가야하고 죽고 못사는 사랑하는 사람도 같은 믿음 갖지 못하면 두고 가야 한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 둘 수 없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당부의 말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씀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삶을 되는대로 흥청망청 살라는 말씀이 아니다. (34)"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 날이 갑자기 닥쳐올지도 모른다. 조심하여라”(공동개정)
세상에서 허랑 방탕하게 되는대로 사는 사람은 천국의 사람이 아니라는 성경의 경계는 얼마든지 있다. 오늘 말씀의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에서는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24:44~51)고 무서운 경계를 주고 계신다.
(3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는 경계는 천국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경계의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①스스로 조심하라. [헬 prosecho(프로쎄코), 가까이 가져오다, 마음을 돌리다, <마6: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to attention to; 마음을 ~에 두다, 전념하다, 착념하다, 주목하다, 관심을 가지다 등등] 베드로 사도는 영적으로 조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경계하여 이르기를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 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벧후2:14) 는 무서운 경계를 주고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②마음이 둔하여 진다. [헬 bareo(바레오), baryno(바뤼노) 무거운, 힘든에서 유래 ‘힘이 들게, 지치다, 곤하다] 짐을 무겁게 진 사람은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한다. 우리의 영혼이 짐진 듯이 세상으로 가라앉는다면 우리 영원한 목표에 다다르기 어렵게 되고 말 것이다. ③그 날이 덫[헬 aiphnidios(아이프니디오스) 갑작스럽게 에서 유래 ’뜻밖의, 홀연히, 예측하지 않은‘]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게 될 수 있다. 바울은 신앙으로 경성 하는 사람들에게는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5:4~5) 라고 확인시켜 주고 있는데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마지막이 비극의 시간이 되 수밖에 없다는 두려운 경계이다.
Ⅱ.깨어 기도하는 삶을 의미한다.(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목표를 정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인생의 목표가 수없이 바뀐다. 그러나 하늘의 목표는 분명한 이상 바뀌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어린 때로부터 하늘의 이상을 보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 요셉). 그러나 우리 모두는 목표가 분명한 이상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 목표를 위하여 모든 시간과 힘을 다 바치게 되어 있고 그 목표를 어떤 방법으로 성취할 것인가에 고심하게 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이 어둠의 역사를 꿰뚫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보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런 당부를 주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표준개정)
고난과 역경을 피하는 능력도 기도로 가능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일도 기도로 가능하고 절망을 꿰뚫어 소망을 보는 능력도 기도로만 가능하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복은 세상에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힘을 끌어와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기도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그러나 또한 깨어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 가운데 가장 지키기 어려운 말씀인 듯 하다. 우리가 인생에서 저지르는 실수를 보면 많은 경우에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데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하신 후 마태복음 26:36-46; 마가복음 14:32-42; 누가복음 22:39~46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사건이 나온다.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눅22:40) 다시 46절에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하셨지만 기도하지 못한 베드로는 예수를 잡으러 온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베고(49~51) 마지막에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실수(54~62)를 저지르고 만다.
오늘 하늘의 목표를 가지고 산다고 하는 우리들이 기도 없이 행하는 일들에 얼마나 실수가 많은지 모른다. 주님은 하늘의 영광에 목표를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 하셨지만, 기도하지 않고 경솔하게 결혼을 결정하고, 깜빡 실수로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고, 성급한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수많은 비극이 기도 없이 행하는 일들 속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 하시도록 하는 대신 우리는 베드로처럼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덤빈다. 그러면서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만다.
만약 우리가 기다리고 깨어 있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셔서 비극을 승리로 바꾸어 놓으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깨어 기다리고 기도하기를 시작하자. 바울 사도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전16:13) 라고 당부하는데 신앙에 있어 용감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로 깨어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경건한 기도의 사람들은 아무리 혼란한 상황에서도 실수하는 일이 적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인생의 목표에 맞게 기도하며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여러분들 모두가 영광의 재림을 사모하고 깨어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되시기를 …
기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의 능력을 제공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①“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②주님 앞에 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자신의 의나 능력을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Ⅲ.적어도 이런 사람들에게는 내일의 염려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마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100M 육상 경기를 하는 사람은 오로지 골인 지점만을 향하여 질주하는 것처럼 인생에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다른 것에 곁눈질 할 필요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100M 경기는 단거리이지만 우리의 경주는 우리 평생에 지속하는 경주요 훈련이기 때문에 속도를 늦출 수도 없고 방황할 필요도 없다. 육상경기에는 단 한사람만이 승리하겠지만 우리의 인생의 경주는 누구든지 골인지점에 확실히 들어가기만 하면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신 주님은 그러한 약속에 거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역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라는 약속을 주고 계시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내일은 언제나 내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는 의미는 하늘을 인생의 목표로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염려란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다. 내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오늘만이 우리의 시간이며 이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와 십자가의 의를 삶 속에 나타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허락된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는 내일 염려를 하지 않는 하늘의 사람들이기를 …
Ⅳ.주님은 이러한 삶이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살전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죄로 인하여 소망을 잃어버린 인생, 죽음과 절망만이 앞에 있는 것이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오직 하나의 정해진 운명이다.
바울은 우리 과거의 비극적인 운명을 논하여 이르기를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11~12) 라고 절망한다.
그러나 연이어 4~5절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고 주님의 구속의 십자가를 찬양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읽어도 싫증나지 않고 감격하게 하는 말씀 역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는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의미 없이 살다가 풀 무성한 인생, 흙으로 끝날 인생들 아니, 지옥의 저주와 영원한 형벌만이 당연히 기다리는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고 죄를 대속 하심으로 소망의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자든지 개든지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피를 흘리셨다. 이 보혈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영혼 속에 충만히 거하시기를 …
Ⅴ.결론.
우리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너무 막연히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목표를 주님의 다시 오심에 맞추고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 항상 하늘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신앙하는 사람들의 인생의 목표는 이 세상이 아니다. 즉, 재림을 준비하며 사는 삶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 분명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게 되고 기도 없이 중대사를 섣불리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물론 내일과 미래에 대한 염려와 공포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사람들이며 이러한 놀라운 인생이 되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러한 자들을 위하여 지금도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 최고의 인생의 목표의 때가 어느 때보다도 가까웠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1~14)
오히려 인생의 이러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을 향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벧후1:9) 고 안타까워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주님의 귀한 약속을 인생에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이세상의 마지막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 희망이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삶이 될 것이다.
[213:4] “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다,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이 말씀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복되신 주님의 이름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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