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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소속된 사회나 기관들의 규모를 따라 생활하고 움직인다.
오늘 우리 사회의 규모는 그 자체가 대단히 저속화되고 무시되는 경향이 일어나고 있다. 이 것은 주님의 재림에 관한 말세의 긴박함을 생각했던 일세기의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도 마찬 가지의 현상을 일으켰던 것 같다.
언제나 말세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적극적으로 그 변화될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지막이 되면 아무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포기형이 있게 되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인의 규모라고 하는 것은 대게 세상의 것들을 초월하고 있지만(세상의 규모로는 자식이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에서는 네가 복 받기 위해서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더 적극적인 당부이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들도 있다. 신앙의 명령이 세상의 일반적인 규모로 생각할 때는 독선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들리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우상숭배하지 말아라!'하는 계명은 세상의 규모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생명을 바치는 일이다.
Ⅰ.신앙 속에서 규모란 무엇인가?
"규모 없이 행하고(여)"(6, 11)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7)
"ajtavktw" 불규칙하게, (도덕적으로)무질서하게, 훈련되지 않고, 무법하게, 게으름을 피우다[aj부정 + tassw =정돈하다, 지정하다, 명령하다, 결정하다]" 본래는 군사 용어로 "대열을 이탈한"이란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NIV - idle = (놀고 있는, 게으른, 헛된,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근거가 없는)로 번역하고 있다. NASB - unruly(규칙에 따르지 않는), undisciplined(훈련되지 않은, 미숙한)로 번역하고 있다.
Ⅱ.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오늘 급하게 돌아가고 바뀌어 가는 세상을 보면서 더욱 혼란을 느끼게 된다. 과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역할은 무엇인가?
2천년 전의 신앙 원리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고 찬양하게 된다. 사실 세상 돌아가는 기준에 신앙이 맞춰져야 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혼란을 겪을까? 생각하면 감사할 것뿐이라는 말이다.
1.신앙의 법칙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다.(6f)"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12m)"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인 기준으로 자신들의 삶의 기준을 설정하고 사실은 세상의 윤리적인 기준에도 미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허다한데 참으로 통탄해야 할 모습이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면 세상의 모든 법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5:13~14) 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2.그것이 바로 믿음의 선진들의 뒤를 따르는 길이다.(7f)"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성경 속의 믿음의 사람들은 그냥 소개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모범을 제시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바울 사도께서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고 당부하고 있고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히13:7)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요한 사도는 그의 생에 말년에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삼1:11) 하였고 바울 사도는 다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하셨는데도 오늘 신앙의 사람들은 오히려 악한 자를 본 받고 세상을 본 받아 신앙이 점점 세속화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은 바로 믿음의 조상들을 본받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 이삭의 순종, 야곱의 열정, 요셉의 성결 등등.
3.믿음의 규모대로 살지 않으면 오히려 일을 만들 수 있다.(11)"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앞에서 우리는 "규모 없이 행하"는 것을 가리켜 '훈련되지 못한' 것이라고 번역되고 있다고 했다.(NASB) 우리의 신앙과 경건이 훈련되지 않으면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벧후2:14)는 경계를 가져야 한다.
마12:30"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눅11:23) 우리는 규범대로 살지 못하면 계속 미끄러지고 다른 신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장애가 되어 일을 만들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4.신앙인은 세상적인 기준에 만족할 수 없다.
우리의 바탕은 유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다. 우리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주님을 기준으로 훈련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미치지 못한다면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상대적인 기준으로 신앙을 견주어서는 안된다.
Ⅲ.하나님의 규모 즉, 성경적인 원리로 사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다.(13)"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여기서 "선"이란 하나님의 규모대로 사는 것이다.
왜 낙심이 되는가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환영받고 칭찬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핍박과 환난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산다면 세상에 평가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신앙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을 산다.
바울은 세상 속에서 진리를 따라 사는 믿음의 사람들을 격려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베드로 사도도 같은 당부를 주고 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20)
하늘에 시민권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은 늘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이상하게 보여질 수 있다. "아버지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붙들어 주셔요!" 저들이 보기에는 혼잣말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늘의 규범으로 사는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고백하고 의논할 수 있다.
때로 우리는 "나 혼자 이렇게 산다고 뭐가 바뀌나?" 또 남들이 말할 때는 "너 혼자 그렇게 산다고 대수냐?"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것은 어리석은 거야!" "한번 사는 인생인데...!"
속지 말자. 나 혼자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믿음의 선진들도 그렇게 사셨다.
외롭고 고독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Ⅳ.결론.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주시는 교훈으로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벧전3:11~13)
세상에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규범이 있지만 그것은 절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규범을 주셨다. 주님의 피 흘리심으로 얻게된 믿음의 규범, 그것은 주님의 오심이 가까운 이 때에 더욱 우리의 삶에 확인해야할 믿음의 도리요, 또 훈련이라 했다. 단순히 주어진 신앙의 규범 그것은 오늘 나를 쳐서 주님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고난이지만 이것은 반드시 우리의 교회와 개인의 신앙에 반드시 세워가야 하는 일생의 과제요 이 혼란의 마지막 시대에 더욱 귀중한 삶의 원리로 믿으시고 성령과 더불어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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