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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빌 4:4~9 2003-08-14
그리하면 …  
성경 속에서 중요하고 좋아하는 낱말들이 많이 있지만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흔한 말씀 중 하나가 바로 “그리하면” 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우리말 접속사(接續詞) 같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어느 단어보다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단어 중에 하나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명령이 나온 다음에는 어련히 따라 나오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약속은 이 “그리하면”의 선택여하에 따라서 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하는 귀중한 분기점(分岐點) 이라고도 할 수 있고 복의 통로가 될 수도 있는 말씀이다. 대표적인 “그리하면”의 내용은 신명기서에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신6:3)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어떤 명령이든지 순종과 불순종의 여부에 따라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가르침이나 깨달음이 모자라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깨닫고 감격하면서도 하나님의 귀한 약속 “그리하면”에서 끝나 버리는 것을 보곤 한다.

오늘 본문에도 “그리하면”이 두 번 나타나면서 약속의 순종으로 오게될 결과들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7) 하신 것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8~9)

우리 모든 신앙인들 특히 신앙의 지도자들의 문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신앙의 삶과 괴리가 된다면 주님으로부터 무서운 책망을 받고 있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도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23:3~4) 우리 각자의 깨달음은 어느 다른 사람이 지켜야 할 교훈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부터 실천해야할 귀중한 주님의 명령이시다.



Ⅰ.그리하면의 의미들 …

[1]“그리하면”은 복의 경계선이다.

하나님의 약속된 복이 사람의 것이 되고 못되는 복(福) 줄이다.

많은 사람들은 복은 좋아하면서도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그리하면” 이라는 선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병폐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정인 “그리하면”을 거치지 않고 “그리하면” 다음의 열매들에만 침을 흘린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뛰어넘어도 “그리하면”을 뛰어 넘어서는 안된다.

[2]“그리하면”은 의미상 동사(動詞)와 같다. 그것은 반드시 행동과 순종을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기뻐하라, 알게 하라, 아뢰라, 행하라” 따라서 “그리하면”은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시킨다. “그리하면” 언제나 우리의 행동을 요구하고 계시는 의미들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3]“그리하면” 이 세상에서 결코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행할 수 없는 것을 결코 주님의 사람들에게 요구하시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명령들은 우리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명령들이다. 또 반드시 주님의 도전을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극을 허락하신다. 때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명령을 주님께서 주실 때는 주께서 친히 감당하도록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어떤 도전이나 충격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셨음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욥(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1:8)이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그것을 당시로서는 대단한 쇼크였지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요구하셨다.

바울 사도를 통하여 주시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이 귀중한 교훈은 신앙의 모든 분야와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이 나에게 왔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쇼크를 잘 감당하도록 하시옵소서!” 기도하고 실천에 옮길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나를 믿고 그만한 깨달음을 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이것도 역시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면”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명령이다. 같은 명령들을 언제나 세상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하면”은 분명히 세상의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 속에서는 ‘좁은 문’이고 ‘십자가’이다. 이번 여름에 작은 것이라도 깨달은 것이 있다면 온 교회가 각 성도들이 그것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 모두는 더욱 담대한 그리스도인이 될 줄로 믿는다.

[4]“그리하면”은 사람의 선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부에 대한 가능성을 역시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거부의 결과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않는 선택도 할 수 있었고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어나 이 사람들은 잘못 선택하고 만다. 오늘 나는 과연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그리하면”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사실 죄를 짓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깨달음만큼이나 중요한 것도 드물 것이다. 공자는 “내가 참 도를 깨닫는다면 오늘 죽어도 좋다” 라는 말로서 깨달음의 귀중성을 고백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공자의 수준에 머무를 수 없다. 신앙에 있어서도 깨닫는 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신앙적 과제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주셨음에도 그 깨달음을 묵살해 버리고 사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만큼 책임도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야고보서 4장 17에서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는 두려운 지적을 들어야 한다.



Ⅱ.삶 속에 실천되지 못하는 행사로 끝나는 깨달음의 문제성.

많은 사람들 중에 예배는 이벤트(event) 가 되어야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예배를 이벤트화 하려는 많은 시도도 요즘 시대에 있지만 이 말은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틀리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하나의 새로운 사건과 같아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세상의 어떤 event 보다 더 진한 감동과 환희를 맛봐야 하겠지만 사회 속에서의 event 는 언제나 일회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지속 적이어야만 한다.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을 늘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절실한 과제이다. 하나의 사건으로서의 신앙 행사가 뒤따르는 순종이 없이 끝나는 것으로 여름 행사이든지 부흥회든지 문제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이벤트가 아니면 감동도 없는 또 다른 이벤트를 준비해야만 한다. 현재의 놀이 기구의 스릴을 느끼기 위한 강도는 더욱 높여가고 있고 영화, 게임들의 잔인성은 더욱 강화되어 가고 있다.

‘참 빛’지에서 ‘성공하는 교회’ 라는 주제로 쓴 단 킨더의 글 중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몇 년 전 택사스에서 한 설교자는 더 많은 사람들을 그의 건물에 모이게 하려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시도를 했는데 주일 아침 한 백 명이 나온다면 지붕 위에서 설교를 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들과 그 전도자는 그렇게 했다.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대되는 것은 항상 그가 다음 주에는 뭘 할 것인가 이었다. 그는 계속적으로 좀더 흥미 있는 어떤 것을 시도해야만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자극이 통하지 않아서 충격을 줘야 겨우 반응하는 자극이나 충격에 무뎌지는 것도 사람이다. 우리 인간의 육체나 마음은 언제나 자극이나 충격에 적응해 버려서 더 강한 쇼크를 필요로 하고 그 욕구를 채우는 것은 끝이 없고 만족은 채워지지 않는다. 죄성에 길들여진 인간의 욕구는 지옥의 밑처럼 끝이 없어 도저히 채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부분에서는 언제나 육신적인 부분을 중시하려는 세상적인 유혹을 버리고 우리의 영혼을 자극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고 우리 영혼을 자극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말씀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 인생이나 교회에 놀랄 만한 이벤트(행사, 사건)를 허락하심으로 우리의 무딘 부분들을 일깨워 주신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하나의 행사로 끝나버리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이 것 역시 다른 사람들이 그런다고 생각된다면 나 자신을 살필 필요가 있다. 가령 이번 기도회 중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을 했다면 그 감격한 부분을 기도회가 끝나고 눈물을 닦고 일어서면서 끝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왜 눈물을 흘렸으며 감격하도록 나를 자극하고 깨달은 부분을 일상적인 삶 속에 돌아 왔을 때에도 개선이 되고 회복이 될 때 그 기도회는 나에게 큰 사건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한 것이다. 주님께서 “이번 여름 수련회에 깨달은 것이 있느냐”? 그렇다면 성령을 의지하여 그 깨달은 대로 삶을 고치고 회개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Ⅲ.오늘 분문에서 그리하면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4~7, 9)

“주 안에서 ①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②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③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④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너희는 내게 ①배우고 ②받고 ③듣고 ④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Ⅳ.결론.

하나님의 말씀 속에 “그리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의 통로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닌 행동을 요구하고 그것을 세상 가운데서 실천하는 것은 결코 편하고 쉽지 않은 좁은 문이요 십자가와 같은 것이다. 함에도 가능한 이유는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리하면”은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이지만 그것은 오늘 우리들이나 나의 결단에 의해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복이다. “그리하면”은 “그렇지 아니하면” 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염두 해 둘 수 있는 명령이고 여기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 당연한 저주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언급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가장 완전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십자가를 감당하시고 지심으로 아버지의 의지에 완전히 순복 하심을 본다. 육신적으로는 원치 않았기 때문에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 라고 기도하심을 본다.

오늘 우리는 행사가 많은 또 하나의 여름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분주하고 예산을 집중하는 행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자가 깨달은 잔잔하고 작은 은혜들을 성령과 더불어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준비의 수고나 분주함은 결코 우리 각자의 신앙과 교회의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몸으로 우리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고 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

누구보다도 자신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삶에서 경계하고 있는 것이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6~27)는 고백이다. 세상사람들은 지속적인 충격을 위하여 이벤트나 마약, 게임의 잔인성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

많은 산골 계곡마다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 여름 해변의 무수한 이벤트, 그러나 우리가 그 속에서 깨달은 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휴가 뒤에 오는 또 다른 피로나 뒤에 남겨진 많은 쓰레기 더미 외에는 남는 것이 없는 세상의 질서 없는 휴가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는 주님의 생명의 교훈이 여러분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그리하면 이하의 복이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