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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시며(요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난다. 사도 바울은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고 감격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자세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는 말씀에 대한 확신과 기쁨, 그리고 각오를 고백하면서 우리 신앙의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다. 사실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인 이 시편 전체가 말씀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다.
신앙의 성패는 말씀에 대한 반응과 자세에서 나온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믿음 생활은 말씀에 근거하고 마찬가지로 신앙이라는 부분과 세상에서의 삶에 있어서 어느 부분이 주도하는 인생이 되느냐 하는 것 역시 각 사람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볼 때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할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 하셨고 바울 사도를 통하여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고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말씀을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고 결국에 가서는 자신이 그 보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교훈이다. 우리는 곧잘 세상의 일과 신앙의 일의 중요성을 선택할 때는 대부분 세상 쪽을 선택하는 예가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경거망동이고 그렇게 되는 이유는 몇몇 가지가 있다.
①당장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시기 때문에[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은 신앙의 자세에 따라 다르다.]
②다음에 잘하면 된다.[다음 순간에 어떻게 될지를 알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이것도 참으로 간큰 사람이다. 이런 기회는 박탈될 수도 있다.]
③주님은 나의 사정과 입장을 다 알아주시기 때문에[그렇다면 십자가를 지라거나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는 말씀을 왜 하셨을까? 우리는 하나님의 입장을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해 버리는 경우들이 많은데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④실재적으로 세상의 일이 당장에 더 중요하기 때문에[어떤 경우에도 경건하게 사는 사람에게 세상일이 먼저일 수는 없고 사실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삶고 사는 사람에게 주님은 결코 자신의 백성이 손해보도록 하실 분이 아니다. 그렇게 힘없는 주님이라면 구태여 주님을 섬길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말씀 속에 믿음의 선진들의 자세나 이야기는 그러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⑤당할 손해가 막심하므로[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에 모든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면 주님을 섬기는 것 때문에 당한 손해를 반드시 보상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2:3~4)
이러한 말씀에 거하는 사람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신, 불신간에 하나님의 백성 됨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말씀에 잘못 반응한 실패한 신앙인들을 경계로 살필 필요가 있고 오늘도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잘못 사용하는 신앙의 자세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Ⅰ.말씀에 잘못 반응한 비극의 전래들.
[패역한 백성, 거짓말하는 자식,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사30:10)
[여호야김]“여후디가 삼 편 사 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렘36:21~26)
[아합과 여호사밧]“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일러 가로되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일구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왕상22:13)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4) 우리는 거짓된 위로를 받을 것인가?
[선지자들을 향해]“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렘23:16~17)
[거짓 예언자들]“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겔13:6~7)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16:18)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사는 장사꾼이 되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고후2:17f-표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3~4)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거절되고 이용당하는 곳에는 인간이 그 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결코 하나님이 손해보시거나 인간 구원의 역사를 쉬지 않으신다.
Ⅱ.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106)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9)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2)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1.신앙은 계속되는 결단이다.(106)“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12)“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말씀 자체도 지속적이다.
곁길로 나서기 전에 언제나 단속할 필요가 있다. 밭고랑에 소를 세우고 밭을 갈다보면 곁길로 나갈려는 기미가 보일 때 바로잡지 않으면 영 어긋나 버리고 만다. 어제의 각오와 결단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예배 속에 있고 은혜 속에 머물러 있음을 의식한다면 유혹에 노출 될 대마다 “주님!”을 부르며 믿음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2.결단은 나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구하고 있다.(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의 낙헌제를 받으시고 주의 규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귀중한 삶의 목표를 가지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의지가 주님의 성령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이 문제다. 우리의 의지는 언제나 세상의 유혹에 약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기 쉽다.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시115:9~11)
3.그것은 말씀에 나를 맡기는 자세이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말로는 하나님께 나를 맡긴다고 고백하면서도 오히려 말씀과 신앙을 세상의 영달을 위하여 이용하는 사악함에 있다. 우리는 말씀에 다스림을 받아야만 한다. 우리의 온 인격과 육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움직여져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예배 시간뿐만 아니라 세상의 삶 속에서도 그러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인이다.
Ⅲ.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아도 고난은 온다.
(107)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09)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저주스런 십자가의 고난을 선택하셨다. 그의 은혜와 사랑으로 오늘 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고난을 피하고 세상에서 영광을 얻으려는 행동이 언제나 말씀을 잘못 적용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시인은 고난이 막심한데도 그 해결책을 하나님께 묻고 있다는 사실이다.(107)“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고난을 기뻐할 사람은 없다. 해서 되도록 어려움을 피해 보려고 하나보면 하나님의 진리에서 벗어나게 되고 말씀을 어기게 되며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어기는 일이 두렵지 않게 되고 아무 거리낌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 이런 상태는 대단히 두려운 것이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시14:2~4)
2.생명이 위태 한대도 말씀을 잊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기도한다.(109)“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우리 대부분은 생명이 위기에 닥칠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세상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오히려 생명이 경각간에 있을 때 영원을 기약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맡기면서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고 믿음을 고백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고백이란 위기와 절망 앞에서 가장 진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는 죽음의 위기 앞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평상시의 삶에서 훈련되어지는 것이다.[다니엘의 친구들]
3.사악한 무리들이 올무를 놓았어도 말씀을 떠나지 않았다.(110)“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악인의 올무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이 먼저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러한 올무로부터 건져 주신다. 그러한 실례가 요셉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창37:19~20) 신앙이 같지 않은 그의 형제들은 자신들의 어린 동생에 대해서도 이런 엄청난 계획을 한다. 믿음으로 살려는 사람 앞에 세상의 사악한 세력들은 늘 올무를 놓아 넘어뜨리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다니엘이 역시 같은 위기를 당한다.
Ⅳ.말씀에 자신을 맡길 때 우리 인생이 비로소 바로 된다.
(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1)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말씀을 등불 삼고 영원한 기업을 삼는 자에게 말씀은 즐거움과 위로가 된다. 비록 죄악의 세상에서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겹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깊이 새겨진 승리의 간증을 인생의 이정표에 새기게 된다. 이것이 싸이고 싸여서 놀라운 주님과의 사랑의 일기를 남기게 되고 이것이 지속될 때 임마누엘의 확신과 감격을 늘 현실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왜 주님은 등불이 되어 주시지 않겠는가? 무지한 우리네 인생 그러나 가장 완벽하게 안전한 주님의 보호에 자신을 의탁할 때 우리의 입술에는 자연스런 찬양이 이 시인의 고백처럼 묻어 나올 것이다.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사악한 자신의 꾀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등불이 될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보호와 경계를 모두 벗어버리고 주님께 인생을 기꺼이 의탁하는 자의 앞길을 주님은 밝히 비춰 주실 것이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살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하고 격려하며 그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늘 기도하는 사람, 고난이 와도 어려움과 슬픔이 와도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더욱 말씀을 지키며 올무 앞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믿는 까닭에 담대히 나아가는 말씀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신앙과 말씀에 맡기고 어렵고 힘겨운 세상에서도 주의 증거 즉, 말씀과 약속을 자신의 영원한 기업으로 삼는, 그래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인생에 성패가 걸린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붙드시고 힘주시며 금생과 내생에 복 주실 줄 믿고 우리 모두가 참으로 신앙하기 어려운 이 시기에도 그렇게 살기로 각오하고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거룩하고 복되신 주님의 이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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