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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께서 이 당부를 하고 있는 로마 교회는 험한 박해의 상황 속에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노릇을 하는 노예의 신분들이었을 것이고 그런 지위나 형편 때문에 어쩌면 더욱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그런 믿음의 사람들을 격려하고 도전하는 이 말씀은 오늘 박해가 없는 상황에서도 예배와 신앙에 적극적이지 못한 우리 자신들을 꾸짖고 있는 음성으로 들린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고 기대하시는 대상이다. 세상의 평가가 어떠하든지 적어도 이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주님의 기대에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의 사람들로 살아야 한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예배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점검하고 경계를 각자의 삶에 적용하여 감격과 기쁨의 하나님 백성 됨을 확신했으면 한다.
Ⅰ.예배에 있어서의 당부.(1)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들을 갖고 있고 나름대로 가치를 부여하며 예배를 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는 바울의 당부의 말씀은 우리 각자의 예배하는 자세를 점검하게 한다.
(1)바울은 이 명령을 함에 있어서 보다 간절한 당부로 권면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라는 입장에서보다도 더 간절한 부탁을 드리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2)예배에 진정으로 드려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여기에 말하는 몸은 단순한 고기 덩어리로서의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몸, aw'ma, soma; 全人的인 우리 자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나 자신을 먼저 드리지 않으면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고후8:5…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우리가 가진 모든 가치를 모두 주님께 드리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몸을 드림에 있어서도 나의 생각과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도대로 드리라는 말씀이다. (3)아울러 이렇게 드리는 예배를 말하기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목적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이해하면 예배회복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보다 사람이 중심이 된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치보다 사람이 기뻐하고 만족하는 예배, 하나님의 기뻐하심보다는 인간에게 만족을 주는 예배를 주님중심으로 회복해야 함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 예배란? 신령과 진정의 예배이다. 인간의 가치 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의지의 바탕 위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드리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랍비도 아니고 바리새인도 아니고 사두개인 같은 종교지도자나 율법의 스승이 아닌, 천대받고 멸시받는 사람을 회피하는 죄 많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을 향하여서도 이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이 예배를 들 수 있는 자격이나 기준이나 이해가 어떤 세상적 수준이나 가치를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요4:21~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場所)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時期)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無知)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그래서 호6: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21~22)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23~24)
이 말씀은 적어도 우상숭배와 하나님 예배라는 간격만큼이나 중요한 차이를 가르쳐 주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지하면 하나님 섬기는 것이나 우상 섬기는 것이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물론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때는 이런 원인들이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점차 성숙하면서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가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 교회가 이것을 분명히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고 사회가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①어떤 肉身的 이권과 원인이 들어 있지 않은 예배-모든 우상숭배는 조건 때문이다. ~을 위하여 제사를 드린다고 한다. 災禍를 면하기 위하여, 제물과 복 받기 위하여, 잘 되기 위하여, 無病長壽하기 위하여, 좋은 배필을 만나기 위하여,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학교성적이 좋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등등은 우상 숭배의 이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이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예배 드리는 것이므로 이러한 원인이 예배의 이유일 수 없다.(뒤에 가서 이 부분을 다시 다루겠지만) 처음에는 모두 이런 이유 때문에 주님께 왔다고 할지라도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②은혜로 인하여 드릴 수밖에 없는 예배- “~을 위해서” 와는 반대로 “~ 때문에” 섬기고 예배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이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2~8)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16)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와 경배의 이유이다. 믿습니까?
③성령이 주장하는 예배- 우리 모두의 생각과 욕심과 감정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고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오히려 성령을 통하여 회복된 ‘생각과 감정’을 다시 받는 예배이어야 한다. 물론 인간의 감정 자체를 배제할 수 없지만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는 예배한다고 하면서 조차 우리의 욕구와 정욕으로 채워진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하는 나 자신을 본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예배에서조차 받기만을 바라는 나의 간악함을 회개할 필요가 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약4:3~5)
Ⅱ.예배의 감격과 가치를 잃지 말자!(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러한 당부는 어쩌면 잃어버린 예배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엄청난 은혜를 잃어버리면 예배가 감격보다는 부담이 되고 기쁨보다는 힘겨운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이 당부는 오늘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종들의 간절한 부탁과 기대로 들어야 한다.
1.하나님을 섬기게 된 은혜를 어떻게 얻었는가?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다. 세상에 똑똑하고 영특하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조차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만들어진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나 자신이 주님을 섬기게 된 엄청난 특권, 영원에까지 지속될 영광을 소홀히 여기지 말자! 세상의 어떤 공부나 가치로 얻어지지 않은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의 피로 얻어주신 하늘의 시민권의 놀라운 은혜[미국의 시민권도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만물의 창조자요 주인이신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엄청난 감격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가치를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것이다. 무능하고 버림받고 천대받을 이유가 더 많은 나를 구원하신 엄청난 은혜를 어디에 비길 수가 있겠는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9)
완벽하게 육신적으로도 건강하고 부요하고 만족하면 좋겠지만 우리에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놀라운 선물을 생각한다면 좀 초라하면 어떠며 건강치 못하면 어떻고 못났으면 어떤가! 십자가의 보혈로 찾아주신 이 섬김의 은혜를 무슨 일이 있어도 잃지 말자.
2.세상의 가치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가치(金銀寶貨, 權力)와 꼭 같은 것을 요구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엄청난 특권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세상과 같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은 세상의 천만금보다는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과 감사를 받으신다. 예배하면서 어떤 이단의 교주처럼 ‘네 재산을 다 팔아 오너라!’ 한다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가장 기뻐하신 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도 우리는 주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는 우리의 몸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니 얼마나 죄송한가! 그랬다고 ‘다음부터 너는 오지 말아라!’ 그러신다면 얼마나 불행인가? 그러나 주님은 ‘지금까지의 잘못은 다 용서하니 다음부터는 잘해라!’시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러한 주님을 찬양하자!
3.예배는 어떤 시간으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이 말은 항상 예배의 감격으로 우리의 인생을 채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매 주님의 날마다 격식을 갖추어 예배를 드리기도 하지만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짐승을 태워 바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리 몸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가르치셨고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5~16)는 귀한 약속을 누린다. 우리가 매 순간 주님을 의식하며 살 수 있다면 주일날 받은 예배의 감격을 세상 속의 엿새라는 시간 속에서도 지속시킬 수가 있다. 믿으시기를 …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복들이 그냥 넘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지적한다. 이러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도록 늘 방해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을 구별하여 지속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Ⅲ.세상과 구별된 삶이 될 때 가능하다.(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상은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하지 하지 않는다. 때문에 요한은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3:13) 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철저하게 절망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 뭘 줄 것이라 기대치 말아야 한다. 세상은 철저하게 우리를 이용하고 가치가 없으면 미련 없이 돌아서 버린다. 세상친구는 평상시에는 나를 가까이 하다가 자신과 어울리는 친구가 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세상은 처음에는 단물을 주다가 이내 쓰디쓴 물을 줄뿐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 죄악의 세상에서 쓴 물을 마시는 것처럼 괴로울 때도 있으나 마지막은 언제나 단물을 주시는 분이다.
우리가 교회를 보고 낙심하는 것은 사실 교회 속에 들어와 있는 이 세상을 보고 절망하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를 표현하기를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7)는 주님의 뜻을 지적하고 있다. 그럼으로 오늘 교회 속에 들어와 진리와 함께 거하려고 하는 세상을 교회에서 쫓아내야만 한다.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갈4:30) 어둠과 빛은 절대로 함께 있을 수 없다. “…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4~16) 라는 경계도 같은 경계이다.
세상은 우리를 종으로 부리려 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친구로 대하시고 형제라고 말씀하신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 그러나 마귀는 절대로 자신의 계획을 자기가 부리는 종들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마귀 사탄은 종국적으로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다. 세상은 철저하게 우리를 이용하려 한다.
1.무엇을 본받지 말라는 것인가? (2f)“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
①흉내내지 말라. ‘뱁새가 황새를 …’ 흉내내면 경계가 무뎌진다. “너희가 …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벧전1:14) ②따라가지 말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4:22) ③사랑하지 말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2.세상적인 나 자신이 새롭게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2m) “…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언제나 가장 큰 문제요 적은 나 자신이다. 사람들은 문제를 언제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나 자신이 아직도 세상 속에 익숙해 있는 체로 교회에 나와 앉아 있으면 교회는 세속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각자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면’ 엄청난 생명의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3.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가능하다.(2b)
“…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신앙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 뜻을 펼쳐보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비극이다. 하나님의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선하신 뜻 안에 내 뜻을 맡기고 순종하면 오히려 주님은 인생의 큰 승리자가 되게 하여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6:38~39f)고 말씀하신다. 하물며 영원히 형벌 받아 마땅한 우리가 죄와 사망과 절망에서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한다면 우리 각자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분별하고 이루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는 우리 삶의 가치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가치 있는 인생이 된 감격을 잃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상의 어떤 값진 것보다 우리 몸으로 산 제사 드림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 각자의 움직임을 통해서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산 제사를 항상 드릴 수 있는 삶의 최고의 가치를 잊지 말고 세상을 흉내내거나 따라가거나 사랑하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우리 각자의 인생이 늘 감격된 삶을 누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고 이루어 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복되신 주님의 이름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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