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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토는 아직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는 이 세상에 있고 이러한 상황 때문에 늘 이스라엘과 PLO처럼 싸울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의 전투는 테러 같이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는 전쟁은 아니고 우리 자신이 피 흘리기까지 훈련하고 희생하는 싸움이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10:4)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도 몸은 세상에 있고 세상의 영향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요한 사도는 그의 서신들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과 관련하여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을 읽는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는 말씀으로 우리가 세상에 속한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사랑 받을 수 없고 오히려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세상 속에서 삶이 결코 기죽을 수 없는 이유는 주님께서 동일한 형편과 모습으로 와서 이기셨고 지금도 그와 같이 선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이기도록 함께 한다는 사실로 격려하고 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이러한 교훈들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세상을 거쳐가는 나그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죽어 지나가야 할 광야가 아님을 말하기 때문에 세상을 반드시 이기고 극복할 적수로 생각하게 한다. 요한 사도는 “ …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요일2:13b)는 결론적인 확신을 줌으로서 우리의 평생의 전쟁은 이겨놓은 전투임을 확신시킨다.
그러나 이 놀라운 약속에도 불구하고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 종(從)이 되어 영원을 세상과 바꿔버리는 연약한 모습으로 옛 광야 40년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받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고 안타까운 것은 세상을 이기지 못하면 세상에 정복당하고 세상의 영향을 받게 되고 세상의 종노릇하게 된다는 사실인데 사실 오늘의 역사 속에서 세상을 정복하고 호령하고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그리스도인들 보다는 세상의 영향력에 짓눌린 체로 세상에 종노릇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다는 것이 마음 아픈 사실이다.
Ⅰ.세상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하고 사랑치 말아야 할 세상은 무엇인가?
요한 사도는 앞에서도 이미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이 말씀은 사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는 말씀과는 반대되는 의미이다.
[세상, kovsmo", cosmos, NT에 80회, 질서, 세상 우주, 세계, 물질세계, 인류전체, 세속(약1:27), 꾸밈, 장식]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난 불신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 신약성경에서 경계하고 대항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하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4:4)
본래적인 세상은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1:10)[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 사실이 세상은 주님에 의해 주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사실이지만, 자기지위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한 한 무리의 천사들(유1:6)에 의해 최초의 사람 아담을 죄에 빠뜨리고 이 세상을 하나님을 거역하는 반역의 장소로 만들었다.
아담이후의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를 범하게되고 죽음에 바쳐지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이러한 세상은 절대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섬길 수도 없는 잃어진 존재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멸망 받아 마땅한 세상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요3:16)고 바울 사도는 이 은혜를 찬양하기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고 감격하고 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로 인하여 새 삶을 살게 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럼에도 어둠의 세상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고 구원받는 것을 절대로 기뻐하지 않고 되도록 한 사람의 택하신 자라도 넘어뜨리려고 온 갓 악한 것들과 거짓으로 포장된 거짓된 아름다움으로 믿음의 백성들조차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으로서의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악의 세력에 대한 전쟁이다.
이러한 싸움에 참여하는 자들을 세상은 더욱 미워하고 괴롭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더욱 어려움을 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것을 피하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서 대속(代贖)의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시기 직전에 이 세상에 남겨둘 제자들과 우리들을 위하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들을 볼 수 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14)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16)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주님께서 이 악의 영향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사랑의 약속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속성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12:47)
그러므로 우리주님의 자녀들이라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마귀사탄의 영향력은 철저하게 대적하고 그 사악한 영향 아래서 영원을 알지 못하고 죄와 더불어 사는 가련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를 받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영적인 싸움의 성격은 언제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시작하고 자신을 극복할 때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 육신의 죄악 된 전쟁과는 차이가 있다.
Ⅱ.하나님께로서 난자가 세상을 이긴다.(1~3)
(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어떤 자인가?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2:29) 바로 앞에서 요한은 이미 하나님과 같이 의를 행하는 자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한다. 신앙의 사람들의 특징은 그 아버지 하나님을 닮는 것이고 죄를 범하던 옛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된다. 믿음의 사람들의 무장을 지적하는 바울은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엡6:14) 했는데 의(義)는 바로 자신 위에 희생양이신 그리스도를 올려서 덮는 것이다. 그것은 보이는 명찰처럼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나는 영적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몇 가지를 본문과 더불어 생각하면서 우리 삶을 점검해 봤으면 한다.
1.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이다.(1f, 5)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1f),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5) 니고데모는 이것을 오해했었다. 죄에 권세 아래 나서 죄와 더불어 살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방법을 마련하셨고 그것이 바로 온 인류의 속죄양으로 십자가에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가능케 하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은혜의 약속이기 때문에 확실하고 든든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자신의 독생자를 만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피 흘리게 하시고 그곳으로 모든 죄 아래 있는 인류를 초청하셨다. 듣고, 믿고, 고백하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자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효력을 발생하게 하셨다. 외형적으로는 변함이 없을지라도 이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하고 받아 드리고 수용하는 자마다 이미 죄의 사람이 아니라고 주님은 확인하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 세상을 이기는 권세를 가진 자들이다. 믿습니까?
2.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자이다.(1b~2)
하나님께서 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라고 지적한 저자는 이제 그것을 좀더 현실에 가까이 가져와서 확인시킨다.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이 말씀을 반대로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 앞에 기록되고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4:20~21)
이 세상에서도 동족(同族)을 사랑치 않는 자는 없다. 자기 민족이 피를 흘리면 흥분하고 같이 싸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자기 가족이라고 하는 혈통 때문에 그렇다[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일으킨 김일성은 좀 유별난 사람이다.].
이것은 영적인 계보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그 피가 서로에게 흐르는 이 신령한 계보는 당연히 같이 하늘에서 난 형제 자매를 위하고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히려 서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그 형제들을 위하여 일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러한 강한 결속은 어떤 어둠의 세력이나 사악한 무리들도 끼어 들지 못하게 하는 강한 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가족간에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은 마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고 거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을 이기는 강력한 무기이다.
3.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느혜미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회상하면서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느1:9)는 말씀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역시 전쟁과 관련된 말씀이고 비록 포로로 잡혀가는 한이 있어도 회복시키시는 약속을 확인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힘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시119:56) 라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켜질 때 마귀는 더 이상 참소 할 근거를 잃게 되고 그러한 사람 앞에 무력해 지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시면서도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5:10) 가장 현실적으로 거듭남 즉,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 계명을 귀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위해서 인생을 복종시켜 가는 사람들이고 복종된 말씀과 계명은 철저하게 그들을 보호하기 때문에 어떤 영적 전쟁에서도 이기게 되는 것이다.
요한 사도는 본문 앞에서도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4) 고 가르친바 있다.
보다 확실한 결론적인 약속은 바로 뒤에 나타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18)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를 위하여 싸워 주실 것이기 때문에 세상과 악에 대한 승리는 보장되고 남는다.
Ⅲ.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4~5)
(4)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당연할 말을 가지고 그런다고 할 줄 모른다.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4:4)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세상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의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당연히 나중에는 실망을 주거나 쓴 물을 마시게 할 것이다.
1.그리스도를 믿는 자란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는 확신 속에서 믿음이란 우리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절대적인 능력의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현실 속에 가장 가까이 와 계시는 성령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신뢰 할 만큼 모든 것을 갖춘 바울조차도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자기 자신이 강하면 그만큼 주님은 그 사람 안에서는 강하실 수가 없고 전적으로 그 사람을 움직이실 수가 없기 때문에 강하게 되지 못하는 것이다. 요한 사도는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4:15) 그리스도를 나에게 주님으로 시인하는 것은 반대로는 나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비결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 안에 우리가 숨을 때 주님께서 싸워 주시므로 완전한 승리를 확신하는 것이다. 믿습니까?
2.주님처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부부생활을 하거나 부모 자식으로 형제 자매 간에 가족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상대에 대해서 불만을 갖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때해서 그렇게 대할 때가 많다. 내 인생에 계신 듯 안 계신 듯 너무나 멀기만 한 아버지로 생각할 때가 많다. 어떤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끔 우리 인생의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고 가는 파출부 정도로 생각하고 대우할 때가 있다. 마치 파출부에게 일당을 주듯이 얼마의 연보를 바치면서 그것으로 할 바를 다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대우하는 이상 어렵고 힘겨울 때 그분은 우리의 인생에 깊이 참여하실 수 없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불효를 저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가정은 절대로 다른 세력을 대항해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한다. 부부간에나 부모와 자식간에 갖는 결속이 강할수록 그 힘은 증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충실하지 못하는 상대에 대하여 불만을 곧잘 늘어놓으면서도, 사실 우리 자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그럴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일 하나에서까지도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6:38~39f) 그러한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처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전적으로 의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겨야 할 세상이란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난 불신의 세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거절하고 방해하는 악의 세력들이다. 우리가 주님께 대하여 충성치 못할 때 때로는 우리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런 일들에 참여하게 될 수도 있음을 염두 해 둬야 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함께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며 어떤 경우에도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 그런 자들에게는 주님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평안하게 신뢰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요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다.
죄의 성향을 가진 자신을 말씀에 복종시켜서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인생을 드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감격하여 세상에 어떤 존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러한 믿음은 불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큰 능력이 될 것이다.
결국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이겨야 할 대상이지만 그 이김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기신 견고한 진이신 주님 안에서 싸울 때 이기는 것은 주님의 이기심과 같이 분명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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