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종배 전도자
마 16:13~20 2004-01-11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이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실 때에 가장 귀하고 소중한 기구가 바로 그의 사역을 맡은 교회요 성도들이다. 교회와 성도는 주님께서 구속을 이루시고 그 은혜를 세상에 나눠 주려고 생명의 사역을 이 세상에서 감당케 하신 천상의 도구이다. 이 역할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감당하며 죄의 권세 아래 신음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십자가의 피로 씻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복된 일을 감당해 가고 있다.

어쨌든지 하나님은 이 세상의 구원의 역사를 성령과 더불어 교회에 맡기셨다는 사실이다. 이 역사가 닫히는 마지막의 순간까지 교회는 이 땅에 이일을 위해서 존재하고 하나님의 전권 대사의 막중한 역할을 감당해야만 한다.

Ⅰ.올바른 신앙 고백의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이다.(13~17)

주님께서는 자신이 우리들로부터 어떤 대상인가를 늘 확인하고 싶어 하신다. 마치 늘 주님이라고 부르는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다르며 섬기는 가를 알고 싶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동일한 확인을 하고 싶어 하신다.



1.올바른 고백은 신앙의 출발이다.

그래서 주님은 물으신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의 반응과 자신을 따르고 섬기는 자들에게 물으시는 것이다.

①“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이것은 불확실한 고백이다. 요한 일 수도 있고, 엘리야 인 것 같기도 하고, 예레미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그야 말로 불확실한 대상으로 보는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믿음 안에 있고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이와 같은 고백으로 산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나를 향하여 회개하라고 고함치는 ‘세례요한’처럼 나와 사뭇 떨어져 있는 광야에서 조금은 이상한 존재로 여겨지는 예수, 때로는 세상인지 하나님인지를 분명히 하라고 고함치는 불 같은 두려움으로 나에게 다가서는 엘리야 같은 예수로 여겨질 정도로 두렵기만 한 예수, 때로는 나와 우리 교회를 인하여 탄식의 눈물을 흘리시는 예레미야 같은 예수, 이것은 사실 다 나의 경건치 못한 상태에 따라서 때로는 낯설고 두렵고 짐스러운 예수로 의식하는 것은 분명히 나 자신의 경건에 문제가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이 부처나 공자나 소크라테스 와 더불어 끼워 넣는 성인으로서의 예수 나와는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예수일 수 있는 예수로 낯설게 예수가 인식 된다면 그 자리에서 신속히 회개 해야만 한다.

②“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래서 우리 각자의 고백이 필요하고 이것은 늘 확인 되어져야 하는 고백이다. 우리가 세상에 뒹굴다 보면 어느새 이 고백이 바뀌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입장에서 세상은 실로 신앙에 무서운 적이다. 때문에 우리는 늘 예수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훈련이 되기도 하고 어려움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늘 우리 삶의 중심에 주님을 바로 새울 필요가 있다.

오늘도 나의 고백하는 대상으로서의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삶 속에 역할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나의 고백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다.

340(후렴)“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아멘”



2.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바라신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사실 이 고백 위에 믿음이 있고 생명이 있고 교회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단순한 이 고백은 우리 신앙을 그대로 담고 있는 중요한 표현이다.

(1)그리스도로 믿는 고백이다. 믿음의 사람들이면 누구나 잘 아는 대로 “그리스도”란 구약의 “메시아”를 뜻하는 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의미를 가진 낱말이다. 그래서 예수의 이 세가지 역할을 그리스도의 삼중직(三重職)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①제사장–‘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해결 하는 자’라는 의미로 이해 하는 표현이다.

②선지자–하나님의 뜻을 나에게 알려 주는 자, 하나님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시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③왕–나의 삶에 대한 삼권의 절대 권한을 가지셨다는 고백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왕 이시라는 고백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主(주-Lord)라는 고백이 그것이다. 우리나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름에 있어서 주(主) 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주여!”(22; 행9:5) 라는 표현은 당시 절대권자인 가이사(Caesar)를 부를 때 썼던 명칭으로 生死禍福의 권한을 가진 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구약에 보면 이러한 권한이 바로에게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창41:44) 예수 당시의 가이사나 요셉 당시의 바로는 꼭 같이 막강한 권한을 가졌던 절대권자이었음이 역사를 볼 때도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론 역사 속의 모든 사람들의 생명의 권한을 가지신 것이 사실이지만[마리아가 어린 예수를 모시고 성전에 샀을 때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눅2:34) 라는 예언 속에서도 나타난다.] 참으로 우리 신앙의 사람들의 생사화복을 가지신 분임에 분명하다. 우리나 교회가 그의 新婦(신부)라는 데서 그렇고[사실 요즘에는 이런 개념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王(왕)이라는 데서도 그렇다.

(2)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고백이다. 당시에도 로마가 정복한 모든 나라의 섬기는 신들은 로마의 만신전(萬神殿-Pantheon)에 옮겨져서 모셔졌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은 그런 죽어있는 신이라고 이름 붙여진 가짜신이 아니라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면 죄로 신음하는 인류를 위해서 친히 대속의 은혜를 창세전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오늘도 우리의 삶과 행위를 친히 보시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절대자이심으로서의 고백이다. 이 고백을 하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역시 믿음의 고백답게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식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시편 16편에서 다윗 고백하기를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8) 라는 고백을 본다.



초대 교회 사람들은 박해 가운데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물고기를 그림으로서 표현했는데 오늘 날에는 그것을 이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것은 이 신앙 고백을 담은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ICQUS - Ihsou'" Cristov", Qeou' UiJov" Swthvr]



3.이러한 고백은 인간 자신의 지혜나 생각에서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니다.(17)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먼저는 이러한 고백을 드리는 베드로를 향하여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기뻐하고 계신 것이다. 바른 고백을 드릴 수 있다는 자체가 벌써 복이다. 왜냐하면 아무나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 죄성을 가진 인간 스스로 불가능한 고백이다. 예외 없이 죄를 지은 자연인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없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하였고 로마서의 첫 부분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 고 선언하고 그럼에도 죄의 인간은 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본문의 베드로 뿐만 아니라 아담 이후의 모든 죄진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지만 인간 스스로는 은혜로 오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메시아로 고백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에 의해서만 믿어지고 고백 되어진다는 귀한 말씀이다.



Ⅱ.주님의 교회를 약속하셨다.(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불변하는 원칙을 약속하신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이 말이 강조되어 사람인 그리스도를 교회의 바탕으로 세웠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페트로스[Pevtro"]’ 라는 의미를 사용하신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라는 바꿀 수 없는 신앙고백(믿음) 위에 세워져야 한다.

2.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약속하신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

여기 중요한 약속은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신 약속이다. 베드로에게 약속을 주시지만 베드로의 교회도 요한의 교회도 마리아의 교회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약속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 교회의 주인이라는 이유에서 “하나님의 교회”(고전1:2, 10:32, 11:22, 15:9; 고후1:1; 갈1:13; 살전2:14; 딤전3:5, 15)라고 신약에는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입장에서 모든 교회는 통틀어 그리스도의 교회로 불려진다.[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롬16:16)] 바울은 이를 에베소서에서 강조하고 있다. “…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엡1:22) 하였고 5:23에서도 “…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하였다. 같은 옥중 서신인 골로새서에서도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1:18) 하였다. 성경에 나타나는 대로는 교회는 반드시 그리스도께 소유되었고 때문에 지역의 명칭 외에는 다른 형태의 교회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선언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신앙의 중요한 부분들을 교회의 명칭으로 쓰고(성령의 열매나 강조해야 할 신앙의 행위를 이름으로 쓴다.) 있지만 사실 옳지 않다. 우리의 어감에 좋고 듣기에 기분이 좋을지는 모르지만 사실 인위적인 이름일 뿐이다. 교회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져야 한다.

3.어둠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이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러한 절대적 원칙이 세워진 교회는 절대로 악의 세력 즉, 어둠의 세력이 넘어뜨릴 수 없다. [찬송가389: 2.원수 마귀 모두 쫓겨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 남이라 우리 찬송 듣고 지옥 떨리니, 형제들아 찬송 찬송합시다 3.세상 나라들은 멸망 받으나 예수 교회 영영, 왕성하리라 지옥 권세 감히 해치 못함은, 주가 모든 교회 지키심이라]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진 교회는 절대로 넘어질 수 없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Ⅲ.천국의 열쇠를 주셨다.(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1.천국으로부터 주신 것이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바른 교회의 권세는 사람에 의해서 넘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권세에 대항 하는 자들은 오히려 자신이 상하고 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나중에 깨닫고 회개한 후에 주님을 위해서 일하지만 대표적인 성경의 예가 사울이다. 역사 속에 주님의 교회를 박해하고 대적하던 사람들은 모두가 예외 없이 자신이 비참하게 깨어지고 망했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세는 절대로 사람으로부터 나와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심이라는 의미 자체가 주님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여야 하는 절대적 원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주어진 권세는 어떤 사람을 높여서도 안되고 반드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만이 찬양과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

2.땅에서의 역할이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이렇게 하늘로부터 권세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쇠의 사용은 “땅에서” 이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절대적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권세는 하나님의 충성 된 종들에 의해서 이 땅에서도 악의 권세가 묶임을 받게 되는 것이고, 이 지상에서 하늘을 여닫는 능력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연이나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회복하신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하늘과 땅을 화목 시키셨고 죄악의 땅에서도 놀라운 하늘의 권세가 발휘되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지상에 주어진 이 권세는 계속해서 죄로 인하여 흑암(黑暗)의 권세에 신음하는 갇힌 자들을 풀어서 하늘에 들이는 귀중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만이 이 하늘을 여는 열쇠를 주신 교회의 역할이다. 우리 교회는 모두가 이 일을 위해서 매진 해야 할 것이다.

3.그러나 하늘을 열고 닫는 놀라운 권세이다.(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믿음의 사람 야고보는 이미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회상하고 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5:16~18)

여기에서 단서는 “의인”이다. 義人이란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착한 사람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사람을 가리키는 성경적 의미다. 왜냐하면 엘리야만 해도 당시에 권세를 잡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종들을 괴롭히고 박해하던 이세벨이나 아합에 의해서 현상금이 붙은 죄인 취급을 받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을 여닫는 권세는 오늘의 시대에도 죄로 인하여 막혀 있는 하늘을 죄인들에게 열어 주는 일이야 말로 가장 귀중한 하늘의 사역이고 교회의 존재목적 중의 하나로 귀중한 사역이다.

Ⅳ.결론.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라는 약속은 올바른 신앙 고백의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이 바른 고백 속에 주님을 따르는 이유와 섬김의 모습이 있다. 주변의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우리 각자와 교회의 고백이 따라야 한다. 불확실한 고백은 우리의 믿음의 삶에 바로 임하지 못한다. 우리는 늘 자신의 고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라는 우리 각자의 바른 고백 위에 주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라는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 완벽하게 해결해 주신 대제사장이라는 고백과 죄인 된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가장 바르게 가까이 보여 주시는 大先知者시오, 나의 생사화복의 권한을 가지신 왕 중의 왕으로 고백하고, 온 갓 거짓된 신들과 구별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 고백을 따라 사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이 약속을 이행 하실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고백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성령의 감화로만 가능하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 한 고백이다.

이러한 고백은 나로 하여금 순종하고 세례를 받고 거듭남으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는 은혜의 약속은 구체화 되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드려야 할 고백이며 이러한 불변하는 하나님의 정하신 원칙 위에 교회를 세우시며 어두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하늘의 권세를 누리게 하시고 비록 땅에서 살지만 하늘을 여닫는 놀라운 능력의 권한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라는 주님의 바꿀 수 없는 약속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는 약속과 함께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람들과 교회와 함께 할 것을 확신한다.

또 한 해를 열면서 하나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다는 중요한 확신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과제이다.

이 약속은 이 지상에 있는 주님의 교회와의 약속이며 그의 사람, 즉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약속이다. 이 불변하는 능력과 권능과 위엄의 약속을 풍성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