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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삿 7:2~4 2004-01-18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주인이 되었고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각 지파별로 기업을 나누어 가져서 하나님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주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세상을 뜬 후부터는 말씀이 제대로 가르쳐 지지 못하여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내외적으로 참으로 혼란한 상황에 있게 된다.

이때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말씀 두 곳을 보면 먼저 이 본문이 포함된 사사기에 두 번 언급되고 있는 말씀으로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21:25) 라는 표현과 서서히 사무엘이 등장하는 마지막 사사 시대인 엘리 때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there was no frequent vision – ASV, there were not many visions - NIV]”(삼상3:1)는 기록이 그것이다.

주님으로부터 다스림이나 말씀이 주어지지 않는 비전이 없는 나라나 교회는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삶에 일관성이 없고 또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혜의 솔로몬 왕이 증거 해 주고 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29:18)

Ⅰ.하나님은 언제나 어려운 가운데 자신의 일꾼을 부르신다.[물론 하나님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드온이 주인공이 되고 있는 본문의 이 상황도 하나님의 약속이나 비전은 희미해지고 절대적인 삶의 기준을 잃어버려서 우상숭배가 난무할 뿐만하니라 수없이 외적들로부터 침입을 받고 몇 십년씩이나 침략 국(侵略 國) 밑에서 설움을 당하는 애굽의 종살이가 재현되는 것과도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번복된다.

이스라엘이 곡식을 탈곡하는 것이 발견되면 당시의 약탈자였던 미디안이 모두 자신들의 군대의 양식으로 빼앗아가기 때문에 밀 타작을 하더라도 산속에서 몰래 하는 이런 어려운 현실에 있을 때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사라로 불리움을 받는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6:11~12)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먼저 묻는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13) 당시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한 기드온은 하나님께 자신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에 대해 항의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도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의 행위나 불순종은 생각치 않고 하나님께 원망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에 하나님은 기드온을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기 위한 시험을 거치신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씨시기 위해 훈련을 시키시는데 그 첫째거 당시에 하나님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주신인 바알을 섬기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당시의 이러한 우상숭배의 상황에서 먼저 기드온의 아버지의 가장 귀한 재산 중의 하나인 탐스러운 7년 된 둘째 수소를 취하여 기드온의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고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하나님의 법대로 그 찍은 아세라 상을 땔감으로 번제를 드리라는 명령이셨다. 이 명령을 받은 기드온은 자신의 아버지나 가족들과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 해서 그 명령을 낮에 하지 못하고 자신의 열명의 종과 함께 밤에 행하는데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했다고 기록되고 있다.(25~)

이일은 역시 당시의 바알 숭배자들에게 큰 항의를 받게 되지만 그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무마된다. 이일로 기드온은 ‘여룹바알’(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 첫번째 시험에 통과한 기드온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신이 임하시고 이스라엘 중에서 싸움에 나갈만한 사람들을 소집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드온이 하나님께 확신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기도의 응답을 하나님께 구하는데 유명한 ‘양털과 이슬’ 실험을 하고[①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고, ②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여기에 응답을 확신한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 확신하고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Ⅱ.하나님은 사람의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이런 무모하다고 보이는 일을 이해 할 수 없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 만이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7; 눅10:22) 고 말씀하셨다.

기드온 당시를 비롯해서 역사 속에서 재래식 전쟁은 병기 문제도 있었지만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군사의 수(數)와 사기(士氣)에 의해 좌우 된다고 해도 그른 말이 아니었다.

이런 일반적인 판단이나 이해 속에서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확신을 얻었음에도 당시에 미디안 뿐만 아니라 아말렉을 주축으로 한 적군인 연합군은 우리가 읽은 본문 뒤에 표현되고 있는 대로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삿7:12)고 묘사 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인간으로서는 이해 될 수 없는 두 번째 명령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드온에게 내려지는데 그것은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다” 라는 것이다. 수를 헤아릴 수 조차 없고 그들이 타고 온 낙타만 해도 해변의 모래와 같다는 적군의 전황과 비교할 때 이스라엘이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 기드온과 더불어 싸워 보겠다고 모은 수,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수가 겨우 32,000명 이었는데도 하나님은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다” 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기게 하실 것인데 하나님의 이 주시는 승리 뒤에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는 경계였다.

어떤 경우 우리는 자신들에게 조그만 가능성만 있어도 자신들의 힘으로 해냈다고 자만할 수 있는 여지가 죄성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있다는 것을 우리들의 상황에서 자주 보는 것들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하여 불신의 소지를 없애시려 하는 것이다. 수를 샐 수 없는 미디안과 아말렉을 포함한 연합군과 32,000명조차도 비교가 안 되는데 하나님은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말씀에 확신을 갖는 기드온은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들은 돌아가라!” 했더니 “돌아간 백성이 貳萬 貳千 명이요” 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더러 짐작해 볼 수 있다. ‘싸우라고 나오라 해서 지파 최면에 빠질 수 없어 나왔지만 막상 나와보니 자신들과 대항할 적군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데다가 자신들은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는데 적군들은 무슨 병기를 가졌다, 무슨 무기를 가졌다’는 등등 싸우러 온다고 오긴 했지만 “우리는 꼼짝없이 살아 돌아가기는 틀렸다. 아이고 내 처자식은 어떻게 하나!” 라고 낙심 천만해 있는 백성들에게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들은 돌아가라!”는 기드온의 외침은 아마도 가뭄에 생수 같은 복음이었을 것이다. 또 전쟁을 피해 돌아가는 사람들의 영향이 남은 사람들에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남은 사람들은 그래도 믿음의 담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남은 나머지가 壹萬 명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되었다!” 하지 않으시고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라고 경계 하신다.

그리고 처음 32,000에서 1만 명을 뽑은 것은 기드온이었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뽑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뽑으시는 도구가 공교롭게도 물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물이 중요하거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뽑힘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물론 22,000명이 두려움 때문에 돌아 갈 때도 기드온과 함께 운명을 함께 하기로 다짐한 그야말로 담대한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다시 뽑고 뽑으심을 본다. 지도자에게 뽑힘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뽑힘을 받은 자여야 하고 또 그러한 자긍심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선택된 자가 300명이었다.[이것은 남은 자라고 할 수 없고 선택된 자라는 표현이 옳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지도자이든지 그를 따르는 자든지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어렵고 힘겨운 때일 수록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는 감동과 확신 없이는 영적인 일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드온의 300명을 이야기 할 때마다 壹當 百(1:100)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1당 1,000이다. 이 수의 계산은 하나님의 수에 있어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 사람이건 돈이건 권력이건 하나님의 손에 들여진 것은 무한대로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계산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바쳐진 것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믿음생활에 있어서는 헌신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아직도 사람의 머리로 계산되어지는 수는 하나님께서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들려진 보리떡 하나, 물고기 한 마리가 기적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은 자신을 희생하고 주님의 손에 들려질 사람과 물질을 필요로 할 뿐이다.

Ⅲ.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시키신다.

하나님의 일 하심은 어느 것 하나라도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명령들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는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만이 필요한 것이다.

1.동역자(同役者)를 주신다.(9~11) 부라(열매를 맺다, 결실이 풍부하다,생육하다, 번성하다.)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①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승리의 약속을 다시 확인), ②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③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④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2.비전을 확신 시키신다.(11, 13~15)

“그 진으로 내려가서 ①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②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③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④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⑤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이미 거대한 군대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공포가 사기를 꺾고 있다.), ⑥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⑦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3.사람으로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싸우게 하신다.(16~20)

“①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②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 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③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④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⑤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⑦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여리고 성을 치는 마지막 날 모습 같다.)

4.하나님께서 친히 싸워 이김을 주신다.(21~22)

“①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②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③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Ⅳ.불합리한 승리의 비결을 배운다.

오늘 우리의 영적인 전쟁에서도 꼭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을 바꾸어가는 능력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가운데 말씀을 따라 움직이는 한 사람의 신실한 지도자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하나님의 택하신 小數가 필요할 뿐이다.

철저하게 불합리 할 지라도 그 명령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소수의 일군이 필요하다.

오늘 날 우리가 당면하는 靈肉의 어떤 일도, 싸움도, 전쟁도 우리가 주도해서 해결되거나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불가능한 싸움을 감당하면서 외치는 다윗의 고백을 들을 필요가 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7)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싸 안으시는 보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할 때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기게 하시는 능력과 은혜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승리를 맛본 시인의 고백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18:1~3)

①하나님은 우리가 일할 사람이 너무 적다고 탄식할 때 오히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너희 스스로 이루었다고 자만할 터이니 그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 한다면 너희들이 예상하고 상상하는 인원의 천분의 일의 사람이라도 그 일을 능히 이루게 하시리라!” 말씀하신다.

비록 사악한 아버지 사울의 아들이었지만 다윗과 더불어 경건한 신앙과 우정의 사람이었던 요나단은 “…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고 그의 병기 맡은 소년에게 격려하는 것을 듣는다.

②우리는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놀랄만한 방법으로 인간들이 전혀 효력이 없을 거라고 판단하는 엉뚱한 방법으로 그러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실 수 있는 분이시다. 山과 중무장한 적군들과 물로 막혀 있는 홍해 가에서도 모세를 통하여 약속하신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4) 시편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은 고라의 자손들은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 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46:10) 라고 확인 시켜주고 있다.

③이 약속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자녀들과 일꾼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귀한 능력의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삶기 위해서는 자신이 허약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 흘리심을 자신의 것으로 믿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첫째이다.

④다만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초월해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어두움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우리의 삶 속에서 몰아내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든지 그를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고 복종하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선택을 받는 일군과 백성이 되도록 하나님의 시키시는 훈련에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는 자세만이 우리를 호시탐탐(虎視眈眈) 넘어뜨리려고 넘보는 마귀 사탄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고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로부터 능히 온전한 승리를 성취하고 죄에 신음하는 잃어진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⑤일군이 모자라다고 탄식하고, 사탄의 세력이 강하다고 낙심하지 말고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드온의 3백 용사 같은 1당 천의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죄와 사망을 정복하고 오늘도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되신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