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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일 2:15~17 2004-03-21
만일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우리는 천국을 소망하고 살면서도 우리의 육신이 거하는 이 땅 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경험할 때가 많다. 우리의 삶이 영원을 목표하고 산다고 할지라도 역시 세상 밖에서 살 수 없는 이상 이러한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는 천로역정(天路歷程)의 길에 만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천국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신다면 왜 이런 일들을 당해야 하는가 의심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이니 그렇고 당연하다는 확신을 가질 때 이런 회의감(懷疑感)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세상은 점점 개선되어가기 보다는 험악해져 가는 것을 보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확신이 들고 그런 세상 속에서 택함을 받은 사실이 감사하고 일면에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어려움 것은 당연하리라는 각오를 새롭게 가지게 된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7~18)는 경계의 말씀을 당부하고 있다.

Ⅰ.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경계하신다.(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주님께서 요한 사도를 통해서 주시는 오늘 본문의 경계는 일면 복음서의 말씀과 반대되는 내용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3:16f)

물론 하나님께서 한 영혼이라도 잃어지는 것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독생자를 피 흘리기 까지 사랑하신 그 은혜가 세상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도록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그것과 우리의 사랑은 분명히 차원이 다르다. 절대적인 공의와 긍휼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불변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시고 창세전부터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인류구원의 역사를 진행해 가시는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으시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결국 독생자를 죽이는 세상이라면 당연히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 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공동]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죄성의 사람들은 절대로 둘을 다 사랑할 수 없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우리가 세상에서 죄로 인한 미움이 아니라 진리를 행하는 가운데 미움을 받는다면 이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이고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우리는 세상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일반적으로 사는 사람들과 같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디도에게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2:12) 라고 권면하고 있다.

오늘 나는 세상에 살긴 사는데 하나님과 세상 중 어느 쪽을 사랑하는가 판단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경계 때문이다.

성경은 어느 시대나 선택을 요구한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여호수아는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고 선언했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희미했던 아합의 시대에도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18:21) 는 말씀을 봐서도 확인되어 진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경계 하는데 ①이 세상, 바울 사도가 본 받지 말라고 경계한 바로 ‘이 세대’를 말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이 것은 영원한 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영원의 세계에 반대되는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화려하게 포장된 악의 세상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그러면서도 어리석게 “빌라도가 …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 (마27:24~25) 라는 간 큰 소리를 하는 바로 그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당부이고 경계이다. 처음에는 달콤한 것 같지만 나중에는 쓴 물과 슬픔과 절망을 주고야 마는 그 세상을 주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어리석은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주님은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시는 당부를 듣는다.

②세상에 있는 것들 이란 하나님을 거역하는 온 갓 불법 행위를 통틀어 가르치는 것들로 조금만 정신을 제대로 차린다면 결코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이고 사랑했다가는 반드시 후회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이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는 경계의 어두움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Ⅱ.사랑치 말라는 경계를 주시는 이유.(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말씀은 뱀의 유혹을 받고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봤을 때 느꼈던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3:6f)는 마귀 사탄으로부터 충동 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 지는 모든 것들이다. 사실 죄악 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교회보다는 더 만족을 줄 것 같이 여겨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실 공 생애를 위하여 세례를 받으시고 이 세 가지로 시험을 받으셨다. 주리시는 주님께 ①“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먹는 것으로 유혹했고, ②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큰 자랑거리 인가? ③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고 거짓 약속을 했다. 물론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세 가지의 세상적인 유혹을 다 물리치셨다.[누가복음에는 뒤의 두개가 바뀌어 있다.①③②]

오늘도 이 세가지 때문에 사회에 가정에 교회에 문제가 생긴다. 먹는 것,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 자랑하고 싶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준다. 사실 스트레스에서 자유 할 사람은 없다고 봐도 그르지 않다. 그런데 1998년도에 미국의 어느 통계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들을 %로 세분해 보니까 참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진정한 이유는 8% 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략 살펴 보면 전혀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우려로 스트레스를 받는 비율이 40% 이고 염려를 한다고 해도 전혀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스트레스원인이 30% 자존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12% 자신의 건강에 대한 우려로 오는 스트레스가 10%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비율은 겨우 8% 였다고 한다. 이런 통계가 결국 뭘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세상에 속고 산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보기에 그럴싸하고 내 것으로 소유하기만 하면 내가 세상에서 최고 일 것 같은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그것을 얻고자 다투고 싸우는 난장판이 되어 버리고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3:13) 라는 모습을 일반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런 모든 것들은 다 사라질 것들이요 지나가는 것들이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전7:31)

세상은 유행이라는 것이 있고 그 유행은 언제나 지나가는 것들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은 언제나 결말이 씁쓸하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다. 깊은 체험으로 믿음을 얻은 야고보는 경계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6~17)

그런대도 제 말이 오히려 거짓으로 들리는 사람이 있다면 안타깝다. “당신이 세상을 알기나 해?”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히 아십시오. 요한 사도 뿐만 아니라 저는 누구보다도 세상의 것들을 경험해본 자라는 사실을…

실천적인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1~3)고 책망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공동]

Ⅲ.우리의 목표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이 땅에 머무르는 것들이 아니다. “여러분들도 그런가?” 예수께서 자신에게 왕이냐고 묻는 빌라도에게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요18:36f) 고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 역시 이 세상이 아닌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우리의 왕국은 이미 이면서도 아직 이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있지만 주님의 통치를 받는 하늘의 대사관으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천국 행 비자를 받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수고에 대한 대가는 이 세상에서 온전히 받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 말씀이 아직 나이가 어리거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기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는 나이에 관계없이 중요하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나이 순이 아니기 대문이다. 우리는 이 맞지 않은 세상에서 어쩌면 고생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8) 바울 사도의 당부는 우리의 영원한 목표를 흐리지 않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교훈이다. 야고보의 교훈도 이 말씀과 다르지 않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그러므로 이 지상에서 우리의 자세가 분명히 있다.

①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②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5:7)

③깨끗케 살아야 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2:22)

④보이는 이 세상과 비교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표준새]

Ⅳ.결론.

어찌 보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 만큼이나 어리석고 마련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16:8)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