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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6:30~38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
우리는 지난 주에 주님께 물질을 드림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림의 감격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줌에서도 세상이 모르는 기쁨과 만족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남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스스로 수고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오히려 남들에게 끼쳤던 바울 사도는 그러한 삶을 친히 봐왔던 에베소 교회의 신앙의 지도자들에게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b) 는 귀한 교훈의 말씀을 남기고 에베소 교회를 떠난다.
사람이라는 근본 된 행복과 만족은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온다. 그리고 조금은 왜곡된 모습이 사랑에 굶주려 있고 대부분이 받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되든 사랑 없이는 못산다고 노래하고 갈구한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좀더 적극적인 방법을 가르치는데 남의 사랑을 바라는 것 보다 나 자신이 줘야 한다고 말씀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사셨다. 우리는 대부분이 경험하면서도 쉽게 노치고 마는 기쁨이 바로 주는 것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바로 끝없이 받고자 하는 인간의 사랑의 욕구를 충족 시켜 주시기 위해서 자신은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 하셨고 그 절정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이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무한한 만족과 기쁨을 가져오고 있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시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4)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사랑 받기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이 타락한 인류는 자신은 받고자 하면서 남에 대해서는 좀처럼 주지 않으려고 하는, 자신을 기꺼이 십자가에 내어 주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끝없는 사랑을 누리면서도 이기적인 독선이 채워지지 않는 모습을 그를 따르고 섬긴다고 하는 교회 속에서 조차 본다.
동물들도 자신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을 좋아 하고 특히 어떤 종에서는 각별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에 있어서는 사람은 동물들 보다 분명히 욕심이 지나치다. 적어도 오늘 우리들 속에서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진정한 행복의 원리를 터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평생 절대적 사랑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사랑에 굶주려 갈증하며 살 수 밖에 없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친히 주신 교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생명의 진리를 생각하면서 은혜와 생명을 누리기를 원한다.
Ⅰ.우리는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
1.우리를 향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랑은 무궁 무진하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다. 누가 이 사랑을 받았는가? 바로 여기 있는 우리 모두요, 우리 주님의 백성들 각자이다.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렘31:3)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런가 하면 바울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8~19)고 이미 부어진 사랑을 누릴 것을 당부하고 있다.(아는 만큼 행복할 수 있다) ①지속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배반하지 않는 한 결코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을 결코 거두어 가실 분이 아니시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주신 사랑은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다.
②질에 있어서 차이가 없고, 우리는 부부간이나 부모간에나 사랑의 굴곡이 심하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은 2천년 6천년이 지나도 전혀 불변하시는 첫사랑이다. 그런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을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도록 하시려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계2:4~ 5)고 당부하시는 것이다.
③결코 거두지 않으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구속의 은혜는 때로는 우리가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 자신들을 볼 때는 의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주님의 사랑을 의심할 근거가 전혀 없다.
2.더 무엇이 부족한가!
우리가 아직도 사랑에 갈증을 가지고 인간에게 호소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사랑의 놀라움을 잊었거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 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주님께는 이 끝없는 사랑을 지속적으로 구할 필요가 있지만, 주님의 사랑에 감격한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인간에게는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확고한 사랑과 보호를 확신하셨기 때문에 그러셨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랑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ⅹ2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랑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ⅹ2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랑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ⅹ2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충분히 감격한다면 사람들의 위로와 사랑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다윗은 이에 대해서 좀더 실재적인 고백을 드리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하였고 다시 34편에서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9~10)
바울 사도는 고백하기를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3:4~5)
“오늘 나는 무엇을 최고의 만족으로 삼고 사는가!” 점검할 필요가 있다.
[409:4 그 차고 넘치는 주의 은혜의 물결, 힘차게 밀려와 내게 만족하오니, 오 할렐루야로 주를 찬송하오니, 내 맘에 기쁨이 항상 충만함이라;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싸여서 내 영혼의 기쁨 한량없도다] 이 찬양이 자연스러운 기쁨의 노래가 되시기를 …
3.그러므로 우리가 줘야 할 차례이다.
이 엄청난 사랑을 누리고 나누는 데가 바로 교회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넘치는 사랑을 이제 옆의 사람들에게 나누도록 요청 받고 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Ⅱ.진정한 기쁨은 줌으로서만 느낄 수 있다.
다른 말로는 내가 받는 사랑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나눠질 때 확인되어진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간증하고 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 황금률이라고 하는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고 기록되고 있다. 언 듯 생각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내가 받기 위해서 줘야 한다고 이해하기 쉽지만 전체적인 이해는 그렇지 않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는 나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옆으로 나눔으로 그것이 더 확인되는 신비한 능력을 깨닫게 되고 이것은 실재적으로 경험하지 않고는 누구에게 들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줄 수 있는 것을 무한히 가지고 있다. 이 것은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것들이다.(사랑)
①복음을 줄 수 있고, ②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고, ③감격과 기쁨을 줄 수 있고, ④만족과 평안을 줄 수 있다. ⑤관심과 생각을 줄 수 있다. 사랑의 사람은 늘 그 대상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쓴다.
우리 대한 민국 사람들은 사랑을 정이라는 말로 대신해서 사용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사랑)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정(사랑)을 쏟고 정(사랑)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조남사]
우리 대부분은 주면서 누리는 사랑의 묘약을 받으려고 하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많이 노치고 산다. 주님의 사랑이 이러한 사랑의 절대적인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삶 속에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슴 아픈 모습이다.
Ⅲ.사랑을 가진 우리들의 이기심으로 세상은 메말라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우리가 복음을 가졌으면 세상과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신다.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말라,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너희가 만일 자기한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것을 알면 서로 꾸어 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 주어라, 그리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30~36; 공동)
가진 자들이 풀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그것이 경제이든 돈이든 사랑이든 마찬가지이다.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바로 이것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이다. “너희들은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것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것을 주어라!”고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약속이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이다.”(38-표준)
당시에 율법의 정신도 이것이었지만 그 율법을 이스라엘이 온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당부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이 갖지 못한 엄청난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 세상이 메마른 것은 가진 우리가 풀지 못하기 때문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로 하여금 이런 삶을 살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의 미움과 죄의 값을 대신 치루어 주셨다.
[373:3 어떤 사람 우상 앞에 복을 빌고 있으며, 어떤 사람 자연 앞에 사랑 요구하도다, 먼저 믿는 사람들 예수 사랑 가지고,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하겠네, 예수 사랑 가지고 예수 사랑 가지고,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하겠네] 오늘 나의 사랑의 창고를 닫아 두므로 세상의 영혼들이 기갈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 다음의 말씀들은 대단히 두려운 말씀들로 연결 되어지고 있다. 눈 속에 들보,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의 열매, 반석 위와 모래 위의 건축 등등으로 사랑을 실천 하라고 경계를 주고 계신다.
Ⅳ.조건 속에서만 주고 받는 것은 벌써 사랑이 아니며 행복도 없다.
그 것은 거래일 뿐이다. 결혼도 가정도 조건 속에서 지속해 간다면 그 보다 불행한 것은 없다. “~ 때문에 사랑 한다”는 말은 벌써 말 자체가 모순이다. 사랑이라는 말 자체가 조건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조건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고 증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이러한 사랑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흥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짐짓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또 조건 없이 주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원리와 다르기 때문에 희생을 감수해야 가능하고 주님께서 이것에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세상은 사랑의 조건을 찾지 못할 때 오히려 “제 왜 저러는데!” 라고 의구심을 가진다. 그러나 사랑이 일상이 되어 자연스러운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입으로는 사랑을 매일 노래하고 구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을 위선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 조차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조건 없는 주님의 사랑에 오히려 항변하고 대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맛본 사람은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사랑 만큼이나 받는 사람 외에는 이해가 어려운 것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의 처음을 소중하게 여긴다. 사랑도 예외가 아니다. 이 세상의 육신적인 사랑일지라도 처음 한 남자(여자)를 선택하고 그 사람에게 몰입했던 그 사랑을 지속적으로 지켜 간다면 이혼할 부부는 한 사람도 없겠지만 죄성을 가진 인간의 사랑은 처음에는 단순한 사랑의 조건을 가지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조건으로 바뀌어 버리는 안타까움을 보는데 결국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의 바탕 위에 세워지지 않은 사랑은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지속적인 행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주시는 교훈의 말씀이 바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랑 받음을 모르는 자는 사랑할 줄도 모른다. 우리 각자가 넘치도록 받는 이 사랑을 나눠줘서 사랑이 사랑 되고 이미 주어진 행복을 넘치도록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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