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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4:1~11 2004-06-13
기록되었으되…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죄인을 구원하실 일을 위하여 돌아 오시는 가운데 이 시험을 당하시는데 공관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가는 이 상황을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막1:12~13)는 단 두절로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였고 누가는 오히려 마태보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 자세히 쓰고 있는 반면에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시험을 바꿔서 기록하고 기록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의 시험은 우연이 아니라 성령에 이끌렸다고 하는 사실은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4:1~2f)] 세 곳에서 다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육신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신 독생자께서 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역사에서 가장 큰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육신으로서 검증이 되야 하기 때문에 이런 시험은 당하셔야만 했던 것으로 이해가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삶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고 확인해 주고 있다.

사실 주님은 공생애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시험을 당하셨을까 생각하면 감사하고 황송할 뿐이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야 닥치면 당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 주님은 우리보다 시험 앞에서 더 힘 드셨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온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분 앞에 간교한 사람들의 부추김, 비웃음, 모두가 다 유혹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특히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27: 39~44)는 십자가에서의 유혹은 창조 주이시며 못하실 것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병들어 고통하고 괴로워 하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하여서는 기적을 사용하시면서도 자신이 당하는 시험에서는 한번도 이적을 쓰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오늘 바로 나(우리)를 위하여 이다.

실재적으로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자신을 잡으려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타난 군인들에게 칼을 휘둘러 제사장의 종의 베어버린 귀를 고쳐주시면서 베드로에게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12여단(旅團, 사단보다 작은)-24연대]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마26:53~54)는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인생 속에 견디기 어려운 수많은 시험을 오늘 우리(나)의 구원을 위하여 그것을 견디신 주님께 감사드릴 수 밖에 없다. 그런대도 조그만 시험에도 넘어지고 쓰러지는 오늘 우리 자신들을 보면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바울은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전9:18b)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이 땅에서 우리가 쓸 권한을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다 쓰지 않고 아껴두는 것은 하나님께 칭찬이 된다는 고백이다.



Ⅰ.시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다.

①주님께서 시험을 당하셨다면 우리야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는 이상 우리는 쉼 없이 시험에 노출되어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에게 달려 든다. 예배에 참여하는 것 조차도 시험을 당할 때가 있다. 베드로 사도는 격려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②시험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럼으로 시험을 받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시험에 지는 것이 문제이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벧후2:20) 주님은 그래서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6:13f) 라고 구할 것을 말씀하셨다. 시험을 받는 것과 드는 것은 차이가 있다. 시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듯이 모든 사람이 다 받을 수 있다. 그럼으로 시험을 받는 것은 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시험에 들어서는 안 된다. 오늘 제목의 내용처럼 이 말씀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을 나누겠지만 죄성을 가진 인간 스스로는 작은 시험 조차도 이길 수가 없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승리할 수가 있다.

③시험을 이기면 믿음이 성장한다. 주님께서 이 시험을 이기시고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처럼 시험은 어떤 경우든 이겨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 다니엘과 세 청년 그리고 욥이다. 시험에 져서 그 결과가 비극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돈의 시험에 빠진 사람들로 가룟 유다와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들이고 그들은 결국 시험에 들어 죽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Ⅱ.시험의 성격을 본다.



1.먹는 시험.(3~4)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먹는 시험이 제일 흔하다. 오늘도 이 지구촌에는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엄청나다.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욕구 그러나 마귀는 간교하게도 이 가장 원초적인 욕구 조차도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간악하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가장 사악한 것은 이 먹거리로 범죄 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다. 마귀는 상한 음식 재료가 아닌 음식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주님의 주림을 시험하고 있다. 주님은 말씀을 사모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마15:32) 주님은 분명히 그의 은혜를 사모하고 생명을 사모하는 자들의 영육의 양식을 다 채워 주시면서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주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주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사모하여 육신의 굶주림 조차도 잊고 있는 백성들을 위하여 기적의 떡을 마련하셨지만 자신을 위하여는 기적의 떡을 만드는 것을 거절 하셨다.

주님은 주림으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사실 오늘 날은 잘 먹으려는 시험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 문제가 부끄럽다.[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6:11)] 사실에 있어서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것으로 시험 당하는 것 보다는 그야말로 잘 먹고 좋은 것 먹기 위해서 시험에 드는 일들이 더러 있다. 신앙의 사람들이라면 조심해야 할 부분이고 이 먹는 것이 주님의 약속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지 못한다면 대표적으로 비교되는 인물이 한 사람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 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2:15~17)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 주님은 넉넉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시다.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인생의 삶에 떡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떡으로만 산다면 단순한 동물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이라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도 영적인 양식으로 함께 취해야 산다. 이를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2.명예의 시험.(5~6)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사람이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다음 순서에서 추구하게 되는 것은 바로 명예욕이다. 이조 시대의 양반을 돈 주고 거래하는 문제도 그렇고 오늘의 시대에는 많은 돈을 주고 가짜 학위를 사는 문제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요즈음에도 유명인과 함께 하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려고 하는 것도 먹을 것이 없던 시대에는 없었던 일이다.

첫번째의 시험이 바로 예수께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면 이 두 번째 시험은 하나님께 기적을 요구할 것을 시험하고 있다. “기록되었으되”로 자신의 유혹을 거절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교묘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무너뜨리려는 시험으로 주님을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골자기까지 사뿐이 내려선다면 군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복음전파가 쉬워질 듯도 하다. 마치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의 모습을 주문하는 것 같은 감마저 든다.

그러나 거기에 답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볼 때 그것은 선치 못한 의도임을 이해하게 된다.

마귀가 인용한 말씀은 앞뒤를 다 인용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보호에 대한 약속이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시91:9~13)

우리는 오늘날도 이런 유혹을 얼마나 자주 받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죽어가는 한 사람만 살려 주시면 교회가 빨리 성장할 수 있을 텐데!’ 기도와 함께 최선의 수고와 열심으로 일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한방에 해 주시기를 바라는 욕망이 언제나 일어난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기적을 기대하는 것 그것이 죄는 아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충분히 그러실 수도 있다. 그러나 기적에 의지하여 일하려는 자세는 옳지 않다. 하나님을 위하여 다하고, 다하고, 다하고, 다하다 보면 우리가 노골적으로 기대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어떤 경우 기적을 베푸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적으로 시험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신6:16)] 하였느니라 하신대”



3.종교적 시험.(8~10)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6:13)] 하였느니라”

종교가 최종적인 부분이다. 사실 사람들의 최종적인 가치는 누구를 섬기느냐에 있다. 또 섬기는 이유도 여러 가지이다. 우리는 바로 섬기는 대상의 종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이에 대하여 선언 하기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6~18) 베드로 사도도 증거하기를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벧후2:19)

많은 사람들이 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에 침을 흘리고 마음을 뺏겨버려서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서슴지 않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영광은 “천상의 영광(天國榮光)”에 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누가 복음에는 시험하는 자가 여기에 덧붙여 말하기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4:6b)고 자신한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 마지막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천하(天下-세상의 영광)의 영광을 위하여 영혼을 팔고, 신앙을 팔고 생명을 파는 일들이 흔한 것을 보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유혹에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10)“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6:13)]고 거절 한다. 사람이면 당연히 섬겨야 할 대상은 천하의 영광도 아니요, 재물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멸망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나를 위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 밖에는 없다.



4.만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하나님의 말씀이나 약속은 만일이 필요 없는 이미 확실한 약속이다. 우리는 신앙 속에서도 “만일”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하나님과 흥정하려 들고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나 성령을 “만일”이라는 가정으로 대할 때가 있는데 사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만일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만일 그랬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인데’ 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많이 한다. 우리는 만일 이라는 가정을 잘 못 쓴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을 향하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고 이것 이것을 해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겠다는 자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것도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가정이 필요 없다. 바벨론에 포로로 있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서 이것을 본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7~18)

오늘 우리의 질병이 영영 낫지 않아서 내가 죽어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셔야 하고 내가 망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더 이상 조건이 필요치 않다.



Ⅲ.승리의 비결.

우리가 오늘 어떤 시험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 시험에서 승리의 비결 역시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시면서도 모자라는 인간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말씀들을 통하여 시험을 물리치셨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연약한 인간의 지혜는 얼마나 부족한가. 인생의 승리의 비결은 기록된 말씀에 모두 있다. 예수께서 첫번째 시험을 “기록되었으되” 라고 말씀을 인용하시자 마귀도 말씀을 인용한다. “기록하였으되” 라고 대응하는 것을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얼마나 말씀을 잘 알아야 하겠는가?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고 베드로 사도께서 권면한다. 우리는 에베소서 6:10~18의 그리스도인들의 무장을 안다. 어떤 싸움에도 지지 않을 충분한 병기를 가지고 있다. 삶에 확신을 주는 바울 사도의 권면은 디모데후서에 기록되고 있다.(3:15~17) “기록되었으되”는 바로 오늘 우리의 승리의 비결이다.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신 후에는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11)는 기록을 본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4:13)는 야릇한 기록이 덧붙여져 있다. 마귀는 그 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수없이 유혹하고 오늘 우리에게도 역시 같은 시험으로 넘어뜨리려는 시도를 주님 오실 때까지 지속해올 것이므로 우리는 남자답게 깨어 의를 행하며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러한 마귀의 시험을 주님처럼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시험은 반드시 이겨야 하고 시험을 받는 것이 죄가 아니라 시험에 이기고 나면 오히려 신앙은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먹는 것보다 주님의 약속을 더 귀중히 여기고 순종하는데 힘쓰고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기 보다는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순종하고 우리의 섬기는 대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끝없는 마귀의 시험에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록된 말씀이 능력이 있음을 믿고 성령을 의지하여 오늘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