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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우리는 산상보훈(마5:~7:)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과연 어떠해야 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맡은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 되는 교훈임을 말하곤 한다.
오늘의 대중 매체를 보면 소수의 조명을 받는 사람과 그의 영광을 위하여 들러리를 서는 사람들과 무대를 장치하고 조명을 관리하고 카메라를 움직이며 그 영광스런 얼굴을 비추기 위해서 애쓰는 무대 뒤의 사람들이 있다. 모든 시선은 spotlight를 받는 사람에게만 집중되고 쇼는 끝난다.
그러한 영광을 동경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서부터 인기 있는 연예인만을 동경하고 다른 공부는 하려고 하질 않는다.
이것이 비단 세상에만 있어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속에도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의 갈채와 환호성을 받는 일은 다 잘 하려고 하는데 정말 드러나는 공적이 없는 일에는 기꺼이 희생하려 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들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될지 모르지만 본인에게는 무가치하다는 두려운 말씀을 하고 계시다.
오늘 본문을 비롯하여 이 마태복음 6장 전체가 사람을 의식하는 신앙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다.
본문을 비롯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라는 경계는 계속적으로 주어지고 있다.
당시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①구제와 ②기도와 ③금식이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하나님께 칭찬이 아니라 통렬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임을 말씀하신다.
(1~2)"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여기서 구제는 사람대상이고 기도는 하나님을 대상하며 기도는 자신을 대상하여 싸우는 신앙적 투쟁이다.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을 사람 대상으로 하였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것의 근본이 다 신앙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대상해서 해야 한다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할 때에" 신앙인으로써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들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Ⅰ.하나님을 염두 해 두고 하는 믿음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생활이란? ①주를 기쁘시게 하는데 목적을 두는 것이요, ②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요, ③삶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사람을 의식하여 행하는 것이라면 이미 본질에서 이탈된 것이다.
사람을 의식하여 하는 신앙 행위는 곧 사라지고 만다.
세상에서의 영광은 잊혀지고 사라지는 영광임을 신앙의 사람들은 수시로 생각해야만 한다.
Ⅱ.신앙의 성숙의 문제이다.
어린아이의 집단과 성숙한 사람들의 집단은 지향하는 것이나 결과에 있어서 큰 차이를 나타낼 것이다.
우리가 어려서는 조금이라도 무엇을 배운 것은 남에게 자랑하려고 한다. 그러나 장성해서는 이러한 어린아이의 유치한 모습을 버리게 된다.
삶에서 주님과의 관계가 밀접하고 주님의 칭찬을 맛본 사람일수록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섬기고 봉사하게 되어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2,5,16) 고 경계하신다.
신앙에 있어서 사람을 의식하는 것은 참으로 유치찬란한 것이다.
Ⅲ.연륜과 관련이 없다.
연륜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 때문에 도전적이지 못하다. 항상 안전성을 먼저 생각하고 변화를 싫어한다. 그러나 신앙은 끊임없는 도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도전 없이 발전과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타성에 젖어서 처음의 각오와 결심이 흐려지기 마련인데 신앙의 삶에도 그런 것이 있는 것을 본다.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두려움을 접어두고 변화를 시도한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지적을 받고 있는 유대인들은 평생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Ⅳ.예수 그리스도만 무대의 중앙에 세워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영원한 세계에서 영광의 주인공들이 될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9)
몸을 드림에 있어서 봉사와 기도와 금식을 하면서도 주님이 내 행위 속에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 물질을 드림에 있어서도 주님을 의식하고 드려야 한다.
그래야 주님께서 받으시고 갚으실 것이다.
Ⅴ.결론.
우리의 삶의 기준은 분명히 세상의 방법이나 가치와 다르다.
바울사도께서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13:3~4) 라는 위대한 사랑의 헌장은 오늘 주님의 말씀과 함께 이해해야 가능한 해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이란 말씀은 '주님을 의식함이 없다면' 이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환호를 받고 칭찬을 받는 것은 순간이다. 손뼉 치던 그 사람들은 나의 조그만 실수가 나타나도 그 칭찬한 것을 아까워 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칭찬은 녹 쓸지 않는 순금 트로피보다도 영원히 우리의 믿음의 영매들을 오래 간직하실 것이다.
우리가 땅세서의 영광을 바란다면 오히려 세상 속에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주님만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4) 약속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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