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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베 전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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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1~4, 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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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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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보이려고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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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凡事를 행하는 것이고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닌 성령을 의식하는 삶을 말한다. 우리가 몇 주에 걸쳐 상고한바 있는 앞의 5장이 하늘의 백성으로서 기본적인 자세로 관계의 삶에 대한 경계였다면 오늘 이 본문을 비롯한 6장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체적인 생활내용으로 하늘 아버지 앞에서의 개인적 신앙적본질에 충실할 것을 격려하시는 주님의 당부이다.
1절이 이 6장 전체의 주제와 같은 말씀이라면 2~4절은 하나님 자녀들의 올바른 구제활동의 자세와 다음 주에 말씀을 나누겠지만 5~15의 기도생활에 대한 경계, 그리고 16~18의 하나님께 간청을 위한 금식의 자세와 19~24절의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물질관리 마지막으로는 25~34절까지 주님의 자녀이지만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사는 백성들의 의식주에 관한 염려를 해결하는 자세를 교훈하시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은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중요한 부분이면서 핵심이라고 할 기도의 부분들은 다음 주로 미루고 이 기도와 함께 행해야 할 구제와 금식에 대한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각자의 순례자로서의 삶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명령에 생명을 바쳐야 한다고 하는 사실에 누구나 동감한다. 그럼에도 아이러니 한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는 늘 사람 앞에서의 자신을 나타내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알아 주시면 그만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나의 좋은 신앙적 행동들을 사람들이 알아주고 칭찬해 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아 참 저 사람, 믿는 사람으로 구제를 잘 하는 구나! 기도를 잘 하는구나! 금식하면서 구하는구나!’ 라고 알아 주기를 바라고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그런 쪽에 민감하다 보면 분명 좋은 일을 하면서도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들을 더러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아시면 그만” 이라는 말은 하면서도 찬물 한 그릇을 대접해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하고 칭찬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아시고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시기를 기대한다면 참으로 영광이 되지만 사람에게 알리려는 의도는 벌써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는 얕은 신앙 때문이다. 또 참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고 맛본 신앙의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더 큰 감사를 가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주님께서 이런 유의 사람들인 바리새인을 책망하신 부분이 여러 군데서 기록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칭찬만을 바라고 신앙적 행위를 함으로 현재에도 감사를 갖고 하나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는 영광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
Ⅰ.주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상 받기를 바라며 사는 사람들이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천국의 백성들은 삶의 모든 원인과 방법과 목표가 하나님께 있다. 이것은 비단 예배나 교회 생활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살기 위한 생업이나 교육은 물론이고 취미활동까지도 그러해야 한다. 그럴 때 천국백성이라는 말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것은 세상일이니까!’ ‘이것은 신앙 부분이니까!’라고 간격을 긋는 것 자체가 사실은 신앙적이지 못한 이원론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옛말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제단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했던 의미는 오늘 모두가 제사장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살던지 그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며 사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일하고 살아야 한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과 고백이 바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는 말씀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이미 의도된 자체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고 믿음 생활에 있어서 어떤 의도된 자세는 이미 하나님의 눈 밖에 있음을 경계하고 계신 것이다. 사실 사람은 다 몰라줘도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것은 가슴에서부터 만족을 느낄 수 있고 식지않는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인데 주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면 자연히 사람을 의식하는 모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의는 한 순간의 칭찬으로 날아가 버리지만 하나님을 의식하고 행하는 아름다운 일들은 하나도 헛되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영원에서 보상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의를 행하는 사람이 많아져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계 하신다. 바울은 이런 입장에서 더욱 단호하다. “…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3)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모든 것이 죄라는 말씀이다. 이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과 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다윗과 요나단의 복음성가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 그 겸손이〃, 〃 그 믿음이〃, 〃 그 충성이 〃,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그리스도인은 다시 오셔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床)을 베푸실 것이라(시23:5)는 기대하나로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설움과 갈등을 이기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이러한 영원에 대한 약속을 잃어 버린다면 미래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영원을 사는 하늘의 백성이라면 자기 인생이 아닌 순간적으로 배우처럼 선을 행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경계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비록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지 못하고 심지어 오해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미래에 상을 얻는 소망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
Ⅱ.사람에게 칭찬을 바라고 선한 일을 행하거나 자랑하지 말아라!(2~4)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1절에서 전제한 “義를 행하는 것”이 이 말씀부터는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구제의 행위는 모든 시대와 역사에서 필요하고 칭찬 되어지고 있다. 이 말씀은 분명히 구제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구제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구제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이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은 늘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제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다. 분명히 구제하는 일을 아름다운 일이고 칭찬 받아 마땅한 행위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제에 더 신경을 씀으로 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도움을 입을 수 있고 처음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서도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2:44~45) 라는 모범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베풂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친다고 할지라도 자랑하고 과신하는 이유에서 한다면 다른 사람은 그것으로 유익을 입고 도움이 되어도 당사자에게는 영원한 상이 없을 것이라는 경계의 말씀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바울의 권고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 여기서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하는 즉,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한 구제를 말씀하고 있다고 깨닫는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사랑 받은 자녀가 되었으니 이 섬김은 거기에 비교한다면 너무나 작은 것이지요!” 라는 고백으로 헌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3) 사실 두 手足의 행동은 한 머리가 명령을 하는데 어떻게 오른 손이 하는 행동을 왼손이 모를 수 있을까? 다만 그만큼 은밀히 해하라는 당부로 여겨진다. 실제로 어떤 경우 구제를 받는 사람은 수치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은밀히 행해져야 하는 경우는 더러 있다.
솔로몬은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지니라”(잠27:2)고 권면 한 바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에 할 발짝 더 나아가서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지 말라 그러면 너희 상을 잃게 된다.’ 라고 가르치신다.
Ⅲ.금식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게 알려지게 하는 것은 헛 것이다.(16~18)
(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구약의 율법 속에서 금식은 개인적이거나 국가적인 어려움에서 행해지고 명령 된 신앙적 과제였음을 읽게 된다. 개인의 회개의 고백에서 다윗은 “내가 곡하고 금식함으로 내 영혼을 경계하였더니 …”(시69:10) 라는 고백을 하고 있고, 고국의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느혜미야 역시 한탄하며 금식한 기록을 접하게 된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1:4),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종교적인 과제로 금식을 하기도 했다.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레23:27) 바벨론의 포로 되어 있을 때에도 몰살당할 민족의 위기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을 읽게 된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에4:16~17)
이러한 신앙적 관습은 세례요한의 때까지도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었던 것을 본다.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9:14)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부정적인 금식으로 인한 지적 때문에 금식을 신약교회의 신앙의 권장 항목으로 가르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도 금식의 신앙 행위는 나타나고 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2~3) 최초의 이방 교회의 중심지였던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선별하고 보내는데 금식하고 기도하며 파송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행14:23) 라는 기록도 교회의 중책을 맡김에 있어서 금시하며 주님께 부탁하는 신앙적 모범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금식이 반항적이거나 어떤 의견 관철을 위하여 행해지는 모습들을 신앙 밖의 세계에서도 더러 봐오는 일들이다.
금식에 대한 신앙적 행위는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계시다.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58:3~7)
금식이란 신앙 행위는 나 자신은 고통을 자처하되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평안을 끼치는 그런 자세로 행해져야 할 것을 주님께서 당부하고 계신 것을 이사야를 통하여 가르치시는 주님의 당부를 듣는다. 다른 모든 신앙적 행위가 물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행해야겠지만 하나님께 절실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입기 위한 금식은 더욱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믿음의 고백적 행위이다.
이런 이유에서 금식할 때는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도록 외형적인 몸가짐을 더 깨끗이 하고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씀이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는 금식보다 어떻게 보면 사람에게 보이고 선전하려고 행하는 금식의 모습들을 많이 보는데 그것은 하나님께는 아무 의미가 없는 종교적 행위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불편한 관계의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 금식하고 있다’ 라는 항변적인 자세까지도 보이는데 이것은 신앙인으로서 결코 옳지 않은 자세임을 주님은 경계해 주고 계신다. 다른 신앙적 행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금식이야 말로 하나님 만을 의식하고 행해야 하는 믿음의 의식이다. 사람에게 과신하려는 신앙의 행위로서의 금식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세에서 나타나는 불신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Ⅳ.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1b)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네 아버지께서6b) 갚으시리라”(3b, 17b)
오늘 우리의 말씀의 제목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이다.
믿음의 최종적인 기대는 언제나 하나님께 상급을 기대하는 것이고 그런 입장에서 보이는 현실보다는 영원을 기약하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고 가르치고 있고 주님께서 이를 누누이 강조하고 계시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신앙의 경계는 언제나 목표를 다음의 세대 곧 영원에 둬야 함을 강조하셨다. 어떤 경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못하면 이 세상도 잃고 영원도 잃는 역사와 시간의 미아(迷兒)가 될 수 있다.
사실 믿음으로 행하는 은밀한 일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이 없다면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행위들이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 라는 증거는 진리일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의 은밀한 일들은 다 부끄러운 일들이다.(호텔에서 나오면서)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은밀한 일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어야 한다. 세상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부끄러운 것들이지만 하나님의 천국 백성들은 아름다운 일들을 은밀히 행하는 차이가 있고 세상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영원의 심판을 불러 오겠지만 천국백성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오히려 영광을 영원에서 약속하고 있다.
바울은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엡5:10~13) 오늘 지적되는 모든 신앙적 행위는 바르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요 나중에 영광의 역사에서 빛으로 나타날 것들이다. 그것은 이 어두움의 역사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만 가능하고 거기에는 또 확실한 영광이 약속되고 있다.
다시 로마서에서 경고한 바울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이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14:23) 선한일, 구제의 일, 기도의 일, 금식의 일 등등의 중요한 신앙적 과제가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면 오히려 죄가 될 수 있다는 경계이다.
세상의 불신의 사람들은 죄와 수치스러운 행위들을 은밀히 행하지만 참된 천국의 백성들은 선과 의와 기도와 금식과 구제와 섬김 조차도 은밀히 행함으로 사람은 볼 수 없지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상급을 넘치도록 누리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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