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나라 백성의 義의생활, 救濟생활, 祈禱생화, 禁食생활에 이어 가장 그 사람의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物質생활에 대한 교훈이 증거 되고 있다. 19절에서 마지막 34절까지가 다 물질에 관련된 말씀이겠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부분(19~24)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이 물질로 인해서 야기되는 근심의 문제로 다음 시간에 다루도록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신앙의 깊이에 따라서 가장 힘겨운 것도, 가장 쉬운 것도 이 물질 생활이다. 영적으로 자유를 누린다고 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감이 있는 부분이 바로 물질을 부리느냐! 아니면 물질에 붙잡혀 사느냐는 간격에서 볼 수 있다.
듣는 말씀이 시험되기 쉬운 부분이면서 가장 은혜 될 수 있는 부분도 바른 물질사용에 대한 권면이 되기도 한다. 다른 신앙 영역은 어렵지 않게 수용하면서도 사실 물질 사용에 관한 가르침을 전하면 개인의 재산권 침해 같이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장성한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절대적 원칙 속에서 이해할 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장성하지 못한 어린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자랄 수 있도록 물질의 섬김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바르게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하신 선언은 精神世界나 타의에 의한 압제에서 육신의 자유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의 領域에서의 자유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믿을 때 세상에서 가장 유용하고 힘이 있는 것 같은 물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확신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자신이 친히 십자가에 매이신 고난의 가치를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과 몸과 가진 것이 참으로 자유 한가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Ⅰ.진정한 영원 생활 설계사의 권면.(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우리는 이 땅에서도 저축과 보험을 들고 좀더 낳은 결과를 기대하고 미래를 준비한다. 이것은 분명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으로 믿고 언제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을 살면서도 또 다른 면에서는 이 땅에서 평생을 살 것도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분명히 미래에 대한 충실한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 설계사의 권면으로 보험을 들고 목표를 정하고 정기저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원에 대한 설계를 늘 흐트러짐 없이 해 나아가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의 노후 준비나 불행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영원에 대한 준비나 대책은 게을리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누가복음 16:19~31[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의 이야기는 가난을 찬양하고 부자를 경멸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 땅에서 연락하면서 영원에 대한 대책을 전혀 하지 않은 것에 문제가 있다. 12:13~21에 나타나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20~21절의 결론은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는 경고이다. 이 부분은 ‘육신을 위해서만 재물을 쌓고 영원을 위하여 재물을 쌓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때에 다가올 고난과 위기를 감당하기 위하여 생활 설계사의 권면을 듣는 것처럼(요즘은 사실 이것이 악용되기까지 하는 것을 더러 본다.) 영원의 생활 설계사이진 예수 그리스도의 권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의 장래와 마지막을 위한 대비를 하는 것 만큼 영원에 대한 경계의 권면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1.땅에 저축의 위험성…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19) 사람들은 재물을 쌓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그러나 재물은 쌓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해야 되는 것이다. 어떤 경로로든지 재물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질 수 있었다면(이것은 비단 돈 뿐만이 아니라 지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 만큼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은혜를 더 받은 것이고 더 많이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 은혜를 또 은혜 되게 하기 위해서 바르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나치게 모으는 데만 신경 쓰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상하게 되고 원수를 만들기까지 하는 것을 본다. 땅에 쌓지 말아야 할 이유를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고 경계하고 있다. 이것은 다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결과들이다. 쌀이나 곡식을 조금씩 자주 사먹는데 좀이 생기는 예는 있을 수 없다. 언제나 지나치게 많이 쌓아 두고 오랫동안 쌓아 두고 관리를 제대로 못할 때 좀은 생기고 그 좀은 곡식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옆의 책들까지 구멍을 뚫어 못쓰게 만든다. 동록(銅綠)은 자주 사용하는 놋그릇에는 결코 생기지 않는다. 놋은 본래 잘 닦았을 때는 금빛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방치하면 파란 녹이 흉하게 생기고 만다. 도적이 설치는 데는 언제나 돈이 많이 쌓여 있는 은행이거나 돈이나 귀금속을 많이 보관하는 집에 들락 거리게 되어 있다.(강 건너 불타는 큰 집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 x“집이 불탈 걱정이 없는 것도 다 이 아비 덕인 줄 알아라!”- 路宿者 아버지x) 돈과 재산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되어 사용되지 않는 재산에 대한 경계이다.
2.하늘에 쌓으라는 권면…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20) 이것은 어쩌면 천국백성의 가장 사실적인 자기 표현이다. 예로부터 대개의 검은 돈은 스위스 은행에다가 저축을 하는 것이 우리 나라 부정직한 졸부(猝富)들의 저축 수단이 되어 왔고 어떤 경우에 그런 돈을 주인이 찾아 가지 않는 경우도 더러 생기는 것 같다. 하늘에 쌓아 둔 재물에 대해서는 자연 해충이나 물리적인 변화가 불가능하고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축 낼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금고이다. 성경은 그렇지 못함에 대한 경계를 늘 주고 있다. 야고보는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5:1~3)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하늘에 재물을 쌓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경계와 장래를 위해 하늘에 쌓는 방법을 소개하여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고 강력하게 경계할 것을 당부한다. 이것은 단순히 연보나 선교를 위한 재정 뿐만이 아니다.
3.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너희를 위하여”(19, 20)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거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권면을 하나님께서 왜 하실까 하나님께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 인간의 손으로 채우시기 위해서인가?
하나님께서 선언 하시기를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시50:10~12)고 하셨다. 그런가 하면 바울은 아덴의 철학자들을 향하여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행17:24~25)고 소개하고 있다.
욥기서에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스스로 유익할 따름이니라”(욥22:2)고 하였고, 오늘 본문에도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19),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20)” 라는 이유가 분명히 붙어 있다. 설날 같은 때에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돈을 받으면 부모들은 아직 어린 아이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불안해서 맡았다가 주겠다고 하는데도 아이들은 흔쾌히 맡기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에 신실한 부모라면 아이의 돈을 맡았다가 붙여줬으면 줬지 결코 떼어먹지 않을 것이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당부의 말씀은 꼭 그와 같다. 죄성이 있는 우리는 하나님 만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권고를 주고 계시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후12:14b)고 말하고 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전혀 우리를 위해서 이지 하나님 자신을 위한 당부가 절대로 아니다.
Ⅱ.마음의 행로(行路).(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머무는가?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어디로 가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언제나 자신의 귀한 것을 투자 한 곳에 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당연히 우리의 마음이 썩어질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천국에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당부의 말씀이다.
누가의 기록에서는 이 마태복음 6장 말미 같은 말씀을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1~32)고 하시고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12:33~34)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의 가장 귀한 가치를 둔 곳에 가게 되어 있다. 여러분의 마음이 천국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도 천국의 투자는 분명히 소중하다. 213:3세상부귀 영화와 즐겨 하던 모든 것, 주를 믿는 내게는 분토만도 못하다, 4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다, (후렴)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이 찬양의 고백이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 …
Ⅲ.바른 가치의 기준은 영적인 밝은 안목에서부터.(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왜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에서 인생의 목표 즉 투자를 바로 하라고 권면하시다가 갑자기 눈 이야기를 하실까? 그러나 우리의 눈은 우리 삶 전체를 이끄는 도구이다. 우리의 시각이 우리의 목표를 보게 하기 때문에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인 안목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보는 안목이 하나님의 빛으로 밝게 볼 수 있는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는 땅에다 재물을 쌓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요11:9) 하셨는데 이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신앙의 사람들이 넘어지고 실수하고 후회하느냐 하면 어두움이 틈타서 그렇다. 그래서 누가 복음에서는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11:35)고 경계하신다.
여러분! 세상의 것이 크게 보이고 하늘의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면 우리 속에 있는 영적인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점검해야만 한다. 천국의 음성이 희미하고 세상의 소리가 크게 들린다면 역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의 보화를 하나님의 나라에다 지속적으로 쌓을 수가 있다. 그래야 바로 된 천국 백성이지 말만 하나님나라 백성이라고 하면서 땅에다가만 보화를 쌓는다면 그 시민권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우리의 눈을 무엇이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장래를 준비하고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弱肉强食의 짐승의 눈과 같은 안목을 가지고 ‘강대 약, 약대 강’으로 처신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눈이 바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신령한 빛으로 밝아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책망 받을 수 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7~18)
베드로 사도의 경계를 들어야 한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고 당부하고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1:8~10)고 권고한다. 여러분들의 가치가 하늘의 빛으로 충만하여 하늘의 신령한 것들이 더욱 밝게 잘 보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Ⅳ.섬길 주인을 바로 선택하라!(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실 이 말씀도 앞의 이야기와는 조화가 잘 되는 것 같지 않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시고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 다음에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하시더니 갑자기 두 주인 얘기가 나오니 말이다. 그러나 이 말씀 역시 무관하지 않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일평생에 반드시 무엇을 섬기게 되어 있는 존재이고 역시 누구를 섬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양이 나오고 그 사람의 장래가 결정된다.
바울은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고 가르친다. 우리는 반드시 섬기는 자를 위하여 일하게 되어 있고 재산을 바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되는 문제점은 섬김의 대상이 아닌 것을 섬김의 대상으로 받들고 있다는 데 있다. 분명히 하나님은 만 인류의 섬김의 대상이고 이를 위하여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주님의 희생으로 말미 암아 섬김의 대상이 아닌 것을 섬기던 우리로 하여금 바른 섬김의 대상인 하나님을 찾게 한 것이다. 그러나 재물은 섬김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용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1.사람은 절대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여기에 쓰여진 ‘재물’은 ‘맘몬’ 신이다. 오늘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한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둘을 다 잡겠다고 양쪽을 다 쫓고 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18:21)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4:4)
2.양쪽에 다 충실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절대로 양쪽에 다 충실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부도 일대일 이다. 지금도 양쪽에서 오락가락 한다면 빨리 한 쪽을 정리(배신)해야만 한다.
3.하나님만이 인간으로부터 영원히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재물은 절대로 섬김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기형적인 사람만이 섬김의 대상인 하나님을 물질 취급하고 대신 그 자리에 재물이나 다른 것들을 올려놓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2~23) “…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1:25b)
Conclusions: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많은 재산을 갑자기 잃어버리고 후회하기를 “이럴 줄 알았으면 있을 때 하나님께나 드렸을 것을…” 이라고 후회하는 일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런 후회는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고 그렇게 후회할 때도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섬김의 대상은 분명 하나님 뿐이시다. 재물은 바로 그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한 도구일 뿐이므로 이것이 바뀌는 것은 분명 영적인 안목이 하늘의 신령한 빛이 아닌 어두움에 잡힌 경우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보물이 쌓여 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천국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데도 가치가 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당부의 말씀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혀 우리를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까지 우리의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가치를 어디에다 쌓고 있는가? 땅인가, 하늘인가?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더 관심이 있는가? 주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하시고 나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1) 말씀하셨다. 오늘 이 가르침이 말에서만 그치지 않고 실재적인 우리 인생을 움직이는 교훈이 되시기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