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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6:25~34 2004-09-12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나눠야 하는 말씀은 세상 이야기 여서는 안된다. 세상의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반면에 예배에서는 하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시간조차 세상의 그럴싸하거나 우스개 소리, 잡다한 소리로 대신해서는 안된다고 확신한다.

오늘의 이 말씀도 신앙의 사람들에게 가장 일반적인 은혜의 이유가 되는 부분이다. 세상에 모든 사람은 근심을 면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곤란 중에 있는 욥은 고백하여 이르기를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욥14:1) 고라의 자손들은 하나님께 슬픔으로 노래하기를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왔사오니”(시88:3) 라고 고백한다. 이는 다 죄 아래 나서 죄를 지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의 진실한 고백이다. 그러나 확실한 천국 백성들의 다른 점이 바로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고 감사로 사는 것이다. 빈 들판에서도 수많은 군중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불치의 질병도 고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늘 가까이에서 뵈었던 베드로는 기꺼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 하심이니라”(벧전5:7)고 믿음의 사람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역시 바로 앞의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24)는 지난 주의 말씀을 전제로 한다. 이름이 천국 시민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흔들림이 없는 의연한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경계이기도 한다. 예로부터 큰 나라의 왕자나 공주는 그 왕국에 어울리는 위엄이 있었고 그 위엄을 갖추기까지 여러 부분에서 훈련을 시켰던 것을 본다.

우리는 계속 천국 시민의 헌장을 공부함에 있어 오늘 본문은 하늘 나라의 백성의 마음이 나눠짐에 대해서 경계를 주고 있다. 염려는 절대로 천국시민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경계해야 되는 것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삶의 게으름과 방치를 합리화 하는 것에 대한 경계이다. 자칫하면 새와 들꽃의 비유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라는 오해의 소지에서 그렇다. 이 말씀을 상고할 때마다 언급하는 것이지만 나뭇가지나 둥지에 앉아 있는 새가 아닌 ‘공중의 새’와 정원에 길러지고 있는 백합화가 아니라 스스로 견디고 자라가는 ‘들의 백합화’에 게으름의 경계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Ⅰ.염려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이 전체 문맥의 주제이다. (25, 31, 34)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는 27, 28을 포함해서 무려 5번이나 “염려”라는 말씀이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 쓰이고 있는 염려[헬, merimnao(메림나오)]는 ← (헬, merizo(메리조), 나누다, 분리하다, 다르다)에서 왔다고 하는 것에 동의 한다. 분리된 마음은 평안치 못하고 늘 갈등하며 혼란 한다. 하늘 나라의 백성이 천국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 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 속에서조차 ‘일편 단심 민들레’를 찬양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근심으로 세월을 허비하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늘 지내놓고 돌아보면 “또 쓸데 없는 염려를 했구나!”고 하나님께 자신과 이웃에게 미안할 뿐인 염려를 사람들은 그야말로 時도 때도 없이 해댄다.

그러나 천국 백성이라면 세상과 천국 사이에서 갈등 하는 모습은 마귀가 기뻐하고 조롱할 노릇이다. [82:3“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 길 못 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우리의 마음이 혼란하고 나눠지는 것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다. 마가복음12:30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마22:37) 말씀도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모아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천국백성의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계명의 가르침이다.



1.목숨을 위하여 하는 염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이 목숨이다. 물론 여기 목숨은 영적인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같은 육신의 생명을 의미하는 호흡[헬, psyche(프쉬케)]을 뜻하는 낱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염려하는 것이 목숨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5)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영적인 생명을 잃는 것을 목숨을 위한 염려 만큼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갖게 된다. 이미 천국 백성의 목숨은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3~4)고 증거 하는 것처럼 결코 어떤 세력도 이것만은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는 분명한 약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이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목숨을 위한 염려를 하는 대신에 영혼을 위해 전력투구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도 우리가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만 산다면 그렇게 안달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살 것이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보다는 더 좋은 것을 먹고 마시기 위해서 싸우는 일들이 더 많다.



2.몸을 위하려 하는 염려…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몸이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 위해서 입을 것을 찾는 단순함보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남들에게 자랑할 만 한 것을 입기 위해서 경쟁하고 싸운다. 여기 ‘몸을 위하여’ 라는 표현은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영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나중의 비유에서 ‘솔로몬의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천국 백성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벌거벗은 수치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입게 되었고 세상의 어떤 영광보다도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덧입을 것에 대한 약속에 더 철저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염려는 죽을까 봐 염려하는 것이고 세상에서 보다 나은 영광을 입기 위해서 염려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입은 위에 덧입어야 할 더 귀한 영광이 세상에 있는가?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 딸로서의 영광을 사모하는 영적인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Ⅱ.가장 사실적인 비유를 주고 계신다. (26, 28~30)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1.공중의 새를 보라.(26f) 우리는 알을 낳고 품어 새끼를 까고 그 새끼들이 자라기까지 부지런히 먹이를 구하는 새들의 모습도(어려서 본 제비) 계절 따라 이동하는 높은 하늘의 철새들도 본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의 농사를 통째로 망쳐버리기도 하지만 그 새들의 사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새들이나 짐승들의 특징은 절대로 지나치게 먹을 것을 모으거나 지나치게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람만이 필요 이상으로 남의 것이라도 빼앗아 모으고 지나치게 포식하여 병을 부르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여기 새를 “보라[헬, emblepo(엠블레포)]” 한 것의 의미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주의 깊게 관찰하다, 자세히 분별하다’ 라는 뜻을 가진다. ‘새들의 사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짐승들의 단순한 삶이 우리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2.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28~29)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어려서 여름철이면 벼랑 위에나 산모퉁이에 아무렇게나 나서 꽃을 피운 ‘나리’ 꽃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한 경험이 있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의 지천에 피어 있는 들꽃이나 배어 말려서 땔감으로 태우는 들풀들은 절대로 다른 것들의 봐주고 안봐주고에 상관없이 있는 그곳에서 한철 영광을 입고 스러져 겨울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듬해에는 또 그 자리에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야생화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봐도 실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로몬과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솔로몬의 영광은 최고의 인간의 힘의 결집이라면 들꽃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손으로 키워진 것이 아니라는 차이인데 주님은 솔로몬의 최고로 갖춰 입은 영화가 자연스러운 들 꽃에 비길 바가 못 된다고 말씀하신다. 역시 여기서도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헬, katamanthano(카타만다노)]”는 ‘철저하게 배운다, 주의 깊게 생각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스스로 챙겨 입을 수 있는 영광 보다는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 영광을 사모할 수 있다면 역시 주님이나 사람들에게 실증내지 않는 삶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3믿음이 적은 자들아!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자연에 떨어진 한 톨의 씨앗을 입히시는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의 형상을 회복한 우리 하늘의 백성들에게야 얼마나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시겠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임에도 믿음의 크기는 다 다른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주님은 자신이 개 취급 당하면서도 끝까지 은혜를 구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향하여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8) 하셨고 종을 위해서 주님께 간청했던 백부장을 향해서도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눅7:9) 칭찬하셨던 것을 읽게 된다.

그런가 하면 변화산 밑에서 귀신들린 아이와 씨름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는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고 책망하시는 것도 본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하고 땅의 영광을 입는 데만 온 힘을 소모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 모두가 큰 믿음 가지므로 먹고 입는 문제보다 더 큰 하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



Ⅲ.우리 효과 없는 염려의 불필요성. (27, 32, 34)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1.우리가 염려함으로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키, 헬, helikia(헬리키아), NT에 8회= 키-눅2:52, 12:25, 19:3; 장성-요9:21, 23; 엡4:13; 나이-히11:11] 사람은 아무리 염려해도 몇 초 동안의 시간도 생명을 연장할 수 없다.



2.염려하는 것은 불신자들의 몫이다.

천국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심을 바라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의 불신자들의 모습이라는 경계를 주고 계시면서 결코 주님을 실망 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시는 것이다



3.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가장 잘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구석구석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머리카락 까지도 모두 게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우리 것으로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순히 그리고 철저하게 주님을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4.내일에 대한 염려는 내일이 하게 하라! 이 말씀역시 내일이 내일을 염려하게 하라는 말씀이다. 한 몇 초 후의 뒤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면서도 잘못된 영원을 사모하는 까닭에 자신이 상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런 당부를 주시고 계신다.



Ⅳ.염려대신 해야 할 것을 일러 주신다.(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천국시민헌장이라는 산상보훈의 주제이면서 “염려하지 말라”는 당부의 결론 같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지 말라’는 경계가 있으면 다른 면에서는 반드시 ‘하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이러한 표현을 바울이 가장 적절히 가르치고 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1.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세상의 먹고 입는 문제를 결코 도외시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육신을 입고 땅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먹는 일, 입는 일은 신경쓰지 말아라!’가 아니라 그것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곧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이고 이런 하늘 백성의 바른 삶의 자세에 주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겠다는 약속이다. 마치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 구하라! 반드시 이루어 주겠다.” 하셨음에도 많은 맡겨진 백성들의 바른 판결을 위하여 지혜를 구했더니 부와 명예도 함께 주신 것과 같은 원리이다.(왕상3장) 우리가 믿음으로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의 의를 구하기만 한다면 우리 신상의 필요는 모두 하나님의 차지가 되는데도 우리는 믿음이 부족하여 늘 그렇지 못하다.



2.우리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은 주님께서 마련하시겠다는 약속이다.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하면’은 조건이고 ‘이모든 것’은 우리모두의 일상의 살에 필요한 것들이다. 특히 여기 “더하시리라”는 ‘~에게 (…을) 주다, 공급하다. 제공하다.’ 라는 말씀인데 성경에 같은 전례들을 찾아보면 창세기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는 확신으로 순종하였더니 14절에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는 유명한 일화를 예로 들 수 있다. NT에서는 마가복음10:29~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눅18:29~30)는 약속과 같은 내용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염려해야 할 것은 “왜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지 못하는가!” “왜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가!” “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가!” “왜 나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늘 고민하고 근심해야만 한다. 바울은 격려하기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여러분 모두가 먹고 입는 문제로 염려하는 대신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므로 우리의 모든 영육의 필요를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채우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천국시민의 모습으로 살기를 우리의 복되신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