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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경계 되는 주님의 교훈은 신앙의 거짓 스승들에 대한 경계이다. 잘못된 신앙의 교훈만큼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믿음생활 잘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상한 곳에 휘말려 가지고 기존의 건전한 신앙의 교훈을 거부하고 완전이 그 곳에 몰입해 버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도 대강대강 신앙 하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신앙에 열심인 사람들이 주로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마음 아프기 그지 없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꿔서 자신의 잇속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고 이 세상의 마지막 까지도 이런 일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고 괴롭힐 것을 주님께서 주시는 경계를 통해서도 각성 시켜 주시고 있고 특히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이런 일은 더 극성스러울 것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이다.
사도행전에서 바리새인 교법사 가말리엘은 그 바로 이전에 있었던 일을 상기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행5:36~37)고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서 난 이런 것은 반드시 무너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38)
우리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생기고 소멸하는 거짓 스승들을 어떻게 구별하고 대처할 것인가는 건전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이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고 경성을 당부하신다.
Ⅰ.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15~20)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언제나 경계 되어 왔던 것이다.(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교사의 특징은 이중적인 자세임을 경계한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겉은 양이고 속은 이리이다. 참된 지도자일수록 하나의 행동 하나의 말, 하나의 가르침에 하나님과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세를 가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바꿀 필요가 없고 때로 잘 못 행했을 때는 잘못된 것을 합리화 하기 보다는 인정하고 사죄하는 자세를 가질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과 두 얼굴은 충성 된 믿음의 지도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지도자들은 영리한 교활함보다는 우직한 자세가 더 중요하다. 꼭 머리가 좋지 않아도 되겠지만 겉과 속이 다른 것, 가정과 교회가 다른 것, 설교강단 위와 아래가 다른 것은 치명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러했고 그를 따라 섬기는 하나님의 충성 된 종들이 그러했다. 간교한 거짓 지도자는 자기 것을 챙기는 반면에 충성 된 하나님의 종은 오히려 자신을 주고 희생한다.
[노략질하는, 헬,harpaks(하르팍스), 사나운, 몹시 굶주린, 강탈하는, 약탈하는] 사실적으로 가장 사악하고 간악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사람을 속이고 탈취하는 행위일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바쁘고 하늘의 미래의 영원한 영광에 대한 기대보다는 땅에서의 영광을 서로 취하는 사실은 불신의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4) 라고 책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경계로 인하여 모든 신앙의 지도자들을 경계의 눈초리로만 봐서는 안될 것이다.
2.거짓은 숨길 수 없다.(16~20)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사실 거짓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행일까? 그러나 거짓을 행하는 곳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반드시 열매(결과)를 내게 되어 있다. 그것이 악한 것이든지 선한 것이든지 반드시 열매의 결과를 나타내게 되어 있는 것이 주님의 섭리이다. 겉모양은 얼마든지 바꾸고 꾸미고 속일 수 있다.(성형의 유행) 그러나 삶의 열매는 내면에서 나온다. 또 아무리 사악한 존재일지라도 절대로 열매는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내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능력, 그리고 거기에 순종하는 믿음이 없이는 결코 바뀔 수 없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로 속일 수 없다.
바울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하였고 주님께서도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롬2:6) 그러므로 속이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두려워 해야 한다. 그러나 의를 행하고 진리를 따라 순종하는 자들은 기뻐할 수 있다. 할렐루야!
거짓된 선생일수록 그것을 가리기 위해서 겉을 더 화려하게 꾸미기 마련이지만 거짓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염색을 해도 시간이 가면 흰머리는 길어 나는 것처럼 반드시 행한 결과는 나타나는 것이 또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섭리이다.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가장 요긴한 포도와 무화과를 아담에게 범죄의 결과로 선언하신[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8) 가시와 엉겅퀴에서 얻겠는가? 하는 것이다. 포도나 무화과는 다 단맛의 과일인 반면에 가시와 엉겅퀴는 죄로 인한 쓴 고통이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의 뿌리는 여전히 범죄의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 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인생에 절대로 단맛 즉, 기쁨을 줄 수 없는 깊은 의미를 더불어 가르치고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19)는 심판의 선언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11:15에서 거짓 일꾼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확인해 주고 있다. 믿음은 반드시 행위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라고 했고 거짓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하나님께는 숨길 수 없어 그 행위대로 심판하실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피할 수 없으시리라는 비극의 약속이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딤전5:24) 라고 죄의 결과는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형벌이 있을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3.급하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시간의 제약을 받고 사는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급하다. 그래서 어떤 결과들을 당장에 얻으려 하고 ‘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속담을 곧잘 사용한다. 그러나 열매는 당장에 열리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고 또 많은 사람을 아끼시기 때문에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고 했다. 일꾼들은 가라지를 뽑기를 원했지만 추수 때까지 그냥 두시는 이유도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13:29) 하셨다. 하나님의 원 하심은 모든 사람의 구원이지 심판이 아니기 대문이다.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 두고 오늘 우리 각자가 행해야 할 사랑의 삶을 위해 더 애쓴다면 하나님께서 밝히 드러내실 것이다. 이 땅에는 여전히 거짓진리가 가르쳐지고 있고 그것이 밝혀졌는데도 아직도 설마 설마 하며 그들과 결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더러 있다. 거짓을 깨달았으면 거기에서 속히 탈출할 수 있는 용기와 진리를 찾았으면 그 진리에 바로 헌신하는 결단과 자세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회개를 늦춘다면 하나님께서도 어쩌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거짓을 드러내실 것이다.
Ⅱ.생명과 진리는 이적이 기준이 아니다.(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왜 그토록 감춰진 거짓에 쉽게 빠져들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 행하는 이적들이 그 사람의 가르침을 증거하지 않느냐?” 어찌 보면 이것이 함정이다.
1.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하나님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21)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고 말씀을 증거하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1)는 선언과 바울의 믿음의 대 헌장인 로마서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는 같은 선언을 듣는데 사실 이 말씀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였던 요엘을 통하여 주신 약속의 예언이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2:32) 이러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오늘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 라고 가르치시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사람이 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선언을 하신다.
우리는 입술로 주여 주여를 습관적으로 부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삶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심을 나타내고 고백하는 것이다. 입에 발린 주여 주여는 아무나 할 수 있어도 모든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은 참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물론 이 말씀은 앞의 거짓 선지자들을 염두해 주고 하신 말씀이다.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에 연이어서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롬10:14) 라고 덧붙이면서 구원 얻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한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은 그 고백 되는 믿음을 삶으로 나타내는 살아있는 믿음을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확인하신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중심도 역시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여야 함을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
2.하나님의 능력을 행한 종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신비한 것,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좋아하다 보니 눈 속임일지라도 마술이 인기가 있고 하나님의 종이라면 능력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능력의 사도였던 바울의 입에서 조차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고전1:22)
유대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이적과 표적과 함께 살아온 민족이라고 해고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이스라엘은 표적과 더불어 살아온 민족이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은 완전히 이적으로 살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표적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정작 나타난 표적이신 예수 그리스도[주님의 삶 자체가 가장 심오한 표적이다.]께서 이 땅에 오셨음에도 여전히 표적을 보여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표적을 구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12:39, 16:4)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 가장 귀한 표적임을 말씀하셨다. 표적을 많이 보면 믿음이 강할 것 같지만 역시 그렇지 못하다. 물론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신 후 이 땅에 교회와 말씀을 확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도들과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표적으로 말씀과 그리스도의 종 됨을 확증하셨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16:20)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히2:4)
그러나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말세에 마귀 사탄이 표적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을 경계하고 계시는 말씀들이 여러 곳에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4~15)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2:9~10)
그러므로 생명의 진리는 사도들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로 확증 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을 바로 이해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이다. 믿습니까? 표적과 이적이 진리의 기준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과 희생의 십자가가 진리의 중심이다. 믿습니까? 아무리 많은 표적과 기적을 행했다고 해도 마귀의 종 노릇 할 수 있다는 두려운 경계를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무 이적 표적을 쫓아 다니지 마십시오. 그것이 곧 생명 얻는 진리의 기준도 아니고 참된 하나님의 기준도 아니다.
3.하나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님은 냉정하게 선언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신다는 경계이다. 주님의 선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신다는 것이다. 그 모든 표적과 권능을 행한 것이 불법을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으로 바꾸고 변경시키는 것이 불법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사람들은 몰라줘도 괜찮지만 하나님께는 아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신앙의 사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시면 만족하고 또 그것을 위해서 일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믿습니까? 누가 뭐라고 하든 묵묵히 “하나님께서 아시면 그만입니다!” 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아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전8:3) 할렐루야!
Ⅲ.결론.
어느 시대 보다도 말세를 만난 우리들은 거짓 신앙의 교사들을 경계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은 머리에 뿔이 나고 드라큘라처럼 송곳이가 길게 난 모습이 아니다. 어느 시대나 거짓 선지자들은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게 하실 것이다. 몇 마디의 가르침으로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은 조심해야겠지만 주님은 반드시 거짓 것에는 거짓과 죄의 결과를 나타내실 것이다. 겉모양은 숨기고 꾸미고 감출 수 있지만 열매는 반드시 내면에 감추인 것으로부터 나타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천사와 같이 자신을 나타낸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반드시 그 거짓을 밝히는 것 역시 선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다. 특히 우리가 진리이신 하나님의 생명에 거하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표적과 기사를 찾을 필요는 없다. 표적과 기사가 진리와 생명의 기준이 아니라 십자가와 말씀과 성령이 구원과 생명의 방편이다.
우리가 평생을 믿음생활 했는데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신다면 얼마나 비극이 될까? 그러나 우리는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성령을 순종하고 산다면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나 자신을 기쁘게 하려는 위험은 경계해야만 한다. 바울 사도의 경계처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9)는 믿음의 삶이 된다면 주님 앞에 자신 만만하게 서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주여 주여를 반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아신바 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복되신 주님의 이름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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