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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9:32~38 2005-01-02
예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마태의 두 번의 이적모음 중에서 첫번째의 기록인 8장에서부터 이 9장에 걸친 사건들이 오늘 말씀으로 정리되어지고 있다. 다시 14~15장에서 두 번째의 이적 담을 읽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의 기록은 다음 시간부터 나누게 될 제자 파송의 서론이기도 하다.

주님의 이적의 사건들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자들은 감격과 기쁨으로 믿고 수용하지만 불신하는 사람들은 시비거리를 삼기도 한 내용들을 마태는 가감 없이 전달해 주고 있다.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①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②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33~34)

그러나 이러한 반응에 관계없이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의 사역을 여러 방향에서 감당하셨다. 어떤 경우 우리가 일하는 것의 반응에 따라 좌우된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임을 주님으로부터 배운다.



Ⅰ.불완전한 모든 인류는 예수를 만나게 해야 한다.(32~34)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인류의 모든 불편은 죄로 인한 것이다. 범죄케 하는 마귀 사탄은 그 범죄를 이유로 인간을 자신의 수하에 잡고 비극적인 삶을 살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든다.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 사람이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게 된 원인을 “귀신들렸기 때문”이라고 마태는 지적하고 있다.



1.벙어리 된 인간이 있다.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 란 엄밀하게 말해서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를 상실한 비극적인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임의 기본이고 말을 잃어 버렸다고 하는 것은 동물과 같은 삶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더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과 찬양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본래의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신령한 의무(義務)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인간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입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악한 귀신에 의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게 된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저주와 슬픔과 불안 뿐이다.

이런 입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찬양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야 하고 찬양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회개하여 찬양하는 삶을 회복해야 한다. 왜 하나님은 이를 위하여 인간을 지으셨고 다시 범죄하여 마귀 사탄에 수하에 팔린 인간을 구원하게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 피의 값으로 우리를 사셔서 다시 찬양의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이다.

올해의 푯대 세움 말씀이 이와 같은 말씀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2.이런 사람은 반드시 예수께 데려 와야만 한다.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32b)

그러나 이 사람도 예수께로 데려 왔기 때문에 치료될 수 있었다. 전도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죄로 인하여 잃어진 영혼을 주님께로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귀신에게 잡혀있는 영혼을 예수께로 데려와서 찬양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전도의 의미이다.



3.그러나 이 귀한 일도 오해를 받기도 한다.(33b~34)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참고-마12:22~ 37]

이 세상에서는 선한 의도도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래의 영광의 하나님 나라에는 오해가 존재치 않을 것이고 그러한 주님의 의지로 하나된 사람들인 교회에서는 적어도 오해가 없어야 한다. 오직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Ⅱ.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이다.(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이다. 시시하게 땅에서 한순간 효과가 있고 빛을 낼 수 있는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가치가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야 말로 믿음의 사람들이 반드시 가지고 누려야 할 영원한 가치이다.

이 가치에 대한 비유는 나중에 상고하게 되겠지만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4~46)

그러나 죄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이 천국의 가치를 볼 수 없다. 그런 이유에서 예수께서는 요한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전도는 또 다른 입장에서 말하면 이 천국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그 가치를 먼저 자신이 알지 못하면 잘 설명할 수가 없다.[요즘 홈쇼핑에서 상품을 광고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천국을 알리는데 그보다 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세상에 많은 믿는 신앙의 사람들이 이 천국의 귀중성을 잃어버리고 여전히 썩어질 세상의 것들에 생각을 집중하고 그것이 최고인 것으로 선전하고 하나님께서 이 썩어질 것들을 주시고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으로 착각하게 할 정도다.

사람이 천국을 바로 알게 되면 세상에 어떤 것도 귀중하지 않게 된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아무리 가치가 있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도 낡아지고 썩어지고 없어질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의 낙원이라고 사람이 몰려가던 서남 아시아가 한 순간에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사주신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역사가 바뀌어도 유행이 지나지 않는 가치, 그것은 천국밖에 없다. 믿습니까?

때문에 천국 복음을 전파 해야 한다. 사람들은 세상에 썩어질 것들도 입에 거품을 물고 선전하는데 온 재산과 생명을 다 바치고도 인간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결코 시들지 않는 가치를 가진 천국을 자랑하고 소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침 받게 하셨지만 이것은 사실 부가적인 것이다. 덤이다.

세상의 어떤 가치로도 살 수 없는 [천국] 여러분들은 그 가치만큼 귀중하게 여기고 사는가?



Ⅲ.모든 사람은 양과 같이 무지몽매하다.(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주님은 진정한 목적도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불쌍히 보신다. 여기 [민망히 여기시니, splagcnivzomai(동정을 느끼다) ← splavgcnon(심장),] 라고 했는데 바울의 같은 표현을 빌리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는 표현이 그것이다. 우리는 범죄하며 사는 인생들을 욕하고 저주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러한 영혼들도 마음 가득한 사랑으로 불쌍히 보시는 연민의 주님이시다.

양이라고 하는 것은 좋게 표현하면 온순하고 착하지만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어리석고 맹목적인 동물이다. 모든 사람은 어리석은 데서 양과 같다.

다른 동물들은 포악해서 상대를 물어 죽이고 그런 힘이 없을 경우에는 자신을 적절히 숨기고 보호하지만 양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그렇지 못한 동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바르게 이끌어 주는 목자가 필요한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의 성공여부는 자신이 얼마나 똑똑하고 훌륭하냐 하는 것보다는 목자를 잘 만났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람은 창조에서부터 하나님을 의존하고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범죄 한 인류는 선하신 목자이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포악하고 속이는 간악한 목자인 마귀 사탄의 수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결과로 눈이 멀어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를 가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모르는 군중들을 주님은 바로 보신 것이고 “…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고 한탄하고 계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가련한 모든 인생은 진정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야 한다.

어리석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목자를 바로 만나야 광야 같은 세상에서 유리 방황하지 않고 분명한 인생의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Ⅳ.추수할 때가 가까워 오기 때문에 일꾼을 추수할 주인이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37~38)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눅10:2)



1.추수 할 것이 많다고 말씀하신다. 영혼의 추수 때는 가까워 오고 있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

추수를 제때 하지 않으면 알곡을 많이 잃게 되는 것을 본다.

이번 서남 아시아에서는 지진으로 한꺼번에 15만명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움도 본다.[돈이 없어서 못간 호주친구]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요4:38)고 말씀하신다. 근본적으로 이 천국의 알곡은 사람이 뿌린 것이 아니다. 천국의 씨를 하나님께서 뿌리시고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마15:13) 라고 말씀하셨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마13:37~38)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눅8:11)

영혼의 추수 때는 다가오는데 참으로 부지런한 일꾼들이 없는 마지막 시대가 되었다.



2.영혼의 추수 꾼은 하나님께서만 준비하시고 보내 주실 수 있다. 그래서 기도는 필요하고 사람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을 순종해야 한다. 다른 쓸데 없는 것들에 마음이 팔린 자들은 추수꾼으로 적합하지 못하다. 추수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자를 주님은 쓰실 것이다.



3.추수하는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일꾼은 추수를 도울 뿐이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치 인간이 추수하는 주인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로서 아름다운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를 상실한 비극적인 모습으로 전락하여 진정한 노래 찬양을 잃어버린 가련한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데리고 와야 한다.

신앙의 사람들은 천국의 귀중성을 다시 인식해야 한다. 썩어지고 없어질 세상의 좋은 것들에서 눈을 돌려 영원히 썩어지지 않는 가치인 하늘나라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할 수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지불하고 우리에게 사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 천국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가치를 모른 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천국백성이라고 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귀신들을 굴복시키고 감격해서 날 뛰는 제자들에게 오히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20) 바울 사도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는 당부도 천국의 소유에 대한 감격을 가지라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무지한 양같이 갈 바를 모르고 의지해야 할 목자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참으로 가련한 존재들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야 한다.

추수할 영혼은 많다. 그러나 추수할 일꾼이 적다. 추수할 주인이신 주님께 늘 일꾼을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