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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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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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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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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주어라, 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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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역사들을 기록한 마태는 다시 선택 받아 복음을 위해서 세상으로 보내지는 제자들의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다만 이 때는 아직 대속의 십자가 사건 전이었고 다만 구속의 은혜를 준비 시키는 정도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시대적인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과제이다. 이것이 바로 되지 못하면 혼란을 겪게 되고 생명의 말씀을 생명으로 누리지 못하는 일들도 더러 본다.
같은 기록들을 막3:13~18, 6:7~13; 눅6:12~16, 9:1~6에서 읽을 수 있으나 사도록 세움과 파송이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차이이다.
Ⅰ.가라!(1~4)
(1)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보내시는 일꾼들
“제자”[maqhthv", 배우는 자]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6:45)
“사도”[ajpovstolo", 보냄을 받은 자, 사자, 사절, 전권대사-] ①세례 요한 때부터 주님과 함께 있었던 자(행1:21), ②예수께서 친히 부르신자(막3:14), ③주님과 같은 이적을 행하는자(1), ④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친히 본자(행1:21).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행14:14; 고전15:9)
주님께서는 보내시는 자들에게 긴요한 것을 갖추어서 보내고 있다.(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①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②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③권능을 주시니라” 사실 주님께서 가지셨던 권능이다. 4:23 “…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이들 중에는 성경에 여러 번 그 활동이 기록되는 제자들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한 제자들도 있다. 이들의 마지막은 여러 전승들이 전해 지고 있지만 신뢰할 만한 기록들은 적고 안타깝지만 성경 안에서의 가장 분명한 기록은 가룟 유다와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마지막 밖에는 모두가 전승들 뿐이다. 어쨌든 그들을 주님께서 부르셨고 쓰셨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이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①시몬(히)-들음, 베드로(헬)-반석, 게바(아람)-반석; ②안드레-남자; ③요한-여호와는 자비하시다[보아너게~우뢰의 아들(막3:17)];→④야고보(창25:26)-발꿈치를 잡음(행12:2최초의 순교자); ⑤빌립-말(馬)을 사랑하는자; ⑥바돌로메-돌로메의 아들(요1:46나다나엘-하나님이 주셨다); ⑦도마(디두모)-쌍둥이; ⑧마테(맛다이오스)-여호와의 선물; ⑨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작은 야고보(막15:40); ⑩다데오-여자의 가슴; ⑪가나안인 시몬-셀롯이라 하는(열심당원~눅6:15; 행1:13); ⑫가룟 유다(창29:35)-찬송함(마27:5자살)
가룟 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한가지로 같은 권능을 받고 보냄을 받았고 같은 역할을 했다. 이런 입장에서 경성해야 할 일이다. 나중 요한의 평가가 그렇게 된 원인을 밝힌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6)
오늘도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해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다. 천국의 백성들로 선택되었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 다시 보내진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Ⅱ.가라고 하시는 명령을 받은 자세.(5~6)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이 내용을 대상으로 보지만 영적인 입장에서 전하는 자세로 이해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두 가지의 부정적인 명령이 주어지고 적극적으로 가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다.
1.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길[헬, hodos, 형태, 수단, 여행.]
2.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혼합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 것들과 뒤섞어 사람을 구원하는 진리를 희미하게 못쓸 것으로 만들어 주어서는 안된다.
3.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잃어버린 자다. 잃어버린 자를 찾는다고 하는 것은 모두 이스라엘 집으로 통해서만 구원된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4:22)
Ⅲ.주어라!(7~8)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어야 할 것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줘야 할 것들이면서 복음의 역할이다.
“천국이 가까웠다” 천국은 분명히 교회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다. 그러나 십자가의 희생의 역사를 이루기 전이었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준비 시키는 정도이다. 이 천국은 창세전에 예정되었고(엡3:11) “천국,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마16:19; 골1:13) 라고 교회를 표현하고 있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는 아직 천국 즉,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러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1)마4:17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2)마6:10 나라이 임하옵시며(아직까지 구하라 하심) (3)마16:18 내 교회를 세우리니(계획) 이런 시대적인 구분은 분명히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천국이 바로 우리 가운데 있음을 확신하고 이 천국은 모든 인류를 불러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 인류에 끼칠 복음의 역사를 의미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사61:1~2)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Ⅳ.주는 자의 방법.(9~10)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복음을 나눠 줘야 하는 자들의 자세를 5~6절에서도 말했지만 세속적인 방법과 자세로는 합당치 않기 때문에 이런 당부를 구체적으로 주고 있는 것이다.
1.가지지 말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두 번씩이나 강조되고 있다. 어찌보면 세상에서 여행에 가장 요긴할 것들인데 하나님은 이에 대한 경계를 주고 있다.
그러나 바울 조차도 하루 하루의 복음을 위한 여행을 위하여 손수 수고하여 쓸 것을 벌었다.
세상의 어떤 것 보다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2.그러면 받을 것이다!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3~14)
Ⅴ.평안하기를 빌라(11~15)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거취의 자세
1.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구체적으로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경계로 주시는 교훈이다.
여기에 합당한 자란 역시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합당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 교회의 가이오 같은 [롬16: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딤후1:16 아시아의 오네시보로의 집] 꼭 풍부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헌신적인 가정을 의미한다.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10:7에 더 구체적으로 교훈을 주고 있다.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2.평안을 빌라! 귀한 아들의 생명을 지불하고 얻은 이 평화는 감사로 누려야 한다. 이 평안이 있는가? 십자가는 모든 것을 여는 열쇠이다.(마16:19)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평화의 사자들이다. 화평을 선포하는 사자들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바울 사도의 편지마다 서두에 어김없이 쓰여있는 글귀가 바로 은혜와 평강이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7)
여기서 말하는 평안은 외적인 환경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솟아나는 마음의 상태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3.복음을 거부하면 남는 것은 멸망밖에 없다.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1]가라!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속에 보내지고 있다.
이 명령은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다시 그의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과 일반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2]주어라! 구속의 십자가를 가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야 말로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다. 줄 것이 없는 인생은 불행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들이다. 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명과 관련된 것들이다.
주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누리는 모든 자들을 향해서 오늘도 명령하신다. 가라! 주어라! 빌라!
3]빌라!
우리가 가진 평화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것들이고 귀한 것들이다. 마귀 사탄이 이기지 못하는 권세로 주시는 이 평안을 먼저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그 사랑을 주는 것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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