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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 시간에 주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보내시면서 보냄 받은 자의 자세를 말씀하셨다면 이 말씀 역시 보냄 받은 자들이 세상에서 당할 일들에 어떻게 대처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이다. 물론 이 말씀 역시 당시의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이면서 오늘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당부의 말씀이다.
지난 시간의 말씀에서 우리가 다 이야기 못했지만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복된 존재인가를 주님께서 약속하셨던 말씀이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12~13) 밑져도 이익인 원리를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다.
주님께서는 보내시는 자들에게 이미 자신의 권능을 같이 주셔서 보내셨다는 사실을 이미 앞에서도 증거 한 바 있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1) 이런 권능을 소유 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지배하는 이 세상은 죽음을 각오하는 희생을 바탕하지 않는다면 평화의 복음은 증거 될 수 없고 또 세상의 악과 같은 자세로는 생명의 복음이 증거 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런 자세를 준비시키고 있다.
이러한 당부는 당시의 제자들보다도 나중 구속의 은혜를 완성하신 후 이 땅에 세워진 교회 속에 더 사실적으로 있게 되었고 세상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천국의 백성들의 순례 길에 여전히 지속되는 의로운 싸움을 미리 내다 보시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누가 가겠는가? 그러나 확신을 가지는 것이 오늘 첫번째 우리가 생각하는 말씀이다.
Ⅰ.주께서 보내신다.(16~17)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어떻게 보면 도저히 승산 없는 싸움을 준비시키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의 확신은 “내가 너희를 보낸다!”는 약속이다. 양과 이리, 뱀과 비둘기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동물이고 이미 싸움의 결과는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확신에 찬 약속을 주고 계신다.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오직 이것이다. 만군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시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부한 세상은 지혜가 있다고 해도 사실 간교하기 이를 데 없다. 이리는 사실 간교함의 상징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양심이라든가 도덕이라든가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절대적인 기준인 하나님과 같은 양심과 도덕은 이 세상에서는 사치품정도로 여기고 양같이 순한 사람은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할 정도로 남의 것을 뺏어먹는데 이골이 나 있는 세상이다. 그런 간교한 세상에 양처럼 가라니 세상적 가치로는 분명히 이해가 불가능한 명령이다.
1.이리 가운데지만 양으로 가라!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진리와 희생으로 가도록 명하신다. 서로가 물고 먹으며 으르렁 거리는 이리의 싸움터 같은 세상에 양으로 가는 것이 사람 눈에 보기에는 어리석은 것 같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계속 양으로 가라고 명하신다. 주님께서는 산상 보훈에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라고 약속하신 바 있다.
①어디서든지 주님의 보내심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그의 백성이 가는 곳 어디든지 함께 행하시는 주님이시다.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b)
②계속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가라는 당부이다. 양으로 가라는 것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철저하게 목자이신 주님을 의지하며 가라는 말씀이다.
“내 일생 다 가도록 주 의지하리, 주 내게 기쁨 주네 주 의지하리, 천국 길에 검은 폭풍 몰려올 때도, 주 나를 놓지 않네 주 의지하리, 주는 내 친구 진실한 친구, 세상 끝까지 주 의지하리”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꾼들은 철저하게 무저항 주의로 세상의 병기나 권모술수를 거부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진리 편에 서서 끝까지 양으로 살고 일해야만 한다.
2.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실 뱀은 지혜롭다기보다도 간교하다. 그렇기 때문에 [뱀같이]라는 말씀은 간교 하라는 당부는 절대 아니다. 사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는 천국의 일꾼들은 세상의 어떤 지혜로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로 가는 것이고 20절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성령께서 뱀을 능가하는 지혜를 주실 것이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간교한 뱀의 유혹으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꾀를 내다가 간교한 죄인이 되고 말았고 이것을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창3:1)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인간을 타락시킨 간교한 뱀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철저하게 사용할 때 우리는 [뱀같이]가 아닌 뱀보다 지혜롭고 충성 된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뱀같이 지혜롭고’라는 말씀에서 끝나지 않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으로 완료되고 있다.
노아의 홍수 후에 언급되는 비둘기는 사실적으로 순결한 새로 까마귀와 비교되고 있다.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촉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창8:6~9)
특히 솔로몬은 비둘기의 눈을 아름답고 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가1: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4:1) 5:12“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비둘기를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같이 지혜가 없어서 …”(호7:11f)라는 표현도 나타나서 순하거나 착한 것이 악에 이용당할 때는 어리석을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그럼으로 순하고 착한 사람일수록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구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일꾼들인 우리는 사람을 타락시킬 정도의 뱀의 지혜와 그러면서도 깨끗한 눈을 가진 순진 무구한 비둘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3.사람들을 삼가라 명하신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여서 사람들이란 불신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삼가라는 것은 조심하여 자신을 구별하여 지키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란 악의 도구가 되기 쉽고 진리와 경건보다는 함께 죄를 짓는데 휩쓸리기 쉬운 존재들이다. “호산나”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열렬히 환영하던 그 사람들이 바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으로 변했다. 마찬 가지로 사울이었던 바울과 함께 활동하던 그 사람들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복음을 증거하던 바울을 가장 괴롭히든 사람들로 변했다.
이렇게 사람이 제일 경계해야 할 존재이다. 마귀의 도구가 되고 사탄의 이용물이 될 수 있는 역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朝夕으로 세상의 변화에 밀려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Ⅱ.주께서 책임지신다.(18~21)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서 책임을 져 주신다는 약속이다.
1.하나님은 충성 된 일꾼들을 통해서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증거를 삼으신다.(18)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충성 된 일꾼들이 권력자들에게 끌려가게 되는 이유는 바로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웃음거리가 되지 않고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점에 감사할 수 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나 충성 된 그의 종들이 권력자들에게 끌려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 채찍질 시키고 십자가에 못박게 했던 사형시키고 괴롭히면서도 그들이 더 두려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세상에서는 그런 용기가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고문을 참고 견디는 그 모습을 두려워 하게 되어 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의 감옥에 갇힌 것조차도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빌1:12~13) 라고 고백하는 것을 듣는다.
버가모 교회에 주신 말씀에 보면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2:13)
우리가 충성 된 증인으로 산다면 비록 믿는 것으로 권력 앞에 끌려가더라도 하나님은 증거자로 삼으실 것이다.
2.하나님은 주님께 충성하는 사람을 철저하게 변호 하신다.(19~20)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복음에 관한 한 변호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약속은 나중에 사도들에게서 철저하게 검증이 된다. 특히 사도행전 24장에서 유대의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변사 [더둘로]를 세워 변호하지만 바울이 더 호소력 있는 변호로 벨릭스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변호사를 세웠지만 베드로나 바울은 변호사를 쓰지 않고 자신이 가진 복음을 변증했다. 이것은 적어도 주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일꾼들의 변호역할을 확실히 하실 것을 약속하시는데 주님께서 마지막 시대를 말씀하시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21:14~15)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 일하는 그의 일꾼들을 철저히 보호하시고 변호 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는 약속을 주고 계시는 것이다.
3.미움이 팽배한 속에서도 철저한 사랑으로 살 것을 당부하신다.(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사랑의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상의 미래적인 말씀이면서 신앙과 불신의 간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말씀하신다. 마태는 주님께서 마지막 때의 미움이 팽배할 세상을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는 경계와 함께 사상의 간격으로 나타날 수 있는 골의 깊이를 더불어 말씀해 주고 계신다.
보다 미래적인 예언의 말씀으로 예언되면서 뒤에 계속될 예언의 말씀들과 같이 증거 된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35~36)
사상의 차이는 민족과 나라간 뿐이 아니라 가족사이에서도 나타남을 오늘의 세계 속에서도 보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주님의 천국 백성들을 향한 신실한 보호는 역시 여기에서도 철저할 것임을 보증하시는 것이다.
Ⅲ.주님의 구원을 약속하신다.(22~2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동일한 약속은 마지막 때를 예언하는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예언되고 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9~13; 막13:12~13)
우리가 죄악의 세상에서, 어둠과 미움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철저히 산다고 하는 것은 충분히 미움 받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죄를 밥 먹듯이 짓는데 그 가운데서 의롭게 산다면 저들의 죄가 탈로 날 것이기 때문에 미워할 것이고, 세상은 득실의 관계에서 사랑하고 미워하는데 조건 없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볼 때는 자신들의 수치가 들어 나기 때문에 미워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고 사랑하는 일을 세상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지속하는 주님의 백성들과 일꾼들은 주님께서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신다.
우리가 죄를 짓고 매를 맞고 미움을 받는다면 슬퍼해야겠지만 복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주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20)고 격려 하신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이 말씀은 위에서 언급했던 “뱀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씀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역시 비폭력주의의 복음의 성격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은 역시 지리적인 것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이 말씀 때문에 초대 그리스도인은 재림의 때가 임박했다고 이해를 했던 것 같다. 이 말씀과 조화를 해야 하는 말씀은 역시 같은 마태의 기록에서 보는데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Conclusions: 우리가 복음과 함께 세상을 나가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다. 때문에 비록 이리 떼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일지라도 우리는 같은 이리로 행동해서는 안되고 우리를 완벽하게 지키시고 지키시는 완전한 목자이신 하늘의 아버지를 철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양으로서 하늘의 지혜와 양의 순결로 갈 때 주님은 어떤 위기와 권세 앞에서도 성령으로 철저하게 보호하시고 변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신다.
때로는 하나님의 종들로 통해서 증거를 삼으시는데 그것은 진리와 사랑으로도 세상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변명치 못하게 하려고 하나님은 믿음의 증인들을 삼으시는 것이다. 세상의 마지막이 될수록 사랑은 없어지고 미움이 팽배한 세상이 되어 가겠지만 복음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철저하게 건지시고 보호할 것이기 때문에 나중까지 믿음으로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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