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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11:1~15 2005-02-06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지난 시간까지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아가는 제자들의 자세와 각오를 가르치셨고 마가복음은 이러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활동상황을 역시 간단히 기록하고 있는(막6:12~13) 반면에 이 마태복음서에서는 가르침을 주신 후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활약상을 간략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1) 있다. 오늘부터 상고하는 이11장에서 메시아에 대한 요한의 의심으로 시작하여 배척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다음 장(12)에서는 좀더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히는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세상 죄를 해결하려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믿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라면 비상처럼 싫어하는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던 것을 앞에서도 봐왔던 사실이다. 8:34에서는 육신의 이권 때문에 군중들이 거절했고, 9:34에서는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신 사실에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배척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서부터는 주님을 반대하는 강도가 점점 심해 짐을 보게 된다.

본문의 내용의 연결은 19절까지 연결되어 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증거 하던 세례 요한의 질문과(2~3) 여기에 답변하시는 그리스도의 자기 증거(4~6) 그리고 요한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평가(증거)에 대한 부분을 생각하고(7~15) 다음 시간에 영적인 가치에 무딘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불신하는 도시들에 대한 심판의 선언(20~24)과 믿음으로 반응하는 신자들에 대한 초청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에서는 독특한 표현들을 읽게 되는데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6) 라든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 든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2)는 특별한 내용들을 중심해서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눴으면 한다.



Ⅰ.요한의 의심.(2~3) 2~6(눅7:18~23)

(2)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때로 우리는 성경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더러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런 경우가 그렇다. 앞의 말씀인 3:11~17에서 요한이 예수에 대해 증거 하는 선언을 상고한바 있다. 보다 더 구체적인 부분이 요한복음인데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35~36) 라는 선언을 듣고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를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던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인지의 사실을 직접 제자들을 통해서 확인하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본문 내용의 병행되는 또 다른 말씀인 누가복음 7장에서 기록되고 있는 같은 내용은,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죽을 병이 든 것을 말씀만으로 고치시고, 나인성 과부의 죽은 외아들의 시신을 매고 나오는 것을 멈춰 세우시고 이 청년을 살리신 사건을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전했을 때 요한이 제자 둘을 보내어 질문 하는 내용으로 연결되어지고 있다. 이미 메시야가 오면 할 일을 하고 계신 예수를 보고 의심을 갖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지금 헤롯에게 자신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데리고 사는 것을 책망하다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조금 뒤에 가서 14장에서 보게 될 것인데 오늘 본문은 평상시 세례 요한 같지 못한 부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3:7)고 강하게 책망하던 용기는 어디다 두고 이런 유약하고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러한 의심은 믿음에서 나온 것은 아님이 확실하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교훈은 같은 마태복음19:30의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10:31; 마20:16) 주님의 경계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라고 경계하는 바울의 교훈이다.

아무리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 일지라도 누구든지 성령을 의지하는 것 보다 각박한 현실을 계산하고 인간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처음 믿음을 잃어 버리고 불신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계의 교훈이다. 성경에 인생의 말년에 실패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구약 성경의 사울도 그렇고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 버린 데마도(골4:14; 몬1:24→ 딤후4:10) 처음에는 바울과 열심히 충성하던 동역자였음을 볼 수 있다.

요한은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성전에 들어 갔다가 천사의 고지로 잉태되고 탄생한 사람으로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1:15~17) 하였고 많은 기적과 함께 탄생된 사람이다.

세례 요한이 실족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경성해야 하겠는가?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오늘 주님의 능력을 힘입고 귀중한 역할을 감당한다면 끊임없이 믿음을 훈련하여 세례 요한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



Ⅱ.메시아의 증거.(4~6)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5)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1.예수께서는 답을 입으로 말씀하시는 대신에 사실을 전할 것을 명령하신다.(4) 사실 구약 성경에서부터 예언된 메시아는 역사와 환경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예언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 메시아의 권능을 이어받은 복음의 일꾼들 역시 어디서든지 구원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200:1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구원하는 크신 능력 다 찬송할지라,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바울 사도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고 선언 한바 있다. 하나님의 진리는 구원의 능력이다. 진리를 진리로 선포하기 위해서는 말이 아니라 구원 받은 삶의 능력이 있어야 진리가 진리로 사람들에게 인식 된다.

십자가 복음의 진리는 죄를 이기는 능력이요,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이요, 세상을 의로 정복하는 힘이다.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롬16:26) 것이라고 고백한다.

죄의 썩은 냄새를 이기고 생명의 향기를 뿌리는 능력이 바로 복음이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2:14)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이 아닌 사실로서 증거 하셨던 것이고 오늘 우리가 진리에 산다면 역시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될 때 함께 전하는 복음은 호소력 있게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2.예언된 메시아의 증거.(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역사들이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35:5) 주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예언들이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61:1)는 곳곳의 말씀들은 메시아의 성격을 증거하고 있고 누가도 이를 기록하고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4:18)

죄로 인해 불구 된 사람들의 회복을 예언하는 말씀들이고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대로 실현되었지만 세례 요한이나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예언을 듣고 읽으면서도 자신들의 생각대로의 그리스도 즉, 정치적인 승리자로 임할 메시아만을 상상하는 바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잃게 되었다.



3.거치는 반석이 되기도 하신 예수 그리스도. (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우리의 생각에는 위대한 신앙의 지도자들은 실족 시키지 않을 것 같은데 메시아는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모퉁이 돌로 거치는 반석으로도 예언되고 있고(시118:22; 사8:14~15, 28:16) 신약성경에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롬9:33)고 바울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동족에 대한 탄식을 하고 있고 반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드로 사도 역시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8)

구원의 주님이 넘어짐의 이유가 된다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오늘도 수많은 잘못된 시도들이 예수의 이름에 적용되고 있고 [댄 브라운:다빈치 코드]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신앙의 사람들 조차 넘어지고 있는 일들은 어느 역사 속에서나 있어 왔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에게는 구원의 견고한 반석이 되시기를 …



Ⅲ.세례 요한의 평가.(7~15; 눅7:24~35)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가자 예수께서는 요한에 대해 증거 하신다. 이 요한에 대한 증거 속에서는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깨닫게 하신다.



1.사람들이 왜 광야의 요한을 찾아 갔는가 물으신다.(7~9)

(7)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라고 말씀하시고 여기에 다시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고 덧붙이셨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의 세례 요한을 찾아 갔던 것은 감상적인 낭만이나 호화로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기 많이 오기 때문에 그 옷을 구경하거나 책망이 즐거워서는 아니다. 그들은 400년의 암흑기 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최후의 선지자를 보고자 해서 갔던 것이다.

오늘 날 우리가 예배당에 오는 것도 예배를 드리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광야는 보이는 세상적인 가치로는 사실 예수께서 물으시는 것 외에는 없다. 감성적이고 좋고 아름다운 낭만은 사실 세상 다른 곳에 얼마든지 있다. 다만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하고 바른 천국의 사람으로 확인하고 거듭나기 위해서 예배에 오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주님을 찾는 목적도 바르게 되어야 책망 받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신앙의 목적이 바로 설정될 때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자들이 될 것이다.



2.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세례 요한.(10~11f)

구약의 메시아 예언의 선봉자였던 이사야는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사40:3~4) 라고 선포 하였고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말라기 선지자도 어두움에 마지막 빛을 던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3:1) 세례 요한은 분명히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서 온 최후 최고의 선지자임에 틀림이 없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6)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세례 요한은 소위 올림픽 행사에서 여러 사람을 통해서 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 성화 봉송대에 불을 밝히는 최후주자와 같다. 각 나라마다 훌륭하고 이름있는 사람들이 성화봉송주자로 선택되지만 사실 가장 큰 영광스런 역할은 마지막 성화점화를 하는 사람에게 쏠려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보다 위대한 사람은 그 활활 밝게 타오르는 그 빛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3.가장 큰 율법보다 큰 가장 작은 복음의 위대성.(11b~13) 구약의 이스라엘이 왜 있었는가? 율법이 왜 있었는가? 구약의 모든 화살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맞추어져 있고 십자가에 맞추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도 이정표에 불과했을 뿐이다. 우리가 구원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이정표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 속의 많은 일꾼들은 이 것을 망각하고 교만하고 범죄 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요한)보다 크니라”(11)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지극히 적은 성도일지라도 구약의 어떤 선지자 보다 크다는 주님의 약속 그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약속된 것이고 오늘 우리가 이런 엄청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가져야 한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히11:39)

여기서 귀중한 천국의 교훈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2) 표면적으로 조금은 살벌하게 들리는 이 말씀은 구약의 약속에서는 더욱 불가능한 약속이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완료하시고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한정된 민족 안에서가 아니라 누구든지 십자가로 완성된 구원을 자신의 것으로 믿고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감당하기만 하면 그러한 자들에게 기꺼이 천국은 침로 당한다는 약속이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정복하도록 이미 이겨 놓은 전쟁을 감당하게 했던 원리는 이제 완성된 영적인 이스라엘 안에서 예수께서 피 흘리심으로 이미 이겨놓은 싸움을 이제 믿음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이 은혜의 약속을 성경의 도처에서 읽게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영원부터 예정하시고 수 천년의 준비 기간을 통해서 이루어진 복음 시대에 태어나고 믿게 된 감사를 망각치 말자! 천국은 오늘도 누군가에 정복당하기를 원한다. 이제 구약의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이미 이겨 놓은 전투의 최종의 승리를 위하여…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된 약속을 들을 수 없는 귀는 참으로 가련한 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