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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갈 6:1~10 2001-02-04
네 자신을 돌아보아...  
신앙의 문제는 언제나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한다. 모든 신비 종교나 동양 종교들이 다 그렇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다른 모든 종교는 스스로의 노력과 고행을 통해서 자아를 발견해 내는 것인 반면에 우리 복음과 은혜 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것을 찾아내어서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쏟아 부으시는 은혜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가로막는 것은 언제나 주변 환경이나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선언한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5:25)



본문에서 바울사도도 구구절절이 "네 자신, 스스로, 자기의..." 등등의 주격으로 시작하여 경계를 주고 있다.



우리 각자가 이왕이면 넘치는 은혜와 헛되지 않은 은혜뿐만 아니라 보다 자유 하는 삶을 위하여 우리 자신들의 문제를 찾아내어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Ⅰ.나에게 범죄한 자를 보면서도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주님께서 직접 경계하시기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6:41~42)



"우리에게는 용서할 자격이 주어졌을 뿐이지 정죄 할 권한은 주어져 있지 않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한 무조건적인 용서의 은혜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이 나 자신에게 범죄 한 사실이 들어 나도 내가 오히려 나 자신을 살펴야 한다면 타인에게 범죄 한 사실에 대하여는 입을 땔 자격이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사람 영적인 사람만이 그러한 자들을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다시 경계하시기를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11:31)



오늘의 주제는 용서가 아니다. 그러나 용서에서 끝나는 것은 완전하지 못한 신앙인의 삶이다. 거기에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을 때 주님께 피의 은혜를 맛본 성령의 사람(신령한 너희는-성령에 속한 자)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2)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



Ⅱ.주님의 일을 감당하면서도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2~3)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우리는 교회 속에서 어떤 일을 잘 감당했다고 하는 상황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비웃고 자신을 과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늘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살피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이루시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사도같이 위대한 일을 한 사람도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우리가 스스로 어떤 일을 해냈다고 자만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고 십자가의 희생은 천대를 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감당하면서도 스스로에게서 끝임 없이 솟아나는 교만을 잠재움으로서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 나라의 짐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섬기고 희생하라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주님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8:2)



특히 여기에서의 "짐을 서로 지라"는 표현은 좀더 깊은 의미로 앞의 범죄자의 죄와 거기에 따르는 고통과, 교회 속에서 함께 세속적이고 마귀 적인 유혹을 물리치는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다.



Ⅲ.나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4~5)



"각각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여기에서 "자기의 일을 살피라"는 표현은 용광로를 통하여 순금을 골라내는 것을 뜻한다. 신앙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선호하는 일과 일을 처리하는 방법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신앙으로 확인하는 삶이야말로 마음속에서 솟아나고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주님과의 자랑이 될 것이다. "또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것을 감당케 되었습니다." 라는 눈물과 승리의 고백을 오로지 주님께 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부족(자기의 "짐 fortivon"은 스스로의 죄와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다)을 찾아내어 주님과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 자신도 이러한 사실을 친히 경험하고 고백하고 있다.



고후12:9~1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Ⅳ.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6~9)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은 물질적인 면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지만, 이것은 가르침을 받을 때마다 그 말씀들을 자신의 신앙적인 변화로 연결하여 배움의 순차마다 믿음의 상승을 보이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가르치는 자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 사도께서 이것을 말하고 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 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요삼1:3)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신앙적 진보는 없고 물질적 면에서만 같이 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기쁨이 아니라 짐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사1:11~17).



그래서 결국 바울사도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경계하면서 사람은 남의 눈을 속일 수 있어도 스스로의 신앙 양심을 속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속이려 드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믿음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 때만이 낙심치 않고 꾸준히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믿음으로 무명으로 연보를 한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연보를 하지 않으면서 무명의 연보 속에 자신의 연보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인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자신까지도 속일 수 있을 지 몰라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말씀은 분명한 미래의 약속이다.



Ⅴ.그렇게 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다.(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이것은 적어도 오늘의 결론 같은 말씀이자 늘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자들의 믿음의 결과들을 가르침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여기의 착한 일은 어려움에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도움을 주고 물질을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이 뭘까 생각해 보면 생명을 줄 수 있는 것, 즉 복음을 효과적으로 나눠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 것은 적어도 인류의 모든 사람을 대상할 수 있고 늘 "네 자신을 돌아보는" 날마다 주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어 사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도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의 전하는 복음에는 귀 기울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 믿음의 가정들은 더할 것이다. "네 자신을 돌아보는" 변화된 사람들의 도움과 위로와 격려가 신앙의 삶에 확신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삶은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 치명적인 신앙의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믿음의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어쩌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그래서 그것은 신앙의 사람들에게 착한 결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달에 계속 기도하는 프로그램과 마지막으로는 말씀의 잔치를 배설하였다. 우리는 이런 귀한 기회를 통해서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아" 스스로의 신앙 상태를 바르게 진단하여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