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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사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들이다.[키가 적은 것도(그래서 키 높이 구두를 신지 않는다.) 흰머리가 나는 것도, 고독을 느끼네 하는 것도] 설령 그것이 고난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주신 것들을 즐길 권리(필요)가 있다. 이것이 신앙적인 입장에서는 더욱 분명하다. 이 복음 시대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아무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같으면 율법시대에 났다면 아마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을 것이다.] 안식일을 가지고 갈등 하는 이스라엘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함에도 불고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연약함이 있다.
앞에서 이미 예고 했던 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배척이 노골적이다. 제자들의 작은 실수도 반대의 구실로 삼고, 질병을 고치는 선한 일도 대적하는 원인이 되고 심지어는 가족들 조차도 복음 사역에 장애적인 역할만 한다. 오늘 본문의 병행 구절은 공관복음에 함께 기록되고 있다.(막2:23~28; 눅6:1~5)
오늘 본문에서 다음 주에 걸쳐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마찰 원인은 주로 안식일에 관한 문제로 기록되고 있다. 사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안식일 문제에 민감한 신앙의 사람들이 있고 그것이 교회의 명칭이 되기도 했다. 이런 입장에서 안식일과 주님의 날에 대한 정의가 바로 되지 못하면 혼란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날을 안식일의 변형이라고 생각하고 구약의 안식일 개념으로 주님의 날을 ‘지킨다’고 들 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 또 오늘 이 본문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정확한 문장형태를 갖추고 있어서 그런 방향으로 풀어가 보고자 한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맨 앞의 3계명과 인간 관계의 첫 계명인 제5계명 중간에 안식일 계명이 위치해 있고 사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계명이기보다는 사람을 위한 계명이다. 근본적으로 인간 구조의 싸이클에서 영육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명적으로 못박은 휴식의 날로 율법에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2:2~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 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출31:15, 35:2)
민15:32~36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니라”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4~15)
Ⅰ.사건의 발단.(1~2)
(1)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1.제자들의 굶주림이 원인이었다.(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얼마나 굶주렸길래 이런 말을 받으면서도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었을까? 마태는 그 원인을 “제자들이 시장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사건의 발단은 신앙적 문제에서가 아니라 가장 단순한 근본적인 욕구에서 나타났다.
과거의 보리고개시절을 겪던 시대에도 더러 있었던 경험이다. 보리는 불에 그을리지 않으면 비벼 먹을 수 없지만 밀은 그런대로 비벼먹을 만 했다. 같이 주님을 따르면서도 끼니 굶지 않고 먹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우리들은 얼마나 더 감사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밀이삭을 따서 비벼먹는 것조차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라고 다그치는 바리새인들의 비뚤어진 마음이 훤히 보인다.(15:3) 그러나 먹는 것이 올무가 될 수 있는 소지는 오늘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늘 신령한 양식을 더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2.언제나 붙어 다니는 바리새인들…(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그들은 삶 자체가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다. 긍휼이 있고 용서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보아 넘길 수 있는 일에도 이렇게 비판적인 모습이 가련하다. 은혜를 인해서 따라다니지 못하고 트집을 잡으려고 좇아 다니는 것이 안타깝다.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 무례하기 그지 없게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 댄다.
사랑 앞에는 모든 것이 용서 되지만 미움 앞에서는 어떤 것도 바로 보이지 않는다. “질투의 눈은 천의 눈을 가졌어도 하나도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히브리의 잠언은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간교하고 죄 많은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서 낮고 천한 말구유간에 오셨다.
여러분들 모두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주님을 붙어 다니고 십자가에 감격하며 주님의 사람들을 사랑의 눈으로 봄으로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주신 평화를 넘치도록 누리시기를 …
Ⅱ.예수 그리스도의 답변.(3~5)
(3)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지혜의 근본이신 분 답게 ‘이제는 율법을 어겼으므로 꼼짝없이 올무에 걸었다.’고 쾌재를 부르는 이들의 공격에 대해서 단번에 입을 다물게 만드신다.
1.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의 행적을 말씀하심.(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레24:5~9 “(5)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둘을 굽되 매덩이를 에바 십분 이로 하여 (6)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7)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8)항상 매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9)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먹을 수 있는 대상]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먹을 수 있는 장소]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은 사무엘상21:1~6의 기록을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다가 놉 땅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러서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라고 요청하자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일상적인)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 라고 하면서 그들이 성결을 묻자 “…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라고 하자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는 일을 주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제사에 관련된 예법조차도 하나님의 긍휼에 기초한 법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쾅쾅 막힌 독선자가 아니시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것 조차도 주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을 떠나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수없이 말해 왔다. 하나님은 자체로서 부족함이나 사랑에 굶주려 어줍잖은 인간의 섬김을 받아야 될 만큼 불안한 존재가 아니시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행17: 24~25)
2.성전 안에서 어겨지는 안식 계명의 무죄를 가르치심.(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분명히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못하고 심지어 불을 피우는 일이나 음식을 만드는 일도 할 수 없지만 성전 속에서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금지된 일들을 해도 정죄 되지 않았다. 앞에서 다윗과 그의 일행이 먹었던 진설병도 안식일에 진설하였던 떡이다. “항상 매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레24:8)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이는 매안식일의 번제라 …”(민28:9~10) 여기 기록되는 명령들은 성경을 다 찾아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계명 속에서는 안식일에 금지된 일들이지만 성전 안에서는 안식일에도 행하도록 명령 되어지고 있다.
이것은 사실 연이어 말씀 되어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엄청난 특권을 위한 율법 속에 상징이었다.
Ⅲ.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6~8)
(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1.땅의 성전보다 더 완전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앞에서 이미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은 출애급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옮겨 다니며 그들이 쳤던 성막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솔로몬 성전을 비롯한 화려하던 초라하든 모든 성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에서 드려진 제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을 제물로 드린 단번에 모든 제사를 완성하실 것[히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에 대한 그림자였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교회는 이제 그리스도의 몸이요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다. 이것은 더 이상 보이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이 부어진 모든 성도들의 무리를 의미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고 말씀한다.
제자들도 깨닫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도 이를 직접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2:19, 21~22)
이 땅에 성막과 성전을 짓도록 명령하셨던 성전보다 더 큰 이 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율법이 범하여 지지 않는다.
2.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바리새인들이 왜 하나님 앞에 그렇게 철저하면서도 책망을 받는가?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눅11:42; 마23:23)
하나님은 사실 법에 매인 삭막한 관계보다는 사랑의 관계를 더 원하셨으나 율법의 조목조목을 따지는 것에 철저했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몰랐기 때문에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오늘도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다르지 않다. 여러분 모두가 의무에 매여 신앙생활 하는 것 보다는 주님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여 자비를 구하고 은혜를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3.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안식일을 이스라엘에게 주신분도 주님 이시오, 완성하신 분도 역시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선언하시는 것이다. 뿐이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인이시다. 사도 요한은 고백하기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2~3)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는 과거의 모든 율법을 완성시켰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맺은 시내산의 계명인 십계명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고 압축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한 주의 맨 마지막 날을 쉬는 것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죽음을 박차고 승리하신 승리의 첫날을 주님께 드리면서 나머지 엿새를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살기를 다짐한다. 주님께서 죄인을 사랑 하심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이 되어 죽으심을 떡과 잔으로 기념하면서 격식을 갖추어 하나님을 예배하고 나머지 엿새를 첫날에 확신된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의 향기를 사람들 앞에 날리며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킨다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율법정신이 아니라 첫날부터 주님께 드린다는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구약에서 벌써부터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118:22~24) 주님의 희생의 피가 흘려진 날부터, 날도 달도 절기도 율법도 모두 의미를 잃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역사만이 우리를 살게 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율법이 완성되었으므로, “성전 안에서는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다.”는 깊은 영적 진리가 확인되어 진 것이다. 또 이런 사람들에게 비로소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2:27) 라는 진리가 이해되고 감사되어 지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셔서 악을 완전히 징벌하신 후에는 이러한 논쟁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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