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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찾아 가는 길을 잘 가기 위해 지도를 준비했는데 철없는 아이들이 그 지도 위에다가 같은 지도 모양을 잔뜩 그려 넣어서 본래의 인쇄된 내용을 전혀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유전을 잔뜩 섞어넣은 주님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책망한 내용과 꼭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천국 여행에서 지도와 같이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유전으로 바꿔 버린다면 그 끝은 천국이 아니라 여전히 무서운 지옥이 될 것이라는 경계를 지난 시간에 우리는 나눴다.
요즘 많이 판매되고 있는 최신의 네비게이션이나 GPS 같은 것들은 운전하는 차 안에 장착하면 우리 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곳이나 지시하는 내용의 음성이나 그림을 통해서 전혀 혼란을 느끼지 않고 찾아 갈 수 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렇다. 누구든지 이 말씀을 순종하기만 하면 천국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값없이 주어졌으니 감사할 뿐이다.
오늘의 내용도 맨 처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질문 했던 내용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면서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거부하는 유대인들 대신에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풀어 증거 되고 있다.
본문의 말씀은 마가복음7:14~23에 함께 기록되고 있지만 역시 누가복음에는 침묵 되고 있다.
Ⅰ.말씀에 대한 반응은 언제나 다르게 나타난다.(10, 12, 16)
주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르치시면서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10) 하셨고 다시 재차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16)고 마음 아파 하신다. 그래도 이것까지는 아직 기회가 있지만, 제자들이 주님께 표현한 것처럼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12) 라고 한 질문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들으면서 걸려 넘어져 버리는 사람은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이고 이런 사람들은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언제나 진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이다.
사람들이 모두 말씀을 은혜로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제자들조차도 아직 성령의 사람들이 아니라서 “듣고 깨달으라!”시는 주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신 것처럼 오늘도 진리와 은혜를 주셔도 여전히 〃 확신치 못하고 어정쩡한 우리들을 향하여 같은 안타까움을 가지실 것이다. 옛 속담에 ‘모르는 것은 손에다 쥐어줘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영적인 부분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만하면 이제 확신을 가질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엉뚱한 것들을 기웃거리면 잘못된 부흥을 부러워 하는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가만히 물으실 것 같다.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중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이런 안타까운 책망을 듣는 분은 한 사람도 없기를 …
자신들도 온전한 깨달음이 없으면서 오히려 제자들은 주님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두고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본다. “…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12)
[걸림이 되다, 헬, 스칸달리조(skandalizo), 함정에 들게 하다, 죄를 짓게 하다, 실족하다.←(헬, 스칸달론(skandalon), 덧, 올가미, 함정, 장애물, 죄의 원인)]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표현이 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11:6; 눅7:23) 하셨는데 결국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는 자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마귀에 사로 잡혀 있는 자들은 오히려 진리에 거쳐 넘어지는 아이러니를 보는 것이다.
진리는 생명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풍성한 꼴이 되겠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올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진리가 되지 못하듯이 말이다. 여러분 모두는 진리를 진리로 소화하는 복된 순종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
Ⅱ.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헛된 것은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 받는 모두에게 화가 있다.(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1.하나님께 버려둠을 당하는 것은 절대 비극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주었어도 그 진리에 바른 반응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불순종을 일삼는 자들을 버려 두신다. 마치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인간들로부터 외면 당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들은 비로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는 비극적인 모습의 사람들을 로마서 1장에서 읽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1:24)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26)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28)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 인간은 절망이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사람조차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거역하고 외면하는 자들을 향하여도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그렇기 때문이 언제든지 악함을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 오기를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하나님을 뒤에 돌려두고 사는 불신의 사람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있는 비극적인 삶인 것이다. 여러분들이 때로 믿는 것으로 인하여 사람들로부터는 따돌림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그를 찾는 자들을 절대로 〃 외면치 않으시는 분이시므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아직 버림을 당한 것이 아님을 확신하시기를 …
2.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가장 절망적인 시각 장애자이다.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이 말씀은 당시나 지금도 속담과 같은 말이다. 같은 성경 말씀을 보면서도 진정으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치명적인 시각 장애자들이다. 그러한 무지 목매 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 또한 같은 운명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진리가 아닌 것을 가르치고 들으면서 “아멘, 아멘”을 반복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우리는 듣기 좋다고 아멘 하면서 바른 진리에 대해 수긍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누가 영적인 시각 장애자인가를 판가름할 수 있는 분명한 시약(試藥)을 누구에게나 다 주셨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쉽게 가지고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하나님은 이 성경이 바른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하기 위하여 이적과 표적들로 확증하셨고 완벽한 것으로 주셨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시니라”(막16:20) 그러므로 마지막에 핑계치 못할 것이다.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풍성히 허락된 이 시대에 거짓 것을 믿는다면 얼마나 가련한 사람들인가?
바른 진리가 아닌 거짓 것들을 가르치는 자들과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가장 절망적인 소경들이요 절망으로 갈 운영의 존재들이다. 바른 진리의 교훈에 순종함으로 생명이 풍성하고 비록 육신의 시각은 흐려질지라도 하늘을 향한 영의 눈은 더욱 밝게 빛나는 …
Ⅲ.죄악 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멸망으로 이끌어 간다.(11, 17~20)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사실은 사건의 발단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이 내용이 같은 병행 구절인 마가 복음에서는 죄성의 사람의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죄의 종류들을 좀더 확대시키고 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안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7:21~22공동)
도덕과 신앙에 있어 사람의 정결(淨潔)과 부정(不淨)에 대한 주님의 사실적인 말씀이 증거 되어지고 있다. 지난시간에 언급했던 것처럼 위생적인 삶이 곧 영적인 정결은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십계명 중에서도 앞의 四戒命인 하나님과의 계명이기보다는 인간 관계의 계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 부패한 인간의 심령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당한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죄악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8~31)고 증거하고 있다.
범죄 한 인간의 마음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좋은 것은 한 가지도 없다. 그래서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추한 죄의 더러움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대신 십자가에서 그 저주를 대신 감당하신 것이다.
사람의 유전을 하나님 계명과 바꿔 친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들의 전해 내려오는 도덕이나 철학, 속담에 더 무개를 두는 사람들, 그들의 위생 관염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시와호 같이 근본적으로 썩어있는 그들의 마음을 휘저었을 때 떠오르는 죄악의 독소들이 자신을 질식 시키고 주위의 사람들 조차 저주의 지옥으로 끌어갈 뿐이다.
이러한 경계를 듣는 저와 여러분들의 입에서는 오직 구원의 말씀만이 풍성 하시기를 …
Ⅳ.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반드시 뽑힐 수 밖에 없다.(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우리는 보다 중요한 것을 결론으로 가지고 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속에 좋은 씨를 뿌려 주셨지만 마귀가 거기다 가라지를 덧뿌렸다.[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마13: 25, 39)] 그럼에도 하나님은 좋은 씨를 상할까 봐 추수 때까지 그 죄악의 씨를 두셨다가 먼저 거두어 불에 던지실 것이라는 경고를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하신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공로도 교회의 행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셔서 심은 것이 아니면 반드시 뽑힐 것이라는 무서운 경계이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들고 건물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졌어도 하나님의 심지 않으신 것은 뽑히고 헐릴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마24:1~2; 막13:1~2; 눅21:5~6)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지어준 화려한 성전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치적 수단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AD 70년에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해서 무너져 우리 주님의 안타까운 예언은 그대로 적중하고 말았다.
공원 묘원을 가보면 수다 한 모양들의 외형적으로는 현란한 꽃들이 무덤들 앞에 꽂혀 흔들거리고 있지만 다음에 갈 때는 꽃들이 바뀐 것들이 많다. 그러나 무덤가에 심어진 때를 따라 꽃을 피우는 심어진 꽃들은 그 자리에서 옮겨지지 않고 그대로인 것의 차이와도 같다고 보아진다.
바울 사도는 사람들의 신앙의 공력들을 경계하여 이르기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3:10~13) 고 경계해 주고 있다.
사실 이 세상이 좋아하는 것들은 교회 속에서는 의미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 하는 것들 역시 주님의 교회 속에서는 가치가 없다. 사람의 보기에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이라도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것들은 영원히 〃 빛을 발하는 가치를 나타낼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들이 하나님께 인정 받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들여 온 것들 사람들 좋게 하려고 하는 것들을 주님의 교회 속에서는 다 좇아 내야만 마지막 주님의 영광의 날에 뽑힘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이 눈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이 재미없어 하고 이 진보된 사회 속에서 발전에 장애를 주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반드시 회복해야만 할 과제들이다. 세상을 기쁘게 하려는 것 사람을 좋게 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 속에서 과감히 추방할 수 있을 때 주님께 인정을 받을 것이다. 사도 바울의 자세로 말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사람을 멸망시키는 것은 먹는 음식물이 아니라 죄진 인간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근본 된 이 마음을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내주신 영원토록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지배하시도록 순종하고 복종함으로 생명이 풍성이 흘러 나오는 우리의 교외와 그 교회에 속한 성도가 되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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