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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는 두 곳에서 주님께서 행하셨던 이적과 치유의 기사들을 정리하여 다룬 바 있다. (8:~9:); (14:~15:) 오늘 본문부터는 드디어 주님의 생애의 최고의 역사 즉, 구속의 역사를 향한 수난이 예고되고(16~17장)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이 잦아지고, 비로소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시는 것을 듣게 된다. 진행되는 내용을 보면 다음 13~20절에서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을 수 있고, 21~28절에서는 주님께서 첫번째로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죽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17:1~13에는 주님께서 영광을 입으실 것에 대한 예시는 산 위에서 나타내시고, 14~20에는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간질 하는 아이를 고치시고, 22~23절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두 번째로 말씀하시고, 24~27절에서 성전 세에 관한 말씀과 고기 입에 든 기적의 한 세겔을 베드로와 함께 내시는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종교 세력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기를 시샘해서 온 갓 올무와 시험을 다하여 예수를 백성들의 관심 밖으로 밀어내 보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의 간사한 모략에 넘어가실 리 없었고 그 때마다 오히려 자신들이 참패를 당하는 쓴 경험을 하곤 했다.
오늘의 내용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간계와 그러한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경계하시는 주님의 가르침이 계셨지만 그 가르침을 오해하는 주님의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무지를 일깨워 가르치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Ⅰ.하루의 날씨보다도 역사와 시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함을 가르치신다.(1~4)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1)
우리는 이미12:38~42에서 오늘 본문과 비슷한 말씀을 읽은 바 있다. 이 내용을 누가가 역시 기록하고 있고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눅11:29~32)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은 누가복음에는 없고 마가가 기록을 하고 있는데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막8:11~13)고 간략하게 쓰고 있다.
1.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전히 예수를 시험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보는데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기본적인 계명조차도 어기면서 당돌하게 예수를 시험하고 있다. 그들이 가장 귀중히 여기는 신명기서에서도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신6:16) 하셨음에도 벌써 저들은 불경건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성령의 충만한 역사 속에 있었던 사도행전 속에서도 불신의 사람들에 의해서 있었던 일들이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행19:13~16) 오늘 우리 시대에도 같은 불경건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택하신 바 된 것이 사실인지 시험했던 것(양털뭉치와 이슬)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시험의 대상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시다.[딤전3:10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
믿음은 시험해서 검증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시험해서 검증하는 것은 과학이라고 하는 인간 이성 영역의 학문이다. 함에도 이런 인간 이성의 학문자세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신앙에서조차 같은 시도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은 시험으로 알아지는 분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할 때 알아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확증 된 순종과 섬김의 대상이다. 바울은 선언하기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 하나님은 약 육천년에 걸쳐서 시험되고 검증되어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
2.하루의 날씨를 아는 것 보다는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일차 농경문화 속에서 매일의 날씨를 바르게 아는 것은 생산과 관련되는 중요한 사실이었다. “오늘도 지독하게 덥겠다.” 농사를 여러 해 동안 지어온 사람들은 성경이 아니라도 창세기1:14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잘도 알아낸다.
오늘 우리 시대의 일기예보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적중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장마철에 집중 호우지역을 미리 아는 것은 실지로 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이점(利點)이 있다.] 그러나 이 과학적인 일기 예보를 늘 잘 사용하는 사람들도 이 마지막 가는 시대를 헤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크나큰 비극이다.
3.십자가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이 사람을 살리는 가장 귀중한 기적이다.(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늘 이야기해도 부족할 뿐인 예수 그리스도의 온 인류를 위한 희생의 십자가와 부활, 그 은혜의 기적에 나를 맡기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기적이다. 함에도 여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적을 보여달라고 울부짖고 통곡하며 예수께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때나 오늘이나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일 만큼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기적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 어느 시대나 문제이다. 오히려 우리는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막9:24) 라고 주님께 하소연할 필요가 있다.
인류에서 단 한번 있었던 표적, 단 한번만 필요한 이적, 나와 모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죽으시고 장사 되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승천하신 그 생명의 기적에 나를 일치시키는 역사가 오늘도 믿음으로 이루어 질 수 있고,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되어야만 한다. 이 기적이 우리 각자를 살리는 기적이 되는 방법을 바울 사도는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3)
창세전에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 그리고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되었던 이 놀라운 기적이 바로 우리 각자를 위한 기적으로 예수께서 몸소 베푸신 이 기적은 그 주님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 역사 속의 수많은 기적을 보는가? 살인자가 이 예수의 요나와 같은 기적에 동참하여 성자가 되는 기적을, 난봉쟁이, 마약쟁이들이 새로워지는 기적을 …
세상은 비록 악하여 계속적으로 기적을 요구할 지라도 이 죽으심과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보여주신 기적만이 가장 가치 있는 기적인 줄로 믿으시기를 …
Ⅱ.아직도 영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유약한 제자들을 본다.(5~12)
(5)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7)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9)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11)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이 내용 역시 마가복음에서 계속되고 있다. 몇 가지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다르지 않다. 약간의 차이들을 살펴보면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저희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막8:14~21)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여 달라는 간교한 주문을 이미 아셨고 그들의 잘못된 교훈을 경계하라고 당부하시지만 제자들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오해하는 해프닝을 보이고 만다. 늘 떡을 어느 정도 준비하고 다녔는데 하필이면 이것을 잊어버린 입장에서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시는 주님의 말씀이 자신들이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여 서로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넘겨짚고 만다. 주님은 잘못된 영적인 교훈에 대해 안타까워 하시는 대신에 제자들은 육신에 먹을 것에 대해 염려하는 서로의 오해를 나타내고 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신앙의 부분들이 많이 왜곡되고 있는 것들이 더러 있다. 주님은 언제나 신령한 복을 약속하시는데 그것을 오로지 세상에서의 영광과 부귀로만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통한 교회예정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1:3) 라고 사라지지 않을 복을 말씀하셨고 많은 사람들은 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잃지 않으려고 오랜 역사 속에서 육신적으로 고난을 자초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까지 했는데(히10b~11장) 오늘 우리는 사라질 것, 없어질 것들에 너무 하나님의 복의 기준을 평가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까지 하다. 마치 잘못된 신앙적 교훈을 경계하시는 주님의 우려에 육신의 음식으로 착각하는 제자들처럼 말이다.
안타까우셨던 주님은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9~10)고 책망하신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육신적으로도 넘치도록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 보라는 경계의 말씀이셨다.
그렇다면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신 주님의 말씀은 무슨 교훈일까? 앞에서도 누룩을 이미 논한바 있지만 누룩은 천국에 비유되기도 했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한 것으로 봐서 역시 그 확산력에 열쇠가 있다.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이 강한 확산력으로 전파되는 것은 환영할 만 하지만, 반대로 본문의 누룩은 가장 강한 확산력을 가지는 잘못된 교훈을 경계하신 내용이다. 분명히 누룩 곰팡이는 사람에게 좋은 곰팡이이고 페니실린을 만드는 푸른 곰팡이도 유익한 것이라면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검은 곰팡이나 박테리아의 번식도 그 확장에 있어서 무서운 속도를 가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원리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은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바른 진리의 확산도 강하고 빠르겠지만 잘못된 신앙적 가르침의 확산도 그에 지지 않는 속도로 확산된다는 경계임에 분명하다. 주님의 가르침을 계속 받았던 제자들이 나중에 깨닫기는 했지만 여기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어서 ‘이것이다.’ 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평상시에 그들의 가르침과 교훈을 보시면서 주님께서 지적하셨던 교훈들을 살펴보면 쉽지는 않지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먼저 ①바리새인들의 경계 되는 모습은 하나님 말씀을 자신들의 입장에 맞게 바꾸고 대대로 그렇게 내려온 유전을 고수하면서 자신들처럼 하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고 하나님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게 보이려는 독선과 위선, 그리고 가식적인 자세들이었다.(15:1~9) 이것 또한 주님께 가장 신랄하게 책망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마23장)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5~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25~27) 더 심각한 것은 그러한 사람들은 결국 사람을 하나 더 얻는다고 할지라도 자신과 같은 위선자만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15) 라는 두려운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사람은 몰라보고 따르고 존경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나중은 그 결과대로 될 것이다.[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이 누룩은 나중에 베드로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성경에서 보게 되는데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갈2:13) 바울의 안타까운 고백을 듣는다. 이러한 책망은 그 때의 바리새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같은 신앙적행동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동일한 책망이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저를 포함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람 앞에 거룩한 척하는 이중적인 사람들에게 함께 주시는 책망이다.
②사두개인의 누룩은 어떤 것일까? 같이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는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8:11)는 내용이 이체롭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면서 오로지 현실의 영화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부활도 믿지 않고 성전을 자신들의 장사터로 만들고, 이익이 생긴다면 헤롯당과도 손을 잡았던 세속주의, 현실 주의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의 약속을 부정하고 오로지 현실의 영화와 부에 모든 신앙적 목표를 사용하는 사두개인들의 누룩도 오늘 우리 현실에서 얼마든지 보고 듣는 무서운 누룩이요 계속되는 확산을 경계해야 할 죄악의 누룩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5)고 경계한바 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합당하지 않으며 하나님도 사람을 친히 시험하지 않으신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1:13)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은 더 봐야 할 정도로 부족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의 부족이다.
매일의 일기예보를 바로 아는 것보다는 마지막을 향하여 가는 이 시대를 바르게 구분하는 것이다.
사람들간에 살게 하는 복음의 확산이 누룩처럼 확산되어야 하지만 거짓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지 않는 교훈은 차단되어야만 한다. 생명의 복음의 확산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고 거짓된 교훈은 사탄의 힘으로 되어지므로 반드시 차단 되어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도 영육 사이에서 영적인 것을 더욱 힘쓰고 경계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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