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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의 말씀에서 등불은 말씀이고 말씀을 인격화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지혜의 왕 솔로몬의 말을 빌리면 분명하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6:23) 등불은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 키는 것이다. 그러한데도 사람들은 어리석게 등불을 켜 두고 그것을 가리고 난도질해서 생명의 법을 무익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Ⅰ.등불은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 키는 것이다.
여기에 등불로 밝혀야 할 어두움은 무엇이며 등불은 무엇인가?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 하였고 다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고 예언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그의 소유된 백성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바울사도께서도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인간에게 밝혀야 할 어두움은 하나님과 말씀과 구속을 모르는 상태이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과거에 빛이 없는 어두움이었고 귀한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은혜로 빛을 받게 되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26:18)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귀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찬양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Ⅱ.가리는 어리석음은 무엇인가?
빛은 분명히 필요에 의해서 밝힘에도 불구하고 가려 둔다고 하는 것은 그야 말로 어리석음이다. 세상의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필요로 하여 찾으면서도 또한 스스로 그 말씀을 가려 버리는 참으로 딱한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빛으로 선포한 요한 사도는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하였고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거나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요1:9, 11)
고 한탄한다.
Ⅲ.가리는 그릇은 무엇인가?(16)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1]그릇으로 [skeu'o" 그릇, 연장, 도구, 기구; movdio"말(마5:15; 막4:21)] 덮거나;
①사람이 말씀을 가리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사람을 질그릇으로 비유하고 그릇으로도 비유한다(딤후2:20). 결국 성결치 못한 종교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빛 십자가의 빛이 가려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의 복음의 빛을 가리는 그릇은 아니가 살펴야 한다. 바울사도가 택함 받았다고 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롬2:24) 하신 것처럼 오늘 나의 성결치 못한 삶으로 인하여 십자가의 구원의 빛이 가려질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②인간적이고 계산적인 이권이 말씀을 가려 버릴 수 있음을 경계한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마);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에서는 이 "그릇"을 곡식이나 기름을 되는 "말(斗)"로 비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산적이거나 타산적으로 헤아리고 난도질하거나 이권을 위하여 이용하는 죄악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2]평상 아래[침대아래] 두는 것
등불은 침대 아래 둘 성격의 것이 아니다. 침대아래 우겨 넣어 두는 것은 보기 싫거나 수치스러운 물건들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우리의 죄악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취급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주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하셨고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 하셨고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8:38)
고 경계하셨다. 때문에 바울사도는 오히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라고 자랑하고 있다.
Ⅳ.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야 한다.(16b)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말씀은 받들어야 한다.
말씀은 우리의 모든 삶의 맨 위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요12:35)
빛이신 말씀을 나의 가장 높은 위치에 둠으로 비로소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17) 하신 것처럼 어두움과 죄악은 들어 나고 하나님의 빛의 역사는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에 어두움과 불의가 혼란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 이유는 신앙의 사람들이 말씀을 등경위가 아닌 침상 밑에 감추어 두기 때문이며 이것은 비단 이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나의 현실이며 우리 교회의 문제일 수 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말씀을 높이고 빛이신 하나님을 밝히기 위한 삶이어야 한다.
Ⅴ.그러므로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야 한다.(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의 위의 모든 말씀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 하는 태도는 우리의 생명과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인답지 못한 나의 삶이 가리고 계산적이고 손익 적으로 적용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사람에게는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경계하고 계시는 것이다. 여기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고 "있는 줄로 아는 것"이다. 말씀을 귀하게 받들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고 그러한 믿음은 결국 위기의 시기에 상실되고 말 것이라는 경계의 말씀이다.
여기서 마가복음의 기록은 좀 차이가 있다.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막4:24) 하나님의 말씀을 내 머리로 헤아리는 헤아림만큼 우리 자신들에게는 손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말씀의 전체적인 요구는 우리가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른 우리의 신앙의 결과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확신을 시키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우리의 빛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죄가 드러나게도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 지게도 된다는 말씀이다. 솔로몬의 말처럼 하나님의 명령과 법 즉, 말씀이 등불이오, 빛이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6:23) 그러므로 요한 사도의 교훈이나 야고보의 교훈도 다 여기에 견주어 이해함에 무리가 없다고 본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말씀]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말씀]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말씀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당연히 바울사도의 당부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우리는 이번에 우리의 각자의 신앙과 교회의 복됨을 위해서 이왕에 말씀의 빛을 밝히려 한다. 말씀을 등경위에 높이 받드는 것은 믿음으로 그 말씀에 화합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4:2) 우리가 빛의 잔치 말씀의 잔치를 앞두고 있다는 것도 등불을 밝히려는 것이다. 함에도 참여치 않는 것은 말씀을 가치 없게 취급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나로 인하여 참여치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릇으로 덮는 것이다. 그 말씀을 우리의 입장에서 헤아리거나 가치 없이 취급하지 말고 각자의 삶의 등경위에 높이 받들어 들어서 "있는 자는 받겠고" 하는 약속이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약속이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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