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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육신의 혈육이었던 야고보는 우리 신앙인의 시험과 유혹을 말하다가 홀연히 말씀의 반응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 말씀을 미친 사람의 말로 취급했던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다(막3:21; 요7:5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시험을 이기고 지고의 결과는 당연히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소화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고 대하느냐 하는 것은 이 혼란의 시대에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Ⅰ.말씀을 받는 자세.(19~21)
(19)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여기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대할 때 가져야 세 가지 권면을 주고 있다.
1.우리는 성경에서 여러 가지의 말씀의 반응들을 본다.
①듣기는 속히. 잘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대의 뜻을 빨리, 그리고 잘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말은 적게 하고 일은 많이 하라!" 우리의 말하는 입은 앞에 하나만 있지만 귀는 양쪽에 둘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귀한 창조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②말하기는 더디. 군대에서도 위급 상황에서는 선 조치 후 보고라는 것이 있는 것으로 안다. 언제나 말은 입이 앞에 있어도 앞서서는 안 된다. 큰 소리 먼저 쳐놓고 행하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좋은 일을 먼저 해 놓고 말은 뒤에 해도 나쁘지 않다.
주님의 비유 가운데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눅14:28~30) 이 비유는 큰소리만 먼저 쳐 놓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경계이기도하다.
③성내기도 더디.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20) 이것은 단순히 인간을 향한 분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반응이다.
특히 자신의 듣고자 기대하는 어떤 기준이 빗나갈 때 사람은 분낼 수 있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 아벨과 같이 제사를 드렸으나 열납되지 않음을 보고 분노한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 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창4:5~6)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인간에 대하여 증거 하시기를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사3:9)
사도행전에만 봐도 대표적인 두 곳의 말씀을 볼 수 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7:54)
어떤 경우에도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이 분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악이며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묵묵히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려는 희생의 사람은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욕과 욕구를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은 분노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사도께서는 디모데를 향하여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3~4)
우리 하나님께서도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103:8) 하셨다. 참으로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우리는 벌써 진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수없이 이를 가르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2.말씀을 은혜롭게 받기 위한 자세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잘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21)"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①"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바울사도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엡5:3)
②"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으신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공동]
Ⅱ.받은 말씀에 대한 바른 반응.(22~25)
(22)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자유 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1.말씀을 듣기만 하고 끝내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물론 잘 듣는 것도 중요하고 복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러나 듣는 것은 절반의 복도 되지 않는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우들의 간절함을 듣는다. "‥‥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살전3:6) 왜 서로는 간절히 기대 하는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과 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거울을 본다. 그런데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거울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잊어버리고 놓여버린 말씀을 다시 듣고 찾기는 우리가 성경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어렵다. 이것은 제 스스로가 경험하는 사실이다.
2.하나님의 말씀은 행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을 잘 살피고 꾸준히 지켜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듣고 곧 잊어버리는 일이 없으며 들은 것을 실천에 옮깁니다. 이렇게 실천함으로써 그 사람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공동]
왜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면 그 말씀은 더 이상 성경책에만 있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 깊이 새겨지고 뿐만 아니라 성령과 함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쁨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만 경험하는 복이다.
Ⅲ.받은 말씀에 대한 적용.(26~27)
(26)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1.헛된 경건이 있다.
자신이 경건한 신앙의 사람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않으며 늘 말에 앞서는 사람의 신앙은 헛된 경건 즉 거짓된 경건이다. "누구든지 자기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혀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셈이니 그의 신앙생활은 결국 헛것이 됩니다"[공동] 특히 왜 경건에 "자기 혀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이라는 말을 쓰고 있을까? 바른 신앙의 사람은 앞서기 쉬운 것 내세우기 쉬운 것은 다 억제하게 되어 있다. 다른 말로는 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을 말함이다. 말씀을 진지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은 절제하고 십자가를 내세우게 되어 있다. "이만한 것도, 이것도 십자가 때문입니다"
2.참된 경건은?
마지막으로 그러면 바른 경건은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27)"하나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공동]
①우리의 삶의 주변에 등불을 밝히는 사람이다.
행9:36, 39"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그러나 단순한 구제와 선행으로 끝난다면 하나님 앞에서 별로 의미가 없다.(눅6:32~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결국 주변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구원과 소망을 끼치면서 자신의 경건에는 변함이 없는 사람을 이름일 것이다.
②자기 자신은 세상의 흐름에 동요되지 않는 사람이다.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의 대표적 인물 둘을 들면 에녹과 노아다. 창5:21~22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6:9~10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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