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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삼 1:2~8 2001-03-04
네가 진리 안에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우리는 이 말씀을 참으로 좋아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 그러나 '간구 하노라' 하는 기도와 축복의 사람이나 이 기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 모두가 진실 되고 바른 신앙의 관계가 아니고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그야말로 듣기 좋은 소리의 유희일 수도 있다.



여기 중심이 되는 내용은 '사랑하는 자'와 '진리 안에 행함' 그리고 이러한 신앙이 조화된 삶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깊은 신임의 편지를 받고 있는 "가이오" 라는 사람은 당시에는 대단히 흔한 이름이었고 "기쁨, 환희" 라는 신앙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 신약성경에도 더러 등장하는 인물이다. [①롬16:23"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고전1:14"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②행19:29"‥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 ③행20:4"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 더베 사람 가이오와 ‥"]



여하튼 이 '가이오'라는 사람은 사랑과 진리의 신앙 바탕 위에 신실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고 사랑의 사도 요한이 칭찬하고 천거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다.



Ⅰ.바른 신앙은 진리의 바탕 위에 행하는 사랑의 삶이다.(2~4)



사도 요한은 신앙의 사람, 진리와 더불어 사는 믿음의 사람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고 축복을 아끼지 않는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이 사람은 하나님의 근본적인 성격을 그대로 닮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하여 언제나 자신을 계시하실 때 가장 특징적인 성격이 '사랑과 공의' 또는 '은혜와 진리'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성육신 한 모습도 요한 사도는 그렇게 묘사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러므로 신앙에 있어서 어느 한쪽만 치우친 것은 바른 신앙도 아니며 하나님의 바라심도 아니다. 레11:45"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바로 자신의 성격을 닮은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사랑과 거룩이다. 우리가 그 분의 자녀라면 당연히 아버지의 성품을 닮을 것이다.



1.축복 받는 신앙.(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



우리 신앙의 사람은 어떤 일보다도 영적인 부분이 잘되고 바로 되어야 범사가 바르게 풀리게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말씀하신 바 있다.



"잘되고"로 번역된 [eujodovw] '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바울사도는 롬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고 말하는 곳에 나타난다.



"강건하기를[uJgiaivnw]"은 누가가 묘사하는 경우는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고 있다. [눅5:31"건강한 자에게는; 7:10종이 이미 강건하여 눅15:27그의 건강한 몸을"] 그러나 바울사도는 이를 '건전한 가르침'으로 사용하고 있다. [딤전1:10 기타 바른 교훈을 딤전6:3 경건에 관한 교훈에]



그러므로 여기에 요한 사도께서 축복하는 내용은 일차적으로는 모든 일이 잘되고 건강한 것을 의미할 수 있고 신앙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좋은 순례의 길이 되며 계속해서 건전한 가르침에 인도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앞에 나타나는 내용으로서 이를 더욱 확신할 수 있는데 "네 영혼이 잘 됨같이"에서 '영혼'이란 영과 혼과 육이 다 포함된 그리스도안에서 얻게된 영적인 생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축복은 당연히 v3~4의 신앙 상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2.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믿음과 이러한 신앙이 여러 사람들에게 끼치는 기쁨.(3~4)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 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가이오라고 하는 신앙의 인물 주위에 접근을 했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그 안에 진리가 있음을 확인했고 그것은 입으로 입으로 주변에 확산되었으며 결국은 신앙의 지도자인 요한 사도에게까지도 공공연하게 들려오게 됨으로 요한을 고무시키고 감격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소문의 효과 같은 것이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1:8)



그리고 이러한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 역시 사랑과 진리가 조화를 이루는 신앙 공동체였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살전1:3)



Ⅱ.진리의 삶이 다른 신앙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력.(5~8)



사랑과 진리가 조화된 믿음의 삶은 그 개인에게서 머물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과 교회를 변화시키며 교회가 세워지지 못한 당시의 순회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감격시키고 그 사람들이 순회하는 교회마다 그 진리의 승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갔던 것이다.



1.진리 와 사랑의 사람은 모든 사람 개개인에게 인정된다.(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당시뿐 아니라 나그네는 신앙의 사람들의 대명사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1:1, 17) 우리 나그네로 이 세상을 지나가는 모든 순례자들에게는 늘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잘 대하는 것이 신앙의 모습일 수 있는 것은; 함께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이권이 계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일 떠날지 모래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고와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신앙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을 의식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의 사람, 진리의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섬기는 감격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2.진리의 사람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한다.(6)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 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 앞에도 인정된다.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 하였느니라"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면 신앙의 모든 부분이 충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든 교회를 대하든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 믿음에서 중요한 것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진리라면 사람과 교회를 대하는 대는 사랑이 더 효과적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충족시키기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과 사람을 다 기쁘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3.진리의 사람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한다.(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믿음의 사람들이 진리와 사랑을 행함에 있어서 특히 이방인 즉,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처신해야 한다. 나의 위신이나 처지보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 사람이 잘못 보여 욕을 받아도 되지만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랑의 사람은 불신의 사람들에게 언제나 주님과는 관계를 단절시키지 말아야 한다.



4.진리의 사람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한다.(8)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진리를 삶의 바탕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이 최종적으로는 바로 그 진리를 위한 수고가 되어야 한다.



Ⅲ.오늘 나와 우리는 어떤가 점검할 필요가 있다.



1.우리의 교회는 진리를 위해 운명을 걸었다.



진리는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어쩌면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모든 진리가 세속적인 것들과 섞여버린(타협된) 상황에서 우리는 진리를 높이는 말씀에 충실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랑이 결여된다면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것이다.



2.가진 진리는 객관적으로 증명되어져야만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어진 것이어야 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4:8)



결국 우리들의 신앙과 교회 속에서 진리와 사랑은 둘 다 충족되어져야만 할 믿음의 과제다.



이것은 인위적인 인간의 노력보다도 진리 자체의 보호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의탁으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