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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눅 8:22~25 2001-03-11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공관 복음에 모두 기록되고 있고(마8:23~27; 막4:35~41)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가운데 갈릴리를 건너다 풍랑을 만나고 그 풍랑 중에 물위로 제자들을 찾아오시는(요6:16~21) 것으로 약간 다르게 기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동일 한 것은 주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셨다는 내용이다.



인생은 누구나 예외 없이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다. 반드시 건너가야 하는 운명에 있다. 이쪽 편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저쪽을 가야할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풍랑 없이 건너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쉬지 않는 풍랑 속에 눈물을 흘리며 계속 힘겹게 노를 저어야 하는 인생도 있다.



Ⅰ.하나님의 백성들도 풍랑을 만날 수 있다.(22~23)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1.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것은 주님을 나의 인생의 배에 모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께서 함께 하셔도 풍랑은 일어난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항해가 있고, 주님이 없는 외로운 인생 항해가 있다. 외로운 인생 항로에 절대자를 모신 것이야말로 대단한 행운이다. 노아의 가족들은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떠 있는 고독과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복된 항해가 가능했었다.



우리는 각자 여러 가지의 바다를 건너야 할 때가 많다. 이념의 바다, 가난의 폭풍, 질병의 풍랑, 허무의 태풍 그야말로 위험한 바다는 끝이 없고 위태롭기만 하다.



2.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명령하신다.



주님께서 내 인생을 다스리신다.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주님께서 하자 시면 어떤 위기를 만나도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고집부린 것은 해결이 어렵다.



3.주님의 명령에 수종을 했다.



"이에 떠나" 주님은 명령하셨고 제자들은 순순히 순종하고 있다. 그럼에도 풍랑은 일어 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주님 말씀대로 하면 어려움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속단한다. 그러나 주님 섬기고 순종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어려움을 만날 수 있음을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4.주님께서는 주무셨다.



하나님의 말씀에"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4) 하셨는데 육신으로 인간을 입으신 주님은 복음의 역사에 곤하여 쉬셨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때로는 주님께서 명령하시고 서는 우리에게 모든 걸 맡기신다. 전권을 위임해 주시는 것이다. 이 인류 구원의 귀중한 십자가의 복음도 모자라는 우리에게 맡기셨다. 얼마나 황송한가? 그러기 때문에 충성치 않으면 안 된다.



5.주님을 순종했음에도 풍랑이 왔고 위태한 데에까지 이르렀다.



"마침 ①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②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③위태한지라"



세상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피해가지 않는다. 우리는 곧잘 교회를 방주 즉, 배에 비유하곤 한다. 그런데 이 배(교회)에 물이 가득하게 될 수 있음을 본다. 상황적으로는 위태한 상황에까지 갈 수도 있음을 본다.



그러나 주님을 모신 인생이나 교회는 절대로 여기서 좌초되지 않는다.



Ⅱ.풍랑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움직인다.(24f)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 대"



"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8:25);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4:38b)



순풍 속에 사람들은 적극성이 없다. 그러나 풍랑으로 인하여 드디어 주님을 찾게 되고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다만 주님을 모신 것으로 만족하고 안일한 성도나 교회는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께 나아가고 "주여 주여"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은 어떤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 때로 우리가 안일한 신앙 속에 안주하려 할 때 주님은 작은 풍랑을 통해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무의미한 풍랑을 허락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 인생에 의미 없는 고난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풍랑과 위기를 겪으면서도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바울사도는 고후7:10~11"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근심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24b) 우리의 위기는 주님께서 꾸짖으셔야 확실히 해결이 난다.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8:26b)



그리스도인에게 위기는 있으되 절망은 없음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이 또 한번 확실히 증명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Ⅲ.너희들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마8:26m "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막4:40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왠 수선들이냐?"도 아니고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을 ①평상시에도 물으시지만 ②어려움 중에서, ③안일한 중에서 우리에게 언제나 물으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신앙의 사람들은 불신자들처럼 소동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벧전3:14"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사8:12b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에덴에서는 뱀의 말을 듣고 불신하기 시작했지만(하나님에 대하여)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회복시켜 주신 이 믿음의 신비한 힘을 제대로 가지고 있기만 하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믿음이 성령과 함께 역사 하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연을 움직이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이 세상을 움직이고, 우주를 움직이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우리 주위와 환경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위력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고 우리의 주위는 변화를 거듭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여러분들이 가진 믿음이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믿는가?



우리가 가족간에 갖는 서로의 믿음도 놀라운 화평과 평안을 만들어 내는데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긍휼과 용서와 공의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25b) 우리는 대게 그 사건만을 넘어 선 것으로 신기해하고 입을 벌리는데 그것은 당시의 제자들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들이 신기해야 할 일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어야 한다.



Ⅳ.결론.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信, 不信을 막론하고) 건너편(영원한 세계)을 가야 하는 운명에 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우리 각자의 인생 항해에 모신 것은 분명히 어디에 비길 수 없을 만큼 놀라운 행운이다. 믿는가?



인생의 항해를 하는 모든 사람들(信, 不信을 막론하고)에게 풍랑은 있을 수 있고, 주님을 배에 모셨다고 할지라도 풍랑은 만날 수 있다. 때로는 주님께서 그분의 일을 우리 자신들에게 맡겨두고 주무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주님께서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우리의 믿음을 챙기시는 때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에나 안일한 상태에 있을 때나 풍랑 중에서도 물으신다. 그러나 더욱 믿음을 가져야 하는 시기는 풍랑을 만난 때이다. 그리고 이 풍랑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움직이게 만든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7:11)



이 화창한 새 봄에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움을 틔우고 생명의 몸짓을 시작한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들 향하여 말씀하신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저렇게 살아있음을 나타낸다, 그 지난 北風과 寒雪을 지내고도 저렇게 생명을 움 틔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사경회를 통해서도 은혜를 받지 않았느냐?" 이 시간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신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여기에 기쁨으로 아멘 할 수 있는 나와 여러분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