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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껴안은 자' 즉, '포옹함'이라는 의미를 가진 선지자로 '구약의 도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유는 예수님 앞에서의 도마처럼 대부분의 그의 글을 의문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1:2~4)
1장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질문으로 채워져 있다. 계속되는 갈데아 사람들의 침공으로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이스라엘의 운명은 風前燈火와 같이 기강이 흔들리는 가운데 가진 자들의 횡포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려고 하는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하고 점점 절망스러워 가는 현실에서 포악하고 사악한 사람들이 활개치고 공의는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 같은 현실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는 내용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에서도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선언과 그 가운데 있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당부하고 있는 내용을 읽는다.
쓰여진 상황 즉 이스라엘의 역사의 종말이 다가오는 시대적 긴박성과 그 시대에 행해지고 있는 사회적 방탕의 모습들이 어쩌면 오늘의 역사와 비슷함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제시된 하박국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당부는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말씀이다.
실재로 이 구약 속의 신약 적인 메시지는 신약 성경 속에 인용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종교의 암흑시대라고 하는 중세에 루터나 환원 사상을 가졌던 사람들을 일깨우는 생명의 말씀으로 역사 하였음을 뒤돌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비록 불의가 선보다도 득세하는 것 같아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면서 역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에 결국에 가서는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명령을 버리지 않고 산 의인들은 반드시 응분의 위로와 상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하박국서는 찬송으로 마무리가 되어지고 있다.
Ⅰ.믿음은 혼란과 기준이 상실된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
오늘 제목을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그냥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면 되지 왜 "그러나"를 앞에 붙이고 있을까 여기에도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다 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에서 사는 시대에는 구태여 믿음은 필요치 않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이 없는 사회는 정의니 사랑이니 하는 기대를 갖는 것은 어렵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시작하는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는 말씀까지의 앞에 1장을 읽어보면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하나님 앞에 항변하는 내용을 듣게 된다.
뿐만 아니라 2장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 본문인 v5~8은 탐욕이, v9~11은 불의의 대가를 취하는 자를, v12~14은 피 흘림의 잔인함이, v15~17은 이웃의 치부를 드러내는 비열함을 v18~20은 이러한 죄를 일삼으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우상에게 비는 자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이 장차 당하게 될 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가 반드시 있을 것임을 선언한다.
그렇다. 믿음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은 평안과 정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그렇게 유용한 것 같지 않다. 믿음의 효력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나의 앞길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이 드리우고 있을 때 비로소 믿음은 생명이 되는 것이다.
424:1.나의 생명 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의 흘린 보혈로 정케 하사 받아주소서
2.괴론 세상 지날 때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주를 믿고 나가면 나의 길을 잃지 않겠네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으로 줄로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아멘
오늘 본문의 뒷부분이 모두 오늘의 물질에만 정신이 팔린 무자비한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를 묘사하고 있다. "(5)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 (6)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8)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에, 성읍에, 그 안의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이러한 상황에서 믿음은 더욱 귀한 것이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0:36~38)
죄악의 어두움이 관영 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고 광명은 가까이 있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당부한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1~14)
참으로 믿음의 촛불로 이 어두움의 시대를 잘 견디는 것 하나님께서 신앙의 사람들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시련과 고통이 있는가? 바로 여러분들의 믿음이 가치를 발할 때임을 명심하자.
Ⅱ.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위력은 대단하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요 이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교될 것이 없는 귀한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내 자신이 이 믿음을 가졌다는 감격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자들임을 망각치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부풀리기를 좋아한다. 부풀리는 것은 실재로는 작다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대교(大橋)" 한강에는 잠수교 외에는 이 이름이 안 부쳐진 다리가 없고 영도 사이의 다리만 해도 그렇다. 더 심각한 것은 신앙에 와서도 부풀리기를 좋아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심령 대 부흥회", "춘계 대 심방", "~ 대 성회"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은 부풀릴 필요가 전혀 없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5:19]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45)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19:17)
우리는 늘 큰 것에만 눈을 돌리는데 하나님은 언제나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믿음을 적용하기를 바라신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것도 부풀리거나 과대 포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있는 그대로가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서 중요하다. 그래서 이것을 진실이라고 한다.
1.믿음은 어떤 절망도 뚫고 가지 못할 것이 없다.
히11:29"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홍해가 육지 같이 열리게 되는 것이 믿음의 힘이라면 어떤 난관도 믿음 앞에서는 맥을 못 출 것이다.
2.믿음 앞에 무너지지 않을 장벽은 없다.
(30)"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시간이 걸릴 뿐이지(왜 칠 일 동안일까?) 어떤 담도 믿음 앞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 없다. 엡2:14~16"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닫혀 있는 인간의 마음도 예외는 아니다.
3.어떤 죄인도 구원치 못할 믿음은 없다.
(31)"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32)
①믿음에는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있다. ②죄악을 이기는 위력이 있다. ③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있다. 왜 이러한 놀라운 위력이 있을까?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그렇지 못할 것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우리사이의 장벽이었던 죄의 담을 허신 주님의 보혈이다. [찬송가 202]
1.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2.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후렴)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이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졌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Ⅲ.결론.
우리는 하박국 시대와 같이 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탐욕과 죄악의 관영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함께 또 하나의 마지막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불안과 절망의 시대에도 이것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생명의 능력인 복음 즉 십자가의 희생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라면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이럴 때일수록 믿음만큼이나 요긴 한 것도 없다. 오늘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믿음은 이 절망의 시대를 뚫고 갈 수 있는 능력과 우리 앞의 어떤 장애물도 무너뜨리는 놀라운 위력을 가졌다. 힘겹고 어려울수록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사는 순종만이 우리를 승리케 할 확실한 약속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이 믿음을 가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라는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확신에 찬 고백이 여러분 각자의 고백으로 충만하기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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