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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골 3:5~11 2001-04-08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이 골로새서 3장은 그리스도인들의 전반적인 삶의 실천적인 원리를 제공하는 귀중한 교훈이다. v1~4에서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가르치고 본문부터는 또한 그러한 신앙의 원리로 세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수평적인 신앙 생활을 지적하고 있다.



Ⅰ.우리 우상숭배를 피해야 한다.(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나는 적어도 우상숭배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때로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만을 위하고 또 우리 육신을 위할 때 그것은 정욕적이요 마귀적이요 우상숭배일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언하신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리의 자식이 잘되기를 바래서 하나님을 위하는 것 보다 먼저 라면 우상숭배일 수 있다.



바른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생각하게 되지만 범죄한 인간의 특성은 언제나 자기 중심이 되어가고 그러한 것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자기 정욕적이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상숭배를 하게 된다. 성경 속에서나 성경 바깥에서도 우상숭배는 언제나 음란한 것이 특징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음란함을 보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위하는 우상 숭배하고는 다르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그 사랑과 은혜에 응답하는 행위가 믿음생활인 것이다. 그러나 우상 숭배는 언제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신을 위한 요행과 쾌락을 목표로 한다. 그런 까닭에 우상 숭배는 언제나 음란과 관련이 있다.



결국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고 육적인 사람이 되어 가면 이러한 세산 중심의 삶을 살게 되고 영적인 부분에 등한해 지기 때문에 바울사도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죽은 존재들이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3) 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소신 있게 살지 않으면 모든 사악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노릇 할 수밖에 없다. 한번 사회적인 고리에 묶여 버리면 더 이상 바라지 않아도 그 고리를 벗어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과외공부를 시키는 이유를 들어보면 그렇다). 오늘날 그런 일들이 우리의 주위에 너무 흔하다. 일찍 자고 싶어도 사회 전체의 전체적인 싸이클에 물려서 돌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대로 되질 않는다.



믿음이 약한 신앙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것은 모든 돌아가는 환경이 우리의 삶을 肉身的으로만 긴장하게 만들어 영적인 긴장을 해제시켜버린다. 세상에 과제에 쫓기다 보면 언제나 영적인 일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해야지, 해야지" 해도 되질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엿새를 온전히 나를 위해서 다 쓰고 주일 하루도 주님께 드리지 못한다면 그것도 자신을 위해 욕심을 부리는 것이므로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육신적인 긴장이란 약육강식의 원리에 의해서 지배되는 밀림에서 흔한 일이다. 동물들은 언제나 자신보다 강한 동물을 의식하며 두려워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오늘의 사회가 모두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오늘 우리의 사회는 어린아이들에서부터 친구라는 동생관계 즉, 함께 사는 관계는 사라지고 오로지 경쟁관계로만 되어가고 그런 경쟁에 능숙한 사람으로 사람을 키워가고 있다. 인간관계는 더 이상 찾기 힘들고 짐승과 같은 삶의 원리가 팽배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죄로 인해 죽을 인생을 위하여 주님은 짐승의 우리간의 말(馬) 밥그릇에 오셨는데 그 희생의 피를 힘입어 산다고 하는 우리들조차도 별반 다르지 않다.



439:2"죄에 매여 죽을 인생 편히 쉬기 바라니 주의 가슴 넓은 품에 내가 찾아 안기네, 만세 반석 열린 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주소서" 아멘



그러나 우리가 경성 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선언되는 심판이 있다.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다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못하고 우리의 정욕대로 행한다면 영광을 기대하다가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의 본성을 극복해야만 한다. "누가 그걸 몰라요? 그런데 그게 쉽질 않으니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는 고민한다.



이를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는 기억하고 우리의 의지로는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삶을 우리는 단호하게 벗어 버려야 산다.



Ⅱ.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는 사람임을 기억해야 한다.(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원리 즉 십자가의 도가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처럼 하잘 것 없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 바울사도께서는 여러분 각자를 향하여 선언 하고 있다. 여러분 각자를 그리스도안에서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 [지식 (epignosis) epi ~에, ~에 대한, ~에 관하여 + ginosko 알다, 알게 되다, 인식하다] '인식, 완전식별, 인정, 승인'으로 지식은 곧 가치다. 이 말씀은 같은 성경 1:9 쓰이고 있는데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우리는 가치관이 바뀐 사람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7~8)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 우리의 죄로 이한 저주받은 삶의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서 주님께서 피를 흘리셨다. 그 은혜로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고 운명이 바뀌었으며 가치관이 바뀐 것이다.



우리의 예전의 삶은 생각만 해도 섬짓하고 지긋 지긋한 두려움과 저주의 삶으로서 세상의 무든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비극적인 운명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2:3~5)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0)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3)



202:2"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때문에 이제는 세상이 죄로 추할수록 십자가의 대속은 아름답고 세상이 죄로 어두울수록 십자가에 예수님의 희생은 더욱 빛난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남을 능력임을 기억하자. 우리가 믿음 안에서 가진 소망만이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영원하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는 지식을 키워가야 한다.



Ⅲ.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삶의 영역은 적용범위의 한계가 없다.(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을 쉽게 풀어서 말한다면 '인종과 종교와 관습과 지위와 문화'를 초월해서 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로운 지식 즉, 믿음을 따라 산다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삶의 범위 속에서 적용 가능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 어느 나라, 어떤 종교 속에서도 우리의 지식 즉,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의 자세는 바뀔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17:31b)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앙의 사람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의식하는 삶은 변함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Ⅳ.결어.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동물적인 가치에 매어 옆의 사람을 두려워하고 또는 넘어뜨리려는 동물적인 근성이 아니라 지식까지도 새롭게 된 피조물들로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기중심적인 우상숭배를 버리고, 십자가에 나를 위하여 피 흘리신 주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고 그것이 모든 행동의 이유가 되어야만 한다. 우리 삶의 순간 순간의 모든 삶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채워지는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