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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18~25 2001-04-15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사람들은 고난의 과정이 없는 영광을 사모한다. 이것이 바로 죄성(罪性)에서 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꾸고 꿈만 잘 꿔도 복권 사기에 바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기적의 방법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으셨다. 계획과 실행자체가 수 천년이 소모되고 우리와 꼭 같은 어린아이로 이 땅에 나게 하신 메시아는 모든 보통 사람들의 성장 과정을 다 거쳐서 구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6~9)



Ⅰ.죄인 된 우리를 살리는 도(道)는 죽음의 도이다.



부활과 승리는 오늘 우리의 육신 속에서 찾을 과제가 아니라 어쩌면 믿음으로 잘 죽은 사람들이 나중에 누릴 영광이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죽는 것을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복음은 죄인 된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이를 위해서 먼저 주님께서 죽으셨다.



(23~24)"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우리 매주 주님의 승리하신 날 주님을 예배한다. 그러나 그 예배의 중심은 바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희생의 주님을 감격하는 것이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바울사도가 고백하는"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것은 실재적인 것이다. 내가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실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내가 죽은 만큼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사신다. 내가 50%만 죽었으면 주님은 50만 나를 지배하시고, 내가 100% 주었으면 바울처럼 나를 100%로 지배하시는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오늘 내가 주님 앞에 죽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힘도 지식도 능력도 모두 죽여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킬 때 주님께서 영적으로 거듭 난 나의 힘도 지식도 능력도 새롭게 사용하시는 것이다.



모두가 전해야 할 복음은 바로 십자가뿐이다.



내가 죽으면 죽을수록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과 은혜는 더욱 강하게 역사 하신다.



사랑이란 나를 죽이는 것이고, 미움이란 상대를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미움은 곧 살인이라고 말씀하신다.



역사는 언제나 강자에 의해서만 지배되어 오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꺼이 죽는 자들에 의해서 변천되고 그들의 이름이 남는다. 솔로몬은 다윗으로부터 왕위를 계승받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 됐지만 그저 죽은 듯이 기다리고 있고, 아도니야는 이런 기미가 있기 때문에 늙은 왕에게 알리지도 않고 대관식행사를 준비하고 치르지만 결국 솔로몬이 그 사건으로 인하여 왕위에 올려지고 아도니야는 제거되는 것을 본다.(이일이 아니었으면 다윗의 상태로 봐서는 솔로몬을 왕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이 사건이 계기가 된다.)



주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4~3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



표면적인 역사와 얼마나 다른가? 역사는 강자에 의해서 기록되지만 왜곡된 것은 밝히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진정한 강자요 역사를 기록할 자격이 있으시다.



Ⅱ.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판단을 허용치 않으셨다.(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25)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피조물 된 인간이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마귀는 언제나 십자가를 왜곡시킨다. 어리석은 종교라거나 예수님께서 실재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거나 모두가 마귀가 간악한 인간들을 동원하여 복음을 왜곡시키는 말들이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19~20)



단순한 순종만이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을 나의 것으로 가져온다.



인간의 간악한 지혜는 하나님의 구원을 외면케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잔머리 굴리는 것을 하나님은 허용치 않으신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하나님은 판단보다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셨다.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 바로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24) 라고 약속하고 계신다.



[나는 참 잘 잊어버린다. 공로도, 사랑도, 미움도, 어떤 사람들은 잘도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결코 잊으심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억되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총이 세상의 것과 같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세상에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도 모조리 차지한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며 하나님은 공평치 못하신 분이 되겠는가?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초청을 하시면 서도 먼저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11:25~26)



Ⅲ.그리고 오늘 내가 죽어야 할 차례다.



내가 죽을수록 주님이 더욱 강하게 나를 움직이신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0)



죽는 것은 육신적으로는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다.



세상의 원리와 반대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실재적으로 오늘의 理性的인 사회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육신으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죽음은 곧 희생이고 겸손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바울사도는 자신 있게 자신의 죽음을 자랑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매일의 죽음이 없이는 매일 새로운 삶도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Ⅳ.결론.



우리를 영원한 형벌과 죽음의 저주에서 구속하신 진리는 십자가의 도 곧, 죽음의 道이다. 설령 인간의 판단에는 어리석어 보일 수 있지만 사악한 죄인 된 인간의 방법과 다르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를 지불하시고 단번에 이루신 은혜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내가 계속 죽지 못하면 영광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평가도 판단도 외면하신다.



오직 우리 각자가 말씀을 따라 나를 죽이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에 것은 우리 각자의 것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오늘 나를 죽이지 못하면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



천국과 부활의 영광은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죽은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



우리가 세상에서는 어떤 입장과 위치에 있든지 하나님의 교회 속에서는 기꺼이 나를 말씀에 쳐서 복종시키고 잘 죽어서 미래에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죽은 자들을 위하여 마련된 영광이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각자의 것이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