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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엡 3:14~21 2001-04-22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은 이렇게 허약한 것이 아닐텐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처럼 연약할까? 성경 속에 교회만 봐도 그야 말로 능력이 철철 넘쳐흐르는데 오늘 우리는 사회나 세상 속에서 너무나 유약한 모습으로 겨우 자신의 믿음이나 유지하기에도 버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이 변한 것도 아니고 세월이 흘렀다고 하나님의 능력이 약해진 것도 분명히 아닐진대 왜 이럴까...? 갸우뚱거리게 됩니다. 가장 쉽고 흔한 우리의 변명은 "세상이 악해져서, 말세가 되어서..." 라는 궁색한 변명들을 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변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님이나 세월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은 성경 시대에도 어렵고 힘들 때 더 강한 능력을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성경 시대의 사람들에게만 특별 처방을 하신 것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핍박이 심할수록 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던 역사를 볼 때 오늘 우리는 有口無言이 될 수밖에 없다.



바울사도께서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능력 있는 신앙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주고 계신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라는 말씀은 영원히 현재적이고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요셉이나 다니엘과 함께 하시고, 초대교회 때 사도들과 함께 역사 하시던 그 하나님과 성령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가운데서 분명히 역사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Ⅰ.그리스도인들은 속 사람이 강한 사람들이다.(16)



"그 ①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②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③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이것은 세상과는 정 반대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외관을 꾸미는데 더 치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일 하기보다는 명예와 사람들의 평판에 더 신경을 쓰고 성령을 의지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힘과 지혜를 동원하는 이러한 나의 행위들이 하나님의 부여하신 능력을 우리의 삶의 밖으로 밀어내 버리는 엄청난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바울사도도 이러한 갈등을 말씀한 바 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롬7:22~23)



우리 속 사람을 힘있게 하는 출처를 분명히 "성령으로 말미암아" 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은 우리의 신앙의 일은 우리를 강하게 하는 요소들이 아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넘쳐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힘을 돋구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공동]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꾼들로 능력의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겉 사람을 치장하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속 사람을 굳세게 할 필요가 있다.



다음의 말씀들은 당연히 점진적인 결과들이다.



Ⅱ.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셔야 한다.(17)



"①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②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③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④터가 굳어져서[그리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 가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뿌리가 박힌 믿음이어야 한다.



요즘 많은 청소년들은 유명하다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다. 이들은 자나깨나 자신의 우상이 되어 있는 그 연예인과 팬클럽 생각뿐이다[1872. 보스턴의 요한 스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 왈츠]. 왜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는 그렇지 못할까? 그 유명 연예인의 자리에는 사실 주님께서 계셔야 하는데 말이다.



속 사람이 강할 수 있는,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는 우리의 기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 것이 가능한가?' 라고 말하게 되는데 그것을 위한 삶의 비결이 바로 이 구절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셔서 우리의 움직임을 명령하셔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신앙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추진해야 한다. 우리의 합리적인 생각이나 지식도 경험까지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용 되야 하고 그 믿음은 내 마음의 중심에 나를 위해 피 흘리시고 능력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확신이다.



그러한 삶의 모습이 점점 자리를 잡아갈 때 우리의 의지보다는 주님의 뜻이 우리 각자의 삶에 굳게 서게 될 것이다.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이것은 적어도 주님을 모신 확신과 경험 속에서 형제 자매와의 관계 속에서 터득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즉 '경험'과 '말씀' 그리고 '교제'를 통해서 확인되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사랑이다.



이러한 믿음의 경험은 다음의 우리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되게 될 것이다.



Ⅲ.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해야 한다.(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는 여기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여러 가지 다른 것들로 비유하지만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전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함이 옳을 것이다. 공동번역은 이 말씀을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라고 번역하고 있어서 더욱 분명하다.



깨달은 만큼 충만할 수 있고 이것은 우리 삶의 전 영역을 고루 다스리고 깨닫게 할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보이는 외면적인 부분이든지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모습이든지 인생의 순간이든지 전체이든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랄프 턴불의 "하나뿐인 교회"-양로원 신경통의 할머니]



Ⅳ.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구하는 것들을 받아 누리게 된다.(20)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위의 모든 신앙적 모습들이 이루어 질 때 우리의 기도는 참으로 위력을 나타낼 것을 말씀하고 있다."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말한 것은 마치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 하신 말씀과 같은 내용으로 이해되어 진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그러나 반대로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3)는 말씀과는 당연히 반대되는 의미이다. 주님께서 철저하게 우리의 삶을 주장하시는 가운데서 드리는 기도와 우리의 생각과 의지, 그리고 욕심에 따른 기도는 마치 천국과 지옥의 차이만큼이나 다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때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이시다.



Ⅴ.우리의 영원 무궁한 영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대대로 있다.(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하나님께서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이 말씀은 반대로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영광도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것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순결과 아름다움과 위엄이 존재하는 곳이다. 교회가 교회 될 때 그곳에서 함께 누리는 영광이 하늘의 영원한 세계와 연결 될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Ⅵ.결론.



우리는 겉을 꾸미는 사람들이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우리 각자의 삶의 왕좌에 모시고 그 힘이 우리 모든 삶의 영역에 미치고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채우실 주님과 더불어 교회 속에서의 영광이 영원에까지 지속될 수 있는 하나님의 허락하신 능력을 충만히 누리는 나와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