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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다. 바로 주님의 십자가에서 나온다.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음을 감격하고 그 사랑 받음으로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할 각오를 늘 새롭게 하는 것이다.
교회의 별명은 사랑의 공동체이고 적어도 교회 안에 모인 사람들은 다 이 사랑 받은 엄청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사랑하기 위해 거듭난 사람들'이다.
사실 베드로 사도만큼이나 덤벙대고 실수가 많은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와 실수를 경험하면서 말년에 삶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함께 후배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말씀 같은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사용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사랑 밖에 없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미움이 팽배하게 된다고 주님께서도 예언하신 바 있다. 주님께서 말세를 예언하시면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 하셨는데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v13)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미움 속에서 사랑을 잃지 안는 것이 곧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는가?
사랑이 식어지는 이유는 개인 중심의 사회가 되어 가기 때문이다. 말은 지구촌이니 글로벌이니 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나 자신을 세우는 시대가 바로 마지막 시대이다.
Ⅰ.사랑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다.(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기도라는 것은 ①삶의 모든 상황을 주님께 맡긴다는 의미를 가진다. 원수에 대한 처리까지도 바울사도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우리가 원수를 대항하면 원한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까지 악해져서 마귀의 도구가 되어 버릴 위험성을 아신 주님은 그 원수마저도 주님께 직접 맡기라고 당부하시는 것이다.
원수까지도 주님께 맡기고 사랑하는 일만 하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②기도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가 죄인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존재들이었지만 십자가에서 친히 피를 흘리심으로 원수 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해 주신 사실을 환기한다면 절대로 미움의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환기하는 것이다. 원수 된 나를 사랑하셔서 피를 흘리시는 자기 희생을 의식한다면 이 땅에 사랑 못할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③기도란 주님을 찾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랑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다. 스스로 해보다 해보다 안되면 주님을 찾아 맡기는 것이다. "나는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조금 뒤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하셨는데 여기에는 내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조차도 맡기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Ⅱ.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신다.(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1.무엇보다도(모든 것보다도 앞서서)이다.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를 사용하지 못하고 만다. 우리는 사랑보다는 미워하는데 열심이고 질투하는데 열심이고 경쟁하는데 열심이고 교만에 열심이다. 이모든 것들보다 사랑을 열심히 해보려고 시도해 보는가? 우리는 사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먼저 미워하는 방법을 먼저 써 버린다. 우리가 가진 어떤 것들을 시행해 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사랑이라는 능력의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2."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의 불을 붙여야 한다. ⓐ열심으로[ejktenhv"(ektenes) 쉬지 않고, 열렬히] ⓑ서로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 것처럼(요3:16) 오늘도 희생의 십자가위에서 강권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강권을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5:14)
이것은 우리의 모든 순간에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놀라운 은혜요 불변하는 긍휼이다. 베드로 사도는 조금 앞에서 부탁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1:22)
3.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because love covers a multitude of sins-NAS] 서로 연관되어 있는 모든 죄를 분쇄시켜 버린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가 이 놀라운 능력을 사장시키며 살고 있다는 비극이다.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장)
Ⅲ.원망이란 원수를 쫓아내야 한다.(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바울은 사랑의 헌장이라고 아는 고전13:3에서 이미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선언한바 있다. 가장 억지로 하기 어려운 것이 남을 대접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이 땅위에서 '人間'이라는 과제 앞에 어떤 모양이든지 나아닌 사람들을 대해야 하고 때로는 인간이기 때문에 원치 않는 대접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코이노니아'라는 천상의 교제를 이 땅에서 나누는 사람들이다. 바울사도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4)고 당부하는데 그 이유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사랑의 강권이 아니라면 해도 본인에게는 의미가 없다. 히브리서 기자는 교회가 신앙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지도자에게조차도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하게 해야 한다는 경계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원망을 한다면 대단히 불행한 사람이다. 이것은 마귀의 특성이지 하나님의 특성이 아니다. 시편기자는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37:8)
무엇을 하든지 신앙 안에서 불평을 가지고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기쁨과 감사로 일하면 성령께서 기뻐하시고, 불평과 원망을 가득 가지고 일하면 마귀, 사탄이 박수를 친다. 마귀는 일을 못하게 하기보다도 그 일을 하면서 불평이 자라게 한다.
미움의 다른 표현이 바로 불평과 원망이고 이것은 당연히 사랑의 반대적인 개념이다.
Ⅳ.사랑을 바탕 한 은사야말로 은혜가 된다.(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사랑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가장 귀중한 바탕이기도 하다. 은사가 사랑 없이 행해질 때 거기에는 혼란과 투쟁이 생기게 되어 있다. 은사가 가장 흔한 고린도 교회가 왜 가장 혼란했는가 하면 바로 사랑이 부족한 까닭에 은사를 가지고 까지 높낮음을 다투는 유치한 교회였기 때문에 바울사도는 이 교회에 사랑의 귀중성을 선언했던 것이다.
사랑의 사람은 받은 선물에 감격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받은 선물을 가지고도 다투고 싸우는 것을 어린아이들 속에서 쉽게 배우게 된다. "남이 쥔 사과가 크게 보인다" 라는 세속적 표현은 세상의 논리에서만 그렇다고 이해한다.
"은혜"는 사랑 때문에 생기는 말이다. 미움에는 뇌물이 있을 뿐이지 선물이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든지 그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에 특히 은사나 은혜는 사랑의 이유이다. 선한 청지기는 감격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내가 이만한 일을 할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이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죄진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중한가! [378:3천하고 무능한 나에게도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다 그 은혜 고맙고 고마와라 이 생명 바쳐서 충성하리]
Ⅴ.결론.(11)
이 말씀은 그대로 오늘 우리들의 과제의 결론이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내가 오늘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렇게 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주님의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사랑 때문입니다' 이런 자세로 살고 일하고 먹고 마실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바울사도는 로마서를 마무리하는 부분에 와서 대단히 중요한 신앙적 선언을 준다."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3) 이 말씀은 다른 말로 바꾸어 '사랑으로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신앙적 의미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에 대한 우리 각자의 사랑의 응답이고 그러한 사랑에 감격하여 살고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각자의 섬김이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우리의 삶의 모든 상황을 주님께 맡기고, 어떤 입장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며, 모든 것보다도 앞서서 사랑을 사용하되 쉬지 않고 열렬히 사랑할 때 서로의 모든 허물과 죄는 소멸되고, 어떤 상황에든지 개입하려고 하는 원망을 쫓아내고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섬기고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될 때 우리의 교회는 하나님의 허락하신 능력으로 강건해지고 생명이 충성해 질 것이다. 믿으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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