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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17:1~8 2001-05-13
일어나라!  
성경의 많은 역사들이 산 위에서 이루어 졌다. 대략 그 역사들을 보면 최초의 인류의 시작부터가 에덴동산에서였고 구원의 방주는 홍수가 끝나고 아라랏 산에 머물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모세는 비스가 산상에서 일생을 마무리하고,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거짓 신 바알 제사장들과의 싸움에서이기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절망을 회복하고 그의 사역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일생에도 산과 연결된 이야기들은 너무나 흔하다. 늘 기도하시는 겟세마네와 감람산은 기도의 동산이었고 가장 귀중한 교훈도 산상에서 가르쳐졌고 오병이어의 기적의 음식도 벳세다의 언덕 위에서 베풀어졌었다.



오늘 우리도 이 조그마한 동산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고 이 제자들과 같은 신비롭고 은혜로운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어떤 산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높은 산위에서 있어진 사건이다. 이 사건이 공관 복음에는 다 기록이 되고 있고 서로 보충적인 부분들이 더러 있다(막9:2~8; 눅9:28~36). 그러나 요한은 이 사건을 침묵하고 있고 베드로 사도는 말년에 그의 서신에서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이 영광스러운 경험을 회고한다.(벧후1:17~18)



이 사건이 베드로 사도의 주관적인 경험이라는 이유가 요한복음에 기록하지 않은 이유라고 보는 주경 학자들도 없지 않다. 누가복음에서는 기도하러 가셨다가 있었던 사건임을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눅9:28)



그리고 세 복음서가 다 제자들의 상태를 조금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6~8)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막9:6)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눅9:32) 때문에 이 사건이 기도하러 산에 갔다가 경험되어진 신비의 체험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는 것 같다.



이런 내용을 볼 때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 졸며 잤던 상태[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와 같지 안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마26:43; 막14:37~40; 눅22:45~46) 물론 그 상황에서도 여기에 나타난 세 사람 그대로였다. 주님은 중요한 사건들에 늘 이 세 사람을 동행케 하셨다(26:37; 막5:37, 13:3; 눅8:51 등등).



우리는 오늘의 본문 내용을 중심해서 언제나 특권을 누렸던 세 사람의 독선을 볼 수 있고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욕심을 경계해야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함이 좋을 것이다.



기도의 동산, 은혜의 동산은 오늘도 여전히 영적인 체험의 장소일 수 있지만 경계되어져야 하는 것은 그러한 신비한 체험에 대한 사리사욕이다.



Ⅰ.은혜를 체험하고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 기도의 동산에는 올라야 한다.(1~3)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앞에서도 예를 든바 있지만 예수께서는 늘 밤을 새워 기도하셨고 때로는 거기에 제자들을 대리고 가시기도 했다. 이 변화 산의 사건도 밤이라고 주장하는 성경학자들이 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눅9:37) 라는 내용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죄로 어둔 밤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성경에서 밤은 쉼의 시간이지만 기도의 시간임을 주님께서는 늘 모범으로 보여 주셨다. 우리의 영적인 힘이 고갈되지 않도록 새로운 은혜의 체험을 주님과 더불어 할 필요가 있고, 날마다 우리의 삶의 감정 속에서 약화되어지고 작아지는 우리의 주님의 영광을 변화된 모습으로 뵙기 위하여 기도로 회복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우리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Ⅱ.은혜로운 체험은 자신의 것으로만 차지하려는 독선은 경계되어야만 한다.(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성미 급한 베드로의 성격은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신비한 체험으로 율법의 사건을 만나고 선지자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개인 속에서도 감격이요 능력이지만, 대부분의 신앙의 사람들은 그 체험의 현장에 자리를 피려 하고, 평생을 그곳에만 머물기를 원한다. 힘겹고 고통받는 영혼들이야 어떠하든 나는 신비한 경험 속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은 독선이며 복음에 역행하는 자세이다. 중요한 것은 작은 체험을 가지고도 주님의 선하신 의지를 따라 살며 상한 심령들에게 내가 받은 은혜를 가지고 치료하고 위로하는 역할이야말로 영적 신비를 체험한 사람들의 다음 단계라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담대히 말하기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3:8)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1:29)



오늘도 내가 경험하는 믿음의 체험이 있다면 그것은 고난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나눠져야만 한다. 나 혼자만이 우리 교회만이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는 독선은 여전히 치료받아야할 영적 질병이며 육신만을 가지고 신앙하려는 무지의 소치이다.



Ⅲ.무엇보다도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은혜가 있다고 하면서 복음에서 벗어나는 것은 은혜일 수 없다. 오직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율법도 예언서도 주님을 순종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신비 체험을 했다하면 건전한 신앙에서 이탈되는 이유는 건전치 못한 체험으로 인한 것이다. 모세를 만나도 엘리야를 만나도 그들을 통해서 이끌림을 받아야 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누가 복음에서는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눅9:31)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어떤 신비한 체험에서든지 가려 들어야 하는 것은 역사의 주인이시오 구속의 희생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갖는 바른 체험은 언제나 십자가의 희생 앞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세우고 나 또한 그러한 희생을 결단하도록 나아가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자신의 희생의 피를 가슴에 품고 범죄 하여 병든 영혼들을 향해서 갈 것을 명하신다.



Ⅳ.받은 은혜와 능력은 산 아래의 고통받는 이들과 나눠져야 한다.(6~8)→9~13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하늘의 신비한 체험은 자신들의 아집과 독선으로 가는 까닭에 두려움으로 결과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신비를 본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러한 신비를 주셨음에도 열매맺지 못했다는 두려움, 이것이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나 자신 혼자서 은혜를 즐기려고 하는 죄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의 주님의 사랑을 본다. 꾸짖으시기보다는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또 다시 격려하고 위로하시면서 제자들을 재촉하신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세상을 도외시 한 체로 혼자만 감격하여 환상에 젖어 있는 나를 향하여 말씀하신다. "일어나라! 저 산 아래의 고통받는 영혼들을 너 받은 은혜를 통해서 치료하고 회복하도록 내려가자" 고 권면 하신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요14:31)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은혜의 사람들이기를 주님의 복되신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