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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엡 2:20~22 2001-05-27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경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17:26)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인류가 분명히 한 가족임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범죄 후 바벨에서부터 애시당초 깨어지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의 12 지파의 규합은 하나님의 신탁이 무너지면서(솔로몬 이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으로 나라가 양분되면서) 금이 가 버렸다. 수많은 역사 속에서 부족국가들이 자신들의 가족집단을 지키려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각나지고 있는 역사를 보는 것이다.



같은 이해 집단들의 통일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민족은 점점 간격을 더욱 넓혀가고 있고 이러한 흩어짐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대 가족적인 민족집단의 분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인류의 많은 가정 소수 집단들조차도 핵분열을 계속해 가는 것을 본다. 사실 우리 나라만 해도 최근에는 더욱 급속히 진행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의지는 인류가 하나되는 것을 원하셨지만, 인간의 죄는 오히려 뭉치려 하면 할수록 부서지는 아이러니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범죄 한 인간의 의지로는 아무리 지구촌 한가족을 부르짖어도 예민한 부분에서는 언제나 흩어질 수밖에 없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미리 아셨던 하나님은 인류가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을 이 인류를 만드시기 전부터 예정하시고 계획하셔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아래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마련하셨고 이것이 바로 교회라고 하는 거대한 하나님의 계획이셨다.



인류가 격의 없이 화해하고 서로의 무장을 해제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복된 화해의 무형적인 지붕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b)



우리는 가정 중에서도 보다 중요하고 더욱 신경을 써야할 우리 모두의 가정인 교회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이 가정의 달을 마무리했으면 한다.



Ⅰ.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바탕을 유지해야만 한다.(20f)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여기에 선지자들이 나타나지만 구약의 선지자를 이르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사도들이 먼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완성된 복음의 말씀이어야 한다. 주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마9:17) 말씀하셨다.



구약성경은 설계도면이라면 실재적인 바탕은 오순절을 통해서 오신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범위를 넘어가서는 하나님의 새 가정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새로운 가정의 바탕은 성경이 절대적인 법이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논리를 잠재워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그럴싸하고 합리적인 바탕일지라도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속에는 유용한 바탕이 되지 못한다.



Ⅱ.이 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돌이다.(20b)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1.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로의 만남의 장소이고 협력하는 장소이고 맞물림의 장소이다. 마치 옛날 건축물에서 모퉁이(주춧돌) 돌 위에서 기둥이 놓여지고 용마루와 석가래가 맞물리 듯한 원리다. 교회의 모든 행동원리는 십자가의 구속이 으뜸으로 받들어져야 하고 그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과 섬김이 시작되어야 한다. 십자가가 이유요 방법이요 목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를 구성해야 하고 이것에 바탕 한 섬김이 행해져야 한다.



2.예수님이 가장 귀히 여기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 속에서 모든 권위와 영광은 주님께만 돌려져야 하고 어떤 입장에서도 주님이 존귀함을 받으셔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이 주님보다 더 존귀해지려고 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요 판단의 유일한 근거이시다.



Ⅲ.서로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범죄 이후의 인간은 완벽을 기대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개인에서도 그렇고 관계에서도 그렇다. 남녀의 관계인 부부관계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친구의 우정, 노사의 관계가 다 마찬가지다. 부족한 인간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약점을 보완하는 관계가 바로 인간 관계이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 각자가 성전이라고 바울은 말한다.(고전3:16, 6:19) 이 작은 성전들이 모여서 교회와 우주적인 교회를 완성해 가는 신비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네가 없는 혼자의 존재에는 그 즉, 하나님도 없다. 사회적인 관계에서 그렇거니와 교회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 인간의 어떤 이성적 방법으로 사람들을 묶어둔다고 해도 그러한 결속은 마침내 해체되고 말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이든,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든지 사람들을 영속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모토는 이 지구상에 존재치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만 완벽한 결속을 영원까지 이끌어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하나님의 가정에 입양된 존재들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이라거나 의무에 의해서 입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입양된 존재들 즉, 거듭남이라는 유일의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가정에 입양이 되었다.



입양된 아이가 들어간 가정이 진정으로 이질감이 없이 자신의 부모와 가족이라고 느껴질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속에서 이와 같아야 한다.



교회 속에서 우리는 분명 너로 인하여 내가 있고 나로 인하여 네가 있는 귀중한 서로의 관계를 잊어서는 안된다.



Ⅳ.이 집은 주님 오실 때까지 미완성의 상태이다.(21b, 22b)



"되어 가고;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진행형으로 지어져 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의 나팔이 불 때까지는 계속 미완성이라는 말이다.



1.완벽하지 못하다.



우리는 때로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교회에 있는가?',라거나 '왜 하나님께서 저런 사람을 그대로 놔 두실까?' 라는 회의를 가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서 완벽하기는 하지만 지상의 교회는 불안전한 인간들로 구성되고 그들이 점점 신앙적으로 성장하는 갓 결혼한 미숙한 가정이요, 아직 코 흘리게 들이 함께 자라는 것과 같이 때로는 유치하고 서투르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 속에서 완벽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러한 모든 유약한 모습들은 주님께서 임하시고 완성된 새 예루살렘 속에서는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용납하라!'는 표현은 교회 속에서 서로의 관계 속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4:2)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주님과 교회는 된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질 사람을 기대하며 용납하시고 받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그러므로 교회는 용서의 장이 되어야 한다.



2.계속 자라야 한다.



교회 속에 즉, 그리스도안에 들어 왔다고 하는 거듭남은 새로운 생명의 출발에 불과한 것이다. 이 새 생명은 교회 속에서 新天新地 완성의 날까지 계속해서 자라 가는 것이다. 때로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훈련해 가는 장소가 교회이다. 이러한 성장은 역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3:13)



이 지상의 교회 속에서 성장할 필요가 없을 만큼 완벽한 사람은 존재치 못하다. 바울사도조차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고 고백함을 듣는다.



그래서 성장에 요구되는 것은 격려와 위로이다.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8)



3.부단히 움직여야 한다.



교회는 바탕과 기초석은 그대로이지만 정지되어 있는 건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이는 동적인 것이다. 그래서 외양적인 모양은 늘 바뀔 수 있다. 어느 때는 회개의 눈물로 요란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감격과 승리의 기쁨이 충만하고, 또 어느 때는 죄와 더불어 전투할 수도 있고, 또 어느 때는 죄인을 초청하는 전도집회를 하는 것이 교회요, 사실 이 모든 것들이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것이 교회다.



움직임의 또 다른 역사는 생산이다. 교회는 새로운 생명을 계속 잉태하고 새로운 가정을 잉태시키는 재생산의 역사도 주님의 날까지 지속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의 교회는 화해의 장이다.



Ⅴ.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는 인류의 마지막 깨어질 수 없는 가정이다. 이것이 의도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를 유지해야하고,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가 모든 관계의 연결점이어야 하고, 이 집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지어져 가는 것으로 미성숙의 존재들이기 때문에 용서가 있어야 하고 서로 성장해야 하는 이유에서 격려가 필요하며 쉼 없이 움직이는 생산과 화해를 장이 되어야 한다.



이 교회의 구성원이라고 하는 것은 견고한 예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서로를 붙들어 줘야만 한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구원받은 사람만이 교회에 더해지는 것이다. 오락하는 사람은 아무리 늘려도 의미가 없다. 거듭나고 교회에 더해진 사람만이 주님의 이 집에 비로소 자녀 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