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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오늘 본문으로 읽은 이 본문은 바울사도께서 말년에 로마 감옥 속에서 빌립보 교우들에게 써 보낸 서신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 같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아직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는 고백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어떤 사람은 바울의 겸손이라고 이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좇아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목숨마저 바친 상태에서 무엇이 모자라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서두르는 걸까...? 오늘날 우리는 쉽게 "이만하면, 이 정도면..."이라는 만족감에 빠질 수 있는 것과는 대단히 대조적이다. 이것은 우리 모든 신앙인들에게 주시는 삶의 경계의 교훈으로 볼 수밖에 없다.
Ⅰ.무사안일의 경계.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 속에서 주님을 따르면서 발생될 수 있는 고난과 어려움, 그리고 불이익들을 주님을 적극적으로 따르면 따를수록 더 자주 만나게 되고 또 그러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주님께 매달리게 된다. 이것은 신앙의 열심과 반비례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평생을 문제들과 더불어 싸웠고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전도 없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려움도 적지만 상대적으로 감사와 기쁨도 없다.
또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경우에 계속되는 이러한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소극인 신앙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무사안일에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경우들을 많이 보곤 한다.
마치 다시스로 꽁무니를 빼는 요나처럼 기회만 있으면 피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삶에는 기쁨도 성취감도 또한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우리들을 향하여 바울사도께서는 자신의 모범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 이것은 계속해서 신앙의 열심을 당부하는 권면이다.
Ⅱ.믿음의 푯대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 생명을 걸고 따를 진정한 지도자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하고 확실한 위대한 스승이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바울사도는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한다. 고전9:26"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한다" 고 말한바 있다. 열심히 달리는 것 못지 않게 분명한 목표를 향해서 달려야 한다. 어떤 고난과 위기와 혼미 속에서도 신앙의 목표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의 신앙의 목표가 바뀌어져 있는 것을 보곤 한다. 그리스도간 아닌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들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신랑감 고르기]
한 처녀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는데 세 명의 구혼자가 나타나 서로 앞다투어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여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처녀는 그들에게 달리기 경주를 하여 자기를 붙잡는 자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처녀는 경주를 하기 전에 자신의 주머니에 돈을 가득 넣었다. 그들이 모두 뛰기 시작했는데, 한 청년이 그 여자를 거의 따라오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돈을 한 움큼 쥐어 그가 오는 길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그 청년은 돈을 보고는 처녀를 쫓는 것을 잊어버리고 돈을 줍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처녀는 멀리 도망가버렸다. 두 번째 젊은이가 그녀를 가까이 좇을 때 마찬가지로 돈을 떨어뜨렸다. 역시 이 젊은이도 돈을 줍느라고 처녀를 그만 놓쳐 버렸다. 그들이 계속 달리는 동안에 세 번째 청년이 처녀에게 점점 가까이 따라갔다. 이때 처녀는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을 몽땅 뿌렸다 그러나 이 구혼자는 돈으로 인하여 처녀를 단념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가 무엇보다도 제일 바라는 상을 위하여 뛰어갔다.(교회사에서 골라낸, 1,882가지 신앙이야기, 기독교문사, 304)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향해서 달음질 하다가 부수적으로 떨어지는 물질적인 복이나, 명예나 영광에 눈이 팔려서 올바른 목표인 그리스도를 상실해 버리는 예가 많다.
바울사도는 그 푯대를 같은 옥중 서신인 골로새서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1~2)
열심을 다하되 분명한 목표를 향하여 좇아야 한다. 보다 구체적인 목표는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신 주님의 십자가다. 우리도 주님처럼 희생하는 경지에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12:4) 라고 주님의 푯대를 환기시킨다.
Ⅲ.장애들을 제거해야 한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13m)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모든 것들을 담대하게 물리쳐야 한다. 우리의 여태껏 살아온 과거의 삶들이 우리를 붙잡으려고 한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려고 할 때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 한 것들이 그의 생각을 붙잡고 있었다면 사람들 앞에 자신 있는 말씀 선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베드로 사도에게서 보는 것이다.
그것이 실수이든 성공이든 행한 일에 안주하고 추억에 붙잡히고 죄의 수치를 털어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잘 좇지 못할 것이다.
교회의 관계나, 가정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장애들을 잘 제거하는 것, 이것이 또한 신앙의 경주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이다. 정신적인 것이든지 물질적인 것이든지 간에 주님을 향해 달리는 것에 걸림이 되는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Ⅳ.좇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이 12, 14절에 두 번씩이나 말씀하고 있는 "좇아가노라[<헬> 디오코(dioko)]"는 본래적인 의미로 '달아나다, 추격하다, 박해하다' 라는 등등의 의미다. 이것은 한마디로 부단한 노력으로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누구도 믿음 생활에 있어서 자위는 금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로 복을 받고 생황에 여유가 생기면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전부인양 생각하고 열심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는데 안타까운 사실들이다.
주님께서는 요한 사도를 통하여 이러한 모습의 경계를 주고 계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5~17)
누가복음에서도 같은 경계를 본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눅12:19)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Ⅴ.결론.
완성될 수 없는 영성의 훈련을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중단해서는 안 된다.
바울사도는 그의 처형을 앞둔 생의 말년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고 자신 만만한 확신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신에 찬 확신은 그의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일관된 삶의 결과로 주님과 우리 모든 신앙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찬양이요 고백이며 현실 속에서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사람들이 자지 할 수 있는 영광의 고지다.
여러분들은 삶에 기쁨을 누리기를 소원하는가? 감사와 기쁨은 푯대를 향하여 부단히 좇아가는 사람에게 기쁨은 온다.
기쁨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고 성취하는 사람들에게만 온다. 기쁨은 일한 사람에게 오는 성취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빌립보서 4장의 책 속에서 바울사도는 무려 15번이나 "기뻐하라" 거나 "기쁨"을 말하고 있는데 바울사도의 기쁨 당부는 언제나 자신과 같이 강조되고 있다.[2:17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즉, 자신의 기쁨의 경험과 같이 너희도 "기뻐하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 빌립보서의 바울사도의 "기뻐하라"는 보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당부로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라는 말씀이다.[빌4:4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면 기쁨이 올 것이라는 애정 어린 부탁이다.
신앙에 있어서 무사안일은 가장 큰 믿음의 사람들의 적이다. 성경은 끊임없이 당부한다. "열심을 내라, 회계하라, 충성하라, 사랑하라!"는 등등 명령은 일 순간에만 필요한 명령이 아니다. 신앙인은 푯대가 분명해야 한다. 완성의 모델이신 그리스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 오늘의 신앙의 삶에 모든 장애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과거가 우리의 현실의 삶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향하여 좇아가는 삶은 주님 앞에 우리 각자가 설 때까지 지속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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