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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라!"는 어감은 좋지 않게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영광을 위하여 훈련하는, 또 경기하는 운동선수들에게 주는 관중들의 응원이요, 코치나 감독이 내리는 주문이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신앙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신앙적 목표를 세상의 없어질 것들로 바꿔버린 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 메시지는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당부이면서 같은 입장의 믿음의 삶을 경주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바울사도의 간절한 당부의 말씀이다.
여기에서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되 명령형으로 주어진 다섯 가지가 있다. "피하라!(11f) 좇으라!(11b) 싸워라!(12ff) 취하라!(12f) 지켜라!(14)" 이것은 다 한결같이 군대용어들이다.
Ⅰ.구별된 사람들에게 주신 부탁이다.(11f)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바울사도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고 계시는데 이것이 구약에서는 특별한 하나님의 일군들을 지칭할 때 쓰인 말(신33:1모세; 삼상9:8사무엘; 왕상17:18엘리야; 왕하4:7엘리사 등등)이지만 디모데 후서3:16~17의 말씀에서 성경의 귀중한 역할을 강조하면서 같은 표현을 쓰고 있는 것으로 봐서 믿음의 사람들을 향하여 하고 있는 당부로 이해하게 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실재로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된 교회 속에서는 섬김의 역할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구약처럼 어떤 절대적 권한을 개인에게 위임하지 않은 입장에서 더욱 분명하다.
우리는 지난 주 이 시간에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는 끊임없는 믿음의 정진을 말씀한바 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보다 적극적이고 전투적이다. 우리는 한 인생의 삶을 비유하여 전쟁에 곧잘 비유한다.
"피하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피해야 할 것이 있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2:22)
Ⅱ.좇아야 할 삶의 과제들.(11b)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Abr.의 대부분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삶이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보심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의 義이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나 먼저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는 것이 경건이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도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사람을 용납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의 모든 힘이 바닥이 나고 절망적인 한계에 부딪혀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 인내다.
온유는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 아니며, 팔짱만 끼고 진리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희망적인 관측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온유는 물질을 잃어버려도 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영혼의 습관이다. 서부 아프리카의 모레 족은 온유한 사람을 "그늘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마음은 이기적 경쟁의 맹렬한 햇볕에 노출되지 않은 것이다. 그의 마음은 그늘진 까닭에 그의 생활은 서늘하다. 아프리카의 폭염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함이 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쾌적한 것이다. 동부 아프리카 케냐의 킵시키 족은 온유를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교만한사람은 재빨리 행동한다. 그것은 자기 이익에 무척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이 적다. 남의 희망이나 소원에 관심을 두면 자연히 행동은 차분하고 신중하게 된다.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카바라카 족은 온유를 "어린이의 속 사람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 온유는 겸손의 선물이요, 교만은 죄와 독선주의의 자식이다. 온유는 하나로 만들지만 교만은 서로 갈라서고 분열하게 한다.(교회사에서 골라낸 11,882가지 이야기, 편집부, 기독교문사, p631)
Ⅲ.싸워야할 싸움.(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 하였도다"
"싸우라! 취하라!"는 모두 전투 용어다.
(1)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신앙의 삶 자체가 전투라고 표현된다.
"‥‥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1:3b) "‥‥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1:18) "‥‥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살전2:2)
짐승들은 썩은 고기를 가지고 으르렁거리지만 하나님의 군사로 선택된 우리들은 선한 싸움, 의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썩어질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고, 인간 관계를 깨뜨리고, 유괴하고, 치졸한 싸움들을 짐승처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선한 싸움이 있다.
(2)영생을 취하라!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어졌지만 이것은 반드시 선한 싸움을 잘 싸운 하늘의 병사가 얻는 전리품이다.
(3)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불림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도록 불림을 받은 존재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이미 이겨 놓은 싸움을 위하여 하늘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임을 수시로 자각 할 수 있어야 한다.
Ⅳ.명령의 권위.(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오늘 우리게 주시는 명령 즉, "피하라!(11f) 좇으라!(11b) 싸워라!(12ff) 취하라!(12f) 지켜라!(14)" 는 구령은 누가 주시는 건가...?
우리에게 이 선한 싸움을 명령하시는 이가 누구인가? 이종배인가? 이 명령을 주시고 계시는 분은 자기를 죽일 수 있는 권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진리를 증거 하신 주님이시다.
Ⅴ.싸움의 기한과 자세.(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언제까지 싸울 것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전쟁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모두는 전쟁이 끝나기를 열망한다. 사람마다 기한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건강한 젊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을 접는 사람도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는 분명히 그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2)어떤 자세로 싸워야 하나?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인생은 바로 전쟁이다. 그러나 분명히 싸움의 종류가 다르다. 이왕에 싸워야 할 싸움이라면 어느 편에서 싸워야 하겠는가?[521:1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우리의 싸움은 비열하고 치졸한 싸움이 아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는 싸움의 자세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향하여 권면 한바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Ⅵ.결론. 싸움에 대한 약속과 보장 (15~16)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에스더서 1장을 보면 전쟁에 이긴 장수들을 위로하는 얘기들이 나온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왕이 여러 날 곧 일백 팔십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에1:3~4)
그러나 저들이 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과 우리의 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자신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해방하시고 우리의 주어진 싸움은 전과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요 영광이 보장된 싸움이다.
"복되시고, 홀로, 능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당시의 힘있는 권력자들에게 사용된 표현과 흡사한 수식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군왕들은 승리에 대한 영광을 보장해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영광에 절정이시고 그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운 자들을 자신과 같은 영광의 상급으로 약속하고 계신다.
바울사도께서는 빌립보서를 통하여서도 같은 경계를 주고 계신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1:29~30)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급을 위한 싸움은 십자가를 져야 하는 고난의 싸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확신에 찬 고백을 하고 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521:4"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아멘"
진리를 위한 싸움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힘겹다고 할지라도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주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어떤 위험과 고난이 우리의 신앙의 싸움을 위협한다 할 찌라도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는 약속을 확신하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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