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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히 12:1~7 2001-06-24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는 이 달에 들어와서 계속 신앙의 훈련을 말하며 우리 자신들을 살피고 있다.



우리는 대게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시험과 징계를 말하면서 그럴 때일수록 주님을 바라보라고 격려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대우하시기 때문에 때로는 채찍질하신다는 위로의 말씀으로 이 말씀을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귀중한 교훈은 우리는 훈련의 시행 자로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Ⅰ.위대한 승리의 모델이 계신다.(1f)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우리는 마라톤을 얘기하면 누구누구를 떠올리고 사업의 성공자를 말하면 누구누구를 말한다. 역사를 거처간 수많은 위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모델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영광을 영원히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간의 어떤 분야의 위대하다는 인물을 모델 삼고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와 같이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꼭 같은 성공자가 될 수는 없다.



오늘도 어떤 사람은 한사람을 모델로 삼고 어는 운동장 또는 어느 산 속에서 귀한 젊음을 불태우면 제 이의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이를 악물며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과연 어떤 모델을 좇아가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앞의 11장에도 나열되고 있지만 구름 같은 선배 신앙인 들이 있고 그들은 신앙의 어려운 훈련 과정을 잘 거쳐서 이미 영광의 대열에 앉아 있고 이름이 지워지거나 쇄하지 않는 생명록 책에 기록된 사람들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성공자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들이 성공한 이유를 모세를 들어 예를 들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고 소개하면서 모세가 온 갓 유혹과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이유는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고 썩지 안는 상을 주시는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의 신앙의 위대한 모델들의 모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2ff)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델이라고 할 때 그들은 어떤 성공한 인물을 모델로 삼을 때 생각에서만 "그래 그 사람처럼 되어야지"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공자의 삶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모델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모델을 삼았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2ff) 라는 당부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모든 행동에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분석은 하는데 그를 따라 살고 행동하는 것이 안돼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우리의 확실한 모델이 예수 그리스도이신가?



Ⅱ.어떻게 믿음을 훈련할 것인가?(1b)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무엇을 훈련할 것인가? 어떤 목표치대로 자라고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2b)



[1]훈련은 어떤 것이든지 반드시 목표가 있다. 심지어 요즘은 밥을 굶으면서도 날씬한 꿈을 꾼다(다이어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훈련을 하게 되어있다. 세상 사람들은 설령 그 목표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황홀한 꿈을 꾸면서 훈련을 한다.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자신이 그 대회에서 일등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목표가 없이 어떤 것을 할 때는 막연히 시간만 소모할 수 있다. 엡5:15~16"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우리 각자는 시간을 허송하는 자신이 아닌지...?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골4:5)



우리의 성장의 목표를 분명히 할 때 시간을 주님의 은혜로 구속할 수 있다.



영적인 훈련은 언제나 확실한 영광을 보장한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훈련은 참음이 훈련 자체이다. "십자가를 참으사"



천국 순례자의 모든 절제는 십자가이다. 십자가란 수치, 고독, 아픔, 소외, 갈증, 억울함, 슬픔 등등 이 땅에서 신앙 때문에 당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사"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바로 이런 모든 것을 다 견디신 것이다. 우리는 과연 믿음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기쁘게 감당하는가? 지금의 신앙의 훈련에 낙오하면 미래의 영광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믿음의 훈련을 하는데 마치 시간 때우기 식의 훈련(민방위, 예비군은 아닌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앙의 훈련은 의무에 의한 시간을 채워야 되는 소집 훈련으로 생각하면 분명히 실패한다. 예비군복을 입혀놓으면 온갖 부끄러운 짓을 다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었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날 그렇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갖는다.



세상 적인 기준에서는 다 괜찮은 사람들이데 유독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수치는 행하는 우리 자신들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욕을 채워 주시기 위해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다. 땅의 것에 연연하는 어줍잖은 군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3]사람을 의식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영적인 문제의 대부분은 세상을 의식하고, 사람들을 의식해서 소신 있게 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344:2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 갈 때에 우리 소원 주안에서 이루리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Ⅲ.훈련 중에 당하는 어려움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4~6)



(4)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이 말씀은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다. 우리는 대게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신다면 이럴 수 있을까?" 라고 회의하게 되는데 오히려 본 히브리서의 교훈은 "오히려 주님께서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확신을 주고 있다.



우리가 어떤 바닷가에나 강 하류에 가면 파도에 의해서 동글동글하게 모서리가 다 닳아 진 돌들을 보게 된다. 파도에 도는 강물에 떠내려오면서 다듬어지는 멍돌들 처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말씀과 함께 세상의 온갖 풍파에 의해서 나의 모서리가 깎이고 세상의 파도에 다듬어지는 신앙인 들이어야 한다. 파도는 고난이지만 자신을 다듬는 은혜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죄인들에게서 이렇듯 심한 미움을 받으시고도 참아 내신 그분을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치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3공동)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Ⅳ.하나님께서는 되어질 우리를 보고 계신다.(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우리 서로 부족한 것들만 보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힐난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처럼 우리를 보시지 않으신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벌써 우리 모두를 포기 하셨을 것이고 자라지 못하는 믿음, 생명력 없는 교회 모두 포기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되어질 미래를 보시고 사랑하시고 참으시고 용서하신다.



주님께서는 구걸하는 걸인 시각 장애자를 두고 절망적인 평가를 가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선언하셨듯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9:3)



우리 사람들은 언제나 한 사람 과거와 현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되어질 미래를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열심히 애써서 모두가 하나님의 기대하심에 합당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Ⅴ.결론.



교회 나온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사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나의 꾀로 사느냐...?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느냐...?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사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신앙에 훈련이 잘 된 사람들은 은혜를 잘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은혜 베푸시길 원하신다. 그러나 그 은혜가 헛된 사람도 있다. 바울사도의 고백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 각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다 있다는 말씀이고 어떤 사람은 그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어떤 사람들은 한 달란트 맡은 자처럼 감추어 두고 쓰지 못하고 가는 인생이 있다는 말이다. 나(우리)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우리에게는 분명한 모델이 계신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분명한 훈련의 방법도 가지고 있다. "①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②십자가를 참으사 ③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④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2b) 모델을 흠모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삶의 부분 부분을 각자의 삶에 실천하고, 우리는 옆의 현실 속에서 부족한 사람을 나의 목표로 삼지 말고 온전한 우리의 표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수시로 바라보고 확인함으로 하늘의 예배된 상에 부끄럼이 없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