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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히 10:32~39 2001-07-08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우리 대한 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복음을 받고 있는 본문의 히브리인들이나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을 시작한 사람들 못지 않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어려움을 당한다.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우들을 향하여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살전1:9~10f) 라고 칭찬하고 있다.



"종교를 바꾸면 집안이 망한다, 두 종교가 싸우면 저주를 받는다" 는 등등 우리가 이런 저런 말을 다 들으면서 신앙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이러 한 세상과 상황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면 어떠한 각오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Ⅰ.믿음 생활하려면 세상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32~34f)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포기 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의 위로와 사랑은 이미 등진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아직 때때로 여기에 연연해 있는 우리 자신들을 볼 때 안타깝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5~16)



애당초 이 땅에 교회가 서면서부터 이러한 사실은 선언되고 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2)



이것보다도 먼저 사도들이 이미 이러한 경계는 주님으로부터 듣고 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명예도 포기하고 고난과 환난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앞에서도 신앙의 삶이 싸움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드린바 있다. 믿음 생활은 절대로 무사 안일이 아니다.



세상의 가치로는 절대로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라는 불이익의 편에 서질 않는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11:19; 눅7:34b) 라는 평가를 거절치 않으셨다.



사실 우리 신앙하는 사람들 치고 사연이 없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각자의 인생들이 소설을 쓰고도 남을 만큼 사연들이 많다. 물론 그러지 않고도 주님을 알고 섬기는 사람이라면 더 많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고난과 환난의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자. 주님은 말씀하셨다. "‥‥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18:11)



주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셨음에도 우리를 살리시려고 고난과 환난의 십자가를 자처하셨다. 우리의 스승이신 주님이 감당하신 것을 뒤를 따르는 우리가 외면하면 참된 제자라고 할 수 없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사람들이랴"(마10:25)



그러나 세상의 허무와 절망이 깊어갈수록 하나님의 사람들은 소망을 키우는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Ⅱ.그러나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35~36ff)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



1.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본 삼으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승리 그것이 오늘 우리의 갈 인생의 좌표이다. 그 많은 표본들이 나로 하여금 오늘을 승리케 하는 것이다. 바로 뒤이어지는 11장에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재산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선진들을 거울을 보듯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간 길을 가는 것'이 오늘 나로 하여금 후대에 오는 사람들에게 같은 효과를 만들어 주고 나 자신이 승리하는 삶을 사는 비결이다.



2담대함을 버려서는 안 된다.



'담대함'[parresia(파레에시아)]숨김없이 말함, 즉, 솔직함, 널리 알려짐, (함축적으로) 확신.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행4:13) "버리지 말라"[apoballo(아포발로)]던져 버리다, (상징적으로) 놓치다, 내던지다.



담대함은 믿음의 산물이다. 죄 속에 있는 인간의 가슴에는 칠흑 같은 어두움과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①죄와 싸우는 담대함 ②세상을 이기는 담대함 ③의를 위한 담대함은 결코 우리의 삶에서 내려 놔서는 안 되는 그리스도인의 힘이다. 아무리 세상이 뒤바뀌어도 세상이 그리스도인의 특성을 버리면 안 된다. "너희의 진실을 던져버리지 말아라, 너희의 확신을 내던지지 말아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솔로몬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잠28:1)



3.인내가 필요하다.



인내[hwipomone(휘포모네)] 압박아래 있는 것이나 요즘의 표현을 빌리면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이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계2:2ff)



이 단어는 헬라어의 두 단어를 번역한 것으로서, 비록 번역 성경에서는 엄격한 구별 없이 쓰이지만, 원어 상으로는 ①고난과 시험 속에서 믿는 바를 타협함 없이 유지해 나간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고, ②동일한 상황 속에서 오래 참는다는 소극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인내는 신앙의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이다. 약1:2~4"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약5:10) 성경은 인내를 '성령의 열매'의 하나로 열거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5:22; 엡4: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의지로 견뎌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감당되어 지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함[chreia(크레이아)]' '고용 또는 사무, (함축적으로) 경우, 요구, 요청, 결핍' 이란 말들인데 우리가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붙여준 심부름꾼이 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내'이다. 믿음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인내라는 사무원을 고용하고 살아야 한다. 부족할 때마다 하나님께 요구하고 요청할 수 있는 것도 인내다.



인내란 고통스럽게 견디는 것이 아니다. 즐거움과 희망 속에서 견디는 것이다. 여기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Ⅲ.그렇다면 무엇 하러 고통하며 신앙 생활을 하는가?(34b, 35b, 36b)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34b),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35b),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36b)"



누군가 나에게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는가? 그저 통장에 돈 크는 재미, 자식들 크는 재미, 사업이 번창하는 재미,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니는 재미, 바둑이 느는 재미 등등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을 만남이 가까워지는 재미 예배드리는 재미로 산다" 어째 노인들의 전유물 같은 답변인가? 그러나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과거의 신앙의 선진들의 고백을 계승해야만 한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우리의 영광은 세상에 있는 어떤 것에도 비길 것이 없다. 믿는가?



Ⅳ.그러므로 우리 하늘의 사람들의 삶이 있다.(38~39)



(38)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신앙의 사람들은 현실에 머무르는 삶들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바라보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전진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은 절제할 수 있는 용단이 있어야 한다. 마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앞을 향해 균형을 잡고 전진하듯이 신앙의 삶은 계속해서 진흙탕과 생수의 반복이 아니다. 믿음을 가진 자란 오늘의 장애를 뚫고 내일을 기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앞에서는 언제나 기쁘게 우리를 이끄시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또 기쁘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은 신앙으로 인한 모든 고난과 역경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계신다.



Ⅴ.결론.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들은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것을 되돌아보면 연연하면 안 된다. 믿음의 선진들의 길을 따라 명예도 포기하고 고난과 환난을 각오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인의 특성인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십자가를 기쁘게 질 때 생길 수 있는 특수 자질이다. 천성을 향해 가면서 우리의 심부름꾼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인내를 계속 고용해야 한다.



바울의 우리 삶의 지침이 생각이 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



어떤 것에도 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세 그것이 곧 인내와 함께 사는 사람이다. 모든 신앙의 사람들은 한결 같은 인내의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는 쇠하지 않는 영광이 약속되어 있다. '알프스를 넘기만 하면....' 이라는 나폴레옹의 격려와는 다르다. 우리 모든 신앙의 사람들 앞에는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는 확신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4) 거나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는 약속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