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세상의 상태는 더 이상 道德이니 倫理니 하는 기준조차 상실되고 없다. 예전 같으면 고개를 들지 못할 일을 한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치고,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대하는데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증명이 되고 있는 샘이다.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 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하느니라"(롬1:32)
그들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더 이상 인기를 유지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최악의 극단적인 상황의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갈등하게 되고 우리의 삶의 모토를 과연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혼란을 겪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러한 세상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동조하고 익숙해 버리는 모습들을 볼 때 더욱 혼란을 겪는다(그리스도인이라는 유명인사들).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 중에서 기쁨이 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을 경계하는 입장에서도 바울사도는 지적한다. "이런 것은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분노해야할 모습이다" 거기에 대표적인 말씀이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2:15) 라는 선언인데 여기서 바울은 세상과 그리스도인을 빛과 어두움으로 분명히 구별짓고 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라는 말씀 가운데서 문제되는 이 세대를 가르치는 두 낱말은 "어그러지고 skoliov"(skolios)"휘어진, 즉 굽은, (상징적으로) 심술궂은, 구부러진, 완고한, 고집센; "거스리는 diastrevfw(diastrepho)"왜곡하다, 즉 (상징적으로) 잘못 해석하다, 혹은 (도덕적으로) 부패하다, 그르친(그르치다), 돌아서다 (눅9:41; 행13:8)
이 세상은 바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리도 사랑도 구부러뜨리고, 잘못 해석하는 왜곡된 세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세상 가운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거처하며 살아야 한다는 안타까움이다. 그것도 소극적으로 이런 정도를 외면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흠이 없고 순전하며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 군데 역시 바울사도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는 곳은 로마서1: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한 것인데 더 이상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범죄한 세상의 그릇됨은 정해진 루트를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우리의 삶이 왜 그들과 달라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구별된 삶을 위하여 주님께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Ⅰ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의 장소는 이 세상이다.(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그 은총은 우리를 훈련해서 우리로 하여금 불경건한 생활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고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 줍니다-공동]
1.우리는 쉼 없이 양육되어야 한다.[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영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 둘 수 없도다]
"양육 paideuvw(paideuo)"아이를 훈련시키다, 징계하다, 가르치다, 배우다, 때려서, 벌주다, 채찍질하다.
2.버리는 훈련이다. "우리로 하여금 불경건한 생활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고" 포기하는 연습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4:22)
3.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훈련한다.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천국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천국을 살겠는가? 하겠지만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 중심에는 벌써 천국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 천국을 키워 가는 것도 영적인 훈련이다.
4.그러나 훈련하는 장소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 이 죄악 된 세상에서다.
군대에서 훈련소는 언제나 안락한 장소가 아니고 고통의 장소요, 모험의 장소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할 것이라"(고전5:10)
Ⅱ이러한 세상 가운데서도 우리의 기대와 소망이 다르다.(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소망도 복스러운 소망이 있고 쉬 사라지는 희망이 있다. 이 세상에서 좋아지고 낳아지는 것은 또 이내 사라져버릴 것들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1:3)
우리의 삶의 도구는 언젠가는 다 두고 가야만 한다. 편리한 도구이든지, 불편한 도구이든지 반드시 두고 가야할 때가 있음을 망각치 말아야 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너희들은 편리한 삶의 도구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라 언젠가 나에게 올 때는 두고 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사랑하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4:10)
복스러운 소망이란 영원에 관한 소망이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1:5)
Ⅲ우리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속에 들어오게 된 것이나 천국을 소망하며 살 수 있는 이유는 애당초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이다. 절망의 그늘에서 신음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영원한 형벌과 저주에서 나(우리)를 자신의 피로 구속하셔서 오늘 그 크신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내가 은혜에 합당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엄청 난 사랑에 대한 배은망덕이다.
1.주님께서는 나의 죽어 마땅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이것은 나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우리(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우리는 이 변화 무쌍하고 하나님의 질서와 사랑을 거역하고 왜곡시키는 이 세상과 함께 살 수 없다. 왜인가? 영원히 멸망 받을 저주를 나 대신 주님께서 받으셨다. 바울사도께서는 이를 확실히 선언한다. 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나)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1:4)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을 기대하신다. 또 주님은 그런 기대를 가질 자격이 있으시다. 왜 인가? 이를 위해 친히 피를 흘리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친히 주셨고 그러한 은혜를 감사로 누리는 자들에게는 이 천하의 모든 것을 다 쓰도록 하셨다. 그리스도를 확실히 모신 자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확실히 그의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고전3:21~22)
2.모든 불법에서 우리(나)를 깨끗케 하셨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3.선한 일에 열심 있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신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Ⅳ결론.
이 세상은 바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리도 사랑도 구부러뜨리고, 잘못 해석하는 왜곡된 세상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이러한 세상 가운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흠이 없고 순전하며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자신을 주신 것은 이를 위해서이다. 우리로 하여금 복된 소망을 갖게 하고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살게 하시려고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
모든 악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깨끗하게 하셔서 열심히 선한 일을 하는 그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 속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바로 이 마지막 시대이다.
또 세상과 죄에 대한 철저한 절망이 없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가지지 못한다.
바울사도께서는 안타까운 탄식을 하고 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 그러나 연이어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20)라고 고백한다.
주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라고 우리의 변화된 신분을 확인시키신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에 자신을 주심으로 우리의 삶에 남다른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
오늘 이러한 주님의 희생과 기대에 부끄러움이 없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