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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람들의 만족을 찾기가 가장 힘든 때가 겨울보다는 이 여름이 아닐까? 사람들은 더 이상 일반적인 것들에서는 만족을 취하지 못하는 까닭에 모든 것들을 Event(사건, 대 사건) 화한다. 평범함에 만족되지 않기 때문에 여름 휴가도 좀 별나야하고 젊은이들의 사랑 고백조차도 한 마디의 말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아 어떤 사건(Event)을 만들어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여 극대화한다. 상품 광고 조차도 "나는 평범한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식의 copy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출로는 더 이상 사람들을 흥분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는 더 사실적인 자극을 위해서 보다 농도 짙은 외설을 도입할 수밖에 없고 잔인성을 극대화하는 폭력물도 마찬가지다.
오늘 날 대학생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는 마약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황폐화시키는 약물 사용이 지식인들 사이에는 단순한 이데올로기로 이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종교로 접근하기까지 한다. 심리학자인 디모데 리어리(Timothy Leary, 1920) 같은 사람은 "약물은 새 종교의 성례전"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고 "약물이 낙원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믿어서 환각제로 흥분된 세계의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여 현대의 고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약물을 복용시키기 위해서 도시 상수도에 강한 환각제인 LSD를 넣자는 의논까지 제시되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더 큰 충격과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고 있는데 웬만한 것에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초극의 시대에 와있는 것이다.
사실 '극대화'나 '극적인' 것들은 꼭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극'(極-용마루, 다할 : 사물의 최상, 최종의 곳)이라는 것은 최상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에 다다르면 당연히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고 머무르거나 물러서야 하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극의 경지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는 어떤 극대화된 이벤트에서도 완전한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사악한 지옥의 안내자다. 에덴 동산의 평화가 깨어진 이후 육적인 삶이 인생을 주도하는 한 절대로 인생은 만족이란 것 모르는 밑 없는 구덩이 같은 것이다.
잠27:20"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지옥과 저승은 아무리 들어가도 한이 없듯이 사람의 욕심도 끝이 없다-공동]"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
또 세상적인 만족은 언제나 '영광(영화)'이라는 것과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영광도 역시 은그릇처럼 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Ⅰ.진정한 만족은 이 세상에서는 없다.
죄를 가진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채워질 수 없는 아뷔소스 즉, 지옥의 구덩이 같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하실 수 있으셨던 이유는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가 마귀의 수하에 있는 이상 어떤 부분도 채워지지 않는다. 이런 입장에서 검증해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 감사가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반대로 내가 믿음에 있다고 하면서 감사를 잃어버렸다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바울사도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하셨는데 무엇을 확증하라는 이야기인가? 주님 안에 있는 만족과 안전, 감사를 통해서 확증된다고 할 수 있다.
(1)만족의 가치 설정이 바로 되어야 한다.
우리의 만족 즉,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는 만족은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으로 물질과 부요로 측정되는 상대적인 만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도 만족할 수 있고 감사할 수 할 수 있는 절대적인 평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2)감정에 속한 만족은 짧은 것이다.
기분에 좌우되는 만족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 인격적인 만족이어야만 한다. 기분에 좌우되는 현대인들에게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는 세속 사람들의 "소원성취"니 "만사형통" 이란 주문들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꼭 잘되고 건강하며 부유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는 식의 신앙의 자세는 경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고 좋은 일 하다가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 상황조차도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찬양하며 감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는 절대적 만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우리는 쉽게 바울 사도의 말씀인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게 고백하는 바울의 고백을 바로 앞의 말씀부터 눈여겨 읽어야만 할 것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빌4:11~13f) 참으로 기가 막히는 고백이 아닌가?
질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있는 사탄의 가시를 치료해 달라고 세 번 기도했다고 했는데 그러나 들리는 응답은 역시 기가 막히는 말뿐이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중요한 것은 이 응답을 듣고도 '도리어 크게 기뻐했다'는 고백입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한가?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는 절대적 만족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Ⅱ.진정한 만족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
(4)우리가 ①그리스도로 말미암아 ②하나님을 향하여 ③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①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②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③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6)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7~11)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은 "영광"(10회) 없어질 의문의 직분의 "영광": 영원한 영의 "영광"으로 비교되고 있다.
(1)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가질 수 있다.
(2)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Ⅲ.나의 만족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반대의 모습인 불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에서와 야곱의 모습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1]에서 - ①장자(축복권)창25:34"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히12:17"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②결혼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창26:34~35)["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창28:8~9)]
③재산-야곱은 형이 牛羊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해서 좇아오는 형에게 먼저 뇌물을 보낸다. 여기에 대해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br")-I have plenty] 네 소유는 네게 두라(창33:9)] 야곱이 거절하면서 (11)"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lKo)-I have everything]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2]야곱 - ①하나님의 복을 넘치도록 누리고 있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I have everything)"(창33:11b) 그러나 그것은 거져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호12:4)
②부모의 기쁨과 축복을 받는 아내와 자녀들이 많았다.
③재산도 많았다.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창31:1)
Ⅳ.결론.
많은 오락과 쾌락이 만연한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왜 그런가? 육체에 속한 만족은 계속 상승되지 않으면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이 약물이든지 보이는 것이든지 전보다는 강한 것이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극적인 상황에서는 생명을 잃는 곳으로 가게되어 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만족; 특히 영적인)이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시17:14~15"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오늘 "우리의(나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는 고백을 드릴 수 있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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