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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은 사람이 신을 찾아 섬겨야 한다고 알고 있고 그것이 재앙과 환난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언제나 이러한 인간의 무지를 지적하면서 예배해야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고 있고 때로는 책망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도 없고 존경심도 없이 외형적인 형태만 남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을 향하여 "(11)‥‥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1~13)고 한탄하신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면 바로 예배할 수 없고 결국은 모든 사람과 일반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시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앙적으로 무지하면서 철저하게 세속적인 여인과 더불어 가장 일상적인 일에서 접근하여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종교문제로 접근해 가고 계시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어떤 예배자들을 찾고 계시는가? 우리 각자가 스스로의 예배를 확인하고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Ⅰ.어디서나 하나님을 의식하는 예배자들을 찾으신다.(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우리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라는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 자체도 각 사람들이 설정해 놓은 예배 장소를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예배 드리는 장소인 예루살렘만을 예배의 장소로 택하셨다고 자부심을 가졌고 매 절기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모여들었던 것이다.
반대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을 개처럼 취급하는 유다 사람들의 홀대를 당하며 예배하는 것보다는 나름대로 예배드릴 장소를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모세를 통한 '그리심 산'의 약속이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신11:29)는 말씀이었다.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예배의 장소야말로 자신들이 예배드리는 곳이라고 자위했던 것 같다.(이것도 역시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것도 역시 인간의 자존심과 편리와 입장에서 되어진 일이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님을 無所不在 하시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한정된 장소에 우주에 충만해 계시는 주님을 가두려는 무모한 생각들을 갖는다. 솔로몬의 고백처럼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대하2:6) 라고 고백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이 것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의 장소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장소로 의식해야 하는 것이다. 예배의 장소를 전혀 무시한 아무 데서나 예배의식만 갖추면 된다는 인간 편리 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약속으로 함께 모이는 격식을 갖춘 정기적인 예배와 우리의 거하는 모든 장소가 우리의 몸(삶)으로 드려져야 하는 예배의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Ⅱ.하나님의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22)
"①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②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를 섬기고 있다고 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호4:1)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면 바로 예배할 수 없고 결국은 모든 사람과 일반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시다.
1.막연한 예배, 인간의 기준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세상사람들의 막연한 제례의식을 경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준을 만든다. "아마도 이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실 거야!" 라고 상상하거나 "내가 은혜가 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실 거야!" 라고 착각하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우리 인간의 기분에 좋고 편리한 거이 곧 하나님의 뜻인 냥 되어져 버리는 하나님과 관련 없는 예배가 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신앙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건주의의 맹점)
이것은 마치 우리 나라의 조상제사 의식과 근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생전에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분임에도 불구하고 제사 때가 되면 의례적인 절차를 따라 제주(祭酒)를 부는 것과 같다.
2.약속대로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사람들의 각각의 특성과 다른 형태의 예배 형식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계시해 주신 방법,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따라 예배케 하시기 위해서 독특한 예배의 방법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유대인들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알게 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인 것이다. 때문에 성경의 방법 즉,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전례를 통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예배의 기준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언제나 종교개혁은 바로 예배 회복이 되었던 것이다.
Ⅲ.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를 찾으신다.(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1.거짓된 예배를 전제로 한다.
인류 중에 모두는 적어도 무엇인가를 향해서 제사하고 예배한다. 그것은 타락했지만 하나님과 교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본성이 변질 된 것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절대로 막연한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드려지지 않은 예배는 인간의 감정에 관계없이 모두가 거짓예배요 쓸 대 없는 무익한 예배인 것이다.
2.스스로의 욕망을 위한 예배가 아니다.
타락한 사람들의 예배는 자신의 욕심을 전제로 한다. "이 제사를 받으시고 재앙을 물리쳐 주시고, 이런 일들이 형통하게 해 주시고, 건강하게 해 주시고, 생활이 윤택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 대한민국의 조상 제사 조차도 본질적으로는 부모 효도라고 하기보다는 이런 이유에서이다(특히 제주도 같은 경우에는 이것이 너무나 확실하게 보인다.). "예수 믿게 되면 조상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조상이 노하고 망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믿는가?) 우리의 예배는 '요구'가 아니라 '감사'라고 하는 측면에서도 세상의 모든 제사와 구별되는 것이다. 찬양은 곧 감사요, 기도도 감사요, 연보도 감사요, 주님의 만찬도 십자가의 희생을 인한 감사다. 감사한 중에 우리는 다음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 바로 말씀이다. 그럼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인 것이다.
3.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요구하시나?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24) 영적인 예배 사실과 진실을 바탕 한 예배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 우리의 어떤 것보다도 마음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나머지는 모두가 나의 마음을 드리는 것의 구체적인 표현이다.(연보까지도) 구약 성경에서부터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6~8)
오늘 우리의 예배의 중심이 주님의 만찬이다. 예수님의 나를 위해 죽으심의 희생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지만 그것은 어떤 부류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의 살과 피가 실재적으로 변화되어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희생의 역사를 마음으로 고백하고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나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신 주님의 희생을 드립니다!"
4.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신령과 진정의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
오늘의 예수님과 대화하는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주님의 대화에서 듣게 된다.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죄의 크기는 사람 보기에는 차이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죄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느 사람도 하나님께 변화 받지 못할 사람 즉,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릴 수 없는 사람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영원과 연결된 신령의 예배, 모든 거짓 된 가정(그럴 것이다)과 감정보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마음을 이해하고 희생의 십자가를 중심 한 사실적인 진리에 바탕 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Ⅳ.나는 과연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오늘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오늘 나는 어떠한 예배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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