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갈 6:6~10 2001-09-02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이러한 당부는 세상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당부가 아니라 선을 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당부의 말씀이다. 오늘 이 말씀이 오늘 여기에 있는 나(우리 각자)에게 주어지고 있음을 믿는가? 무엇보다도 우리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격이요 기쁨이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낙심이나 중단 없이 선하신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함께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귀중한 교훈을 듣게 된다.



여기서는 먼저 신앙의 지도자들과 교우들 관계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본다. 이 지상에서 개인의 삶의 마지막까지, 주님의 날까지 하나님의 일은 수행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6)"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10)"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물질을 주고받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Ⅰ.선한 일이란 무엇인가?(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살후3:13)



"선을 행하다가(헬 kalopoieo)"(살후3:13)] = "(헬 kalos)"본래적 의미로는 ‘아름다운, 가치 있는, 덕스러운, 보다 나은, 공정한, 좋은, 정직한(요10:11; 롬12:17) +"(헬 poieo)" ‘하다, 만들다, 창조하다, 준수하다, 실천하다, 일하다'(눅3:10; 요5:11; 계3:9) 라는 의미를 가진 말들의 결합인데 이것은 두 가지 입장에서 신앙의 사람들과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다가" 라는 말은 ①아름다운 일을 하다가, 아름다움을 창조하다가, 좋은 일을 만들어 가다가, 가치 있는 일을 하다가, 이러한 항목들은 아무래도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일이 아닐까 이해된다. 한 영혼을 살리는 것보다 아름답고, 가치 있고, 좋은 일이 있을까?



②보다 나은 것을 준수하다가, 공정하고 정직한 것을 실천하는 것, 여기까지의 항목들은 죄악과 불공정의 세상에서 말씀을 따라 의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이란 이 죄악 된 땅에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요, 죽음의 일뿐인 이 세상에서 삶의 일,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이며, 연약한 천국의 백성을 양육하는 일이며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기꺼이 고난받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비결을 베드로 사도께서 일러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벧전4:19)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심하고 다짐하면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낙심하지 말라(헬 ekkakeo)"[나쁘게 되다, 약하게 되다, 실망시키다, 활기를 잃다’(고후4:1)]는 말은 당연히 이러한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일을 하다가 약하게 되거나 실망되어서 활기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선한 일을 중단하게 되는가? 왜 낙심하지 말라는 당부가 필요한가?(7)



우리는 지난 여름동안 부서마다 각 나름대로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일 하는 과정이나 그 했던 일들이 낙심시키고 가슴아프며 심한 경우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까지 흠집이 생겨서 고통을 겪는 경우도 생긴다.



왜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했는데 보장보다는 오히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지상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열심과 충성을 인한 허탈과 아픔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들을 성경에서조차 보게 된다.



바울사도는 열심히 일하면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만 만드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6)고 고전9장 전체에서 항변하는 것을 듣게 된다.



이러한 까닭에 바울사도는 같은 경험을 가지고 힘겨워하는 주님의 사람들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살후3:13)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Ⅱ.반드시 심는 대로 거둔다.(8)



"①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②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심는 것에 대한 결과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다.



1.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



교회에서 일을 하되 자기를 위하여 하는 일, 특히 육신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육신을 위하여'란 무슨 의미로 이해해야 할까? 그 결과를 이해하면서 이 땅에서의 영광을 구하는 없어질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자신의 영광, 자신의 칭찬, 자신의 만족, 모두 자기 중심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추수도 약속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오늘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은 내일에 대한 약속이다. 오늘의 열심히 뿌림이 내일의 영광을 결실 한다.



2.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



이것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라는 전 반절의 반대말로 이해되어 진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란 역시 두 가지로 이해가 된다. 즉 ①하나님의 의지를 따라 즉, 주님의 뜻을 위하여 심는 것을 깨닫게 된고 ②신령한 것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땅에서의 대가보다는 보다 영원한 미래를 기대하고 신령한 복을 사모함으로 희생하고 수고하는 것이다.



3.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육신을 위하여, 성령을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심든지 반드시 거둔다는 약속이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사람들이 곡식을 거두기 위해서 농사하는 것에도 정직하신 하나님은 영적인 부분에서도 분명하시다.



헛된 욕심은 금물이다. ①뿌리지(일하지) 않고 기대하는 것. ②육신을 위하여 심으면서 영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 다 헛된 욕심일 뿐이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2:3)



Ⅲ.때가 되면 거둘 것이다.(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농부들이 아직 물이 찬 논바닥에 묘판을 설치하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해를 쳐다보고 구름을 쳐다보면서 혼자 중얼거릴 것이다. "금년에도 장마와 홍수, 병충해, 태풍이 있을 것인데 과연 이 벼를 따먹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러한 독백으로 뿌리던 벼 씨가 누렇게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고 있다. 성경은 이러한 농부의 자세를 신앙에 당부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5:7)



자연은 참으로 놀랍고 하나님의 섭리는 더욱 위대하다.



여기서도 그냥 때가 되면 거두는 것이 아니라 "①낙심하지 말지니(계속해서) ②피곤하지 아니하면(단념하지 않고)"이라는 전제가 있다.



1.지속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2:7)



주님의 일은 언제나 말보다는 육신의 희생을 요구한다. 사실 희생이라는 것 자체가 육체적이다. 영적인 일들은 육신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적인 희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어렵다.



2.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단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의 어려움을 경험해 보지 못한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특히 이러한 부분이 참 어렵다.(설익은 보리를 배어다가 불에다 그을리고 타작하고 절구에 찧어서 밥을 짓기까지 보리밥이라도 먹을 것을 기대하며 주린 배를 달랬던 우리 시대와는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3:17)



요즘의 젊은이들은 "그 때는 그때고 지금은 다르다"고 하는데 신앙에 있어서는 그때나 이때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편기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고 고백하고 있다.



자연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은 계시 하지만 하나님의 용서와 구속은 보여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희생에 대한 당장의 대가도 보여주지 못한다.



Ⅳ.결론.



영을 위하여 심는 것은 오히려 육신적으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때로는 내가 열심히 하면 은혜 받고 칭찬 받고 기쁨이 충만하지 않을까 하고 애써보지만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시간과 물질, 그리고 정력을 소모하면서도 칭찬과 격려보다는 질투와 오해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까닭에 영적인 일에서 낙심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 대단히 힘든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각오해야 하는 것이 육신적인 수고와 희생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아픔까지도 각오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약속과 위로가 함께 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주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엄청난 일을 하시고도 칭찬 받은 것은 아버지부터로 뿐이었다.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지속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고, 어떤 조건에서도 낙심치 않는 것이 거두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누리는 비결이다. 이 세상에서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결실의 때가 오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저 파란 가을 하늘처럼 명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