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交唱: 인도자-①"여호와를 의지하라", ②"여호와를 의지하라", ③"여호와를 의지하라"
회중-"그는 ①너희(②우리, ③나의) 도움이시요 ①너희(②우리, ③나의) 방패시로다"
이 세상에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할까...? 거기에 대한 답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없다"라고... 하나님이 아닌 이상 어떤 도움도 필요 없는 존재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의존적인 존재다. 우리는 사람을 가리켜 쉽게 '사회적인 동물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서로의 협조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개개인으로도 남자와 여자가 서로 의존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고독이 가장 무서운 인간의 형벌이다.
사람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안정감을 얻고 살 수 있는 의존적인 관계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다. 그러나 최초의 사람은 어리석게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독립선언을 하고 만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구조 적으로 절대적인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고 안심할 수 없는 靈적으로도 肉적으로도 반 토막의 존재가 사람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법률적으로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있는 어떤 사람이 "( )야 어려울 때 나를 찾아오너라." 한다면 얼마나 감사하겠는가? 어려울수록 도움은 더욱 절실하다. 사업을 하다가 자금이 모자라서 이 은행 저 은행을 전전하며 대출을 위해 애쓰다가 전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면 얼마나 힘이 날까? "그렇지 그런 약속을 받은 적이 있었지...!"
어쩌면 이러한 약속은 너무 나와는 너무나 머나먼 상관없는 동화 속에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그러나 사실은 이 놀라운 약속을 우리 모두가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런 약속을 받은 적이 없다'구요...? 사실은 아니다. 여러분들 각자가 다 이러한 지원을 약속 받은 사람들이다.
Ⅰ.의지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에게 의지해야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말씀은 무엇보다도 우상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책망한 후에 주고 있는 당부의 말씀이다.(4~8) 나보다 약한 존재라든가 같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도움을 청해 봐야 소용이 없다. 우리말에 '내 코가 석자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구체적인 도움을 구할 때 언제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청하게 된다. 그러나 신앙의 선배가 주는 권면은 다르다. "(3)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5)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3~5, 우리를 도우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6~9에 연이어 밝히고 있다.]
이번의 미국이 당한 테러는 그 이유나 성격이 어떠하든지 세계의 최고 강국이요 자국민의 보호에 철저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의 한계를 극명하게 들어낸 예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이란 보호의 우산도 한계가 들어낫다. 마치 하나님의 종 모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믿고 큰소리 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깨어진 바로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같은 경계를 주고 계시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도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미7:5)
Ⅱ.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을 약속하시는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세 번씩이나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세 번이라는 수는 완전 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권에 당첨된 자나 무작위로 도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아니다.
[1]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9)
하나님과 계약에 관계에 있는 천국의 백성들을 향한 당부의 말씀이다. 언약의 관계에 있는 주님의 약속 즉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백성들을 권면하시는 말씀이다.
옛날에는 야곱과 언약을 맺고 야곱의 모든 후손, 그리고 가나안 약속의 땅에 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 부르셨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롭게 언약을 맺는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1~33)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8:10, 10:16에서 이를 확인한다. 바울사도는 복음의 언약 속에서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요한 사도는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과 더불어 새 이스라엘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언약을 맺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초청임이 분명하다.
[2]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10)
구별된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시대에 애굽에서 장자를 죽인 대신에 레위 가문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러나 요한 사도를 통하여 믿는 신앙의 사람들에게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6) 하셨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류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제사장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조차도 자신의 의와 내 노력 내 수고로 섬기려다가 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당부하고 계시는 것이다.
[3]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11)
하나님께서 어떤 분임을 아는 신앙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어느 정도는 안다. 순종하는 삶이 어떤 것이며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할 분이심도 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2:3)는 요청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로는 알면서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몰라서 그런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지 않는 것은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것이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롬2:4) 라고 책망한다.
우리는 다윗의 고백을 들을 필요가 있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시52:8)
[4]"의지하라" 는 요구는 연약한 믿음을 회복하라는 당부로도 들린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늘 믿음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신앙만 확고하면 이 천하 만국이 다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Ⅲ.하나님은 도움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에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12~13)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신 것은 복 주시기 위해서이다. 애시당초 에덴 동산에서 범죄하고 두려워 떨며 숨은 아담을 찾으셨던 것은 형벌보다는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변명으로 귀중한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을 본다.
[1]하나님은 우리(나)를 생각하신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들로 하여금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실까 늘 생각하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불신 대문이다.
주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 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49:13b~16)
[2]하나님은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 주신다. 그러나 경외는 그냥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25:24~26) 는 대화를 듣게 되는데 여기 게으른 종은 주인을 오로지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했고 주인은 그것은 엄청난 오해라는 사실을 증거 한다.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모든 자에게 복 주신다. 그러므로 신앙을 잘 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유약함을 알고 그것을 예수님의 피에 맡기고 주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Ⅳ.오늘 나는 과연 이 복을 누리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 각자에게 권면을 주신다.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약속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문제다.
하나님은 인간의 수완과 방법으로 섬기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의지하고 기대는 그의 백성을 복주신다.
우리는 다윗이 위대한 신앙의 사람으로 주님의 큰 역사를 늘 경허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고백 속에서 듣는다. "(5)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 도다 (6)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7)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5~8) 이러한 자세야말로 주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를 의지하라!"는 약속과 권면을 받고 있다. 이 약속이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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