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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계 1:4~7 2001-09-23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는 때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하는 것에 대한 감사도 사죄의 기쁨도 잊어버리고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즐거움이란 없는 것 같은 뜨뜻미지근한 삶을 살므로 생명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너무나 흔하다.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사죄와 구원의 감격을 회복할 필요가 있고 사실은 주님의 날의 예배는 속죄와 무한한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이지만 주의 만찬과 주시는 말씀의 결과는 당연히 이러한 은혜들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고난과 질병과 역경을 뚫고 나오면서 더욱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순간마다 확신한다면 적어도 그 순간만은 죽어도 소원이 없을 만큼 행복한 사람들이다.



사도바울은 선언하기를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6~8)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형벌로 갈 수밖에 없는 죄의 절망으로부터 구원받은 감격이 있는가? 죽음의 저주로부터 자유 함을 받았다는 주님의 선언이 확신이 되는가?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감격과 확신을 가진 가슴이 천국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오는 감사와 기쁨과 평화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Ⅰ.우리를 사죄하신 주님의 권위.(4~5f)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5년 동안 나라를 호령할 수 있는 대통령도 많은 사람은 부러워하고 침을 흘린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이 나라에서 그보다 높고 영광스러운 직위가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임기가 다 되어 가면 두려워하고 몸을 사린다. 그것은 오히려 임기 동안에 수행한 행정들이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불안해하고 대통령보다 더 마음을 조리는 사람들은 그의 후광을 가지고 날뛰던 사람들이다. 이것이 세상 권력의 무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임금 되시는 주님의 권세는 5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며 평생에 끝나는 것도 아니다. 결코 주님은 불의를 행치 않으시며 그의 통치는 결코 끝나심이 없으시다.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102:26~27)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시지만 이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주인으로 계신 분이시고 장차 이 세상이 끝나도 그분만이 주인이시다. 죽음이 그 권좌를 빼앗지 못했고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사람들의 권세를 친히 주신 분이시다.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고 성령의 사람 바울은 말한다.



그 공의로우시고 인자하신 분이 누구인가...? 바로 나(우리, 여러분)의 맏형이시며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를 부러워 할 필요가 있는가!



Ⅱ.완전한 사죄의 역사와 은혜.(5b)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하나님은 다른 생명을 가지고 우리 죄를 사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20:28) 라고 확인하신다. 세상의 어떤 군주도 백성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려는 임금은 없다. 특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을죄를 지고 사형장으로 가야하는 추하고 쓸모 없는 백성을 위해서 자신이 피를 흘리는 일은 없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는 범죄 하여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8)



이것이 은혜라고 하는 것이다. 받은 자격이 없는 천한 존재가 높은 지위에 있는 어떤 고관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7) 우리 사람의 죄는 어떤 제사로도 완전히 근절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 죄를 짓고 사죄를 위해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또 죄를 짓는 멸망과 끈질기게 연결되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10:4)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사도 요한은 이러한 사실을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5:9)



오늘 우리 각자의 생명은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지불하고 죄에서 산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되고 어려울 때마다 초라해 질 때마다 나의 나 됨을 위해서 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피를 지불하시고 죄에서 사 주신 은혜를 깊이 헤아려서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특히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라는 고백은 우리의 죄와 절망과 저주에서 완전히 자유 하도록 하셨다는 주님의 선하신 역사를 고백하는 것이다.



오늘도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려움이나 고통을 당하면 '아직도 죄가 남아서 죄 값으로 이런 일을 당한다' 고 그것도 궁하면 '내 전생에 죄가 많아서' 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세속적인 생각에 물들어 있어서 그러거나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혜를 믿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일 평생의 모든 죄, 그것이 거짓이지만 전생에 무슨 죄가 있다고 해도 완전히 사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러 번 말하지만 진정으로 주님의 희생의 피를 믿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죄 값으로 고통 당하는 것은 없다.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다.



만약에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하면서 "무슨 무슨 죄 값으로 이렇다"는 것을 운운 한다면 그 사람은 엄밀하게 말해서 십자가의 피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의 구속은 어떤 죄는 사하시고 어떤 죄는 사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남김없이 십자가에 매달아서 해결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사람들이 아직도 죄의 문제를 처리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불신의 사람인 것이다.



Ⅲ.사죄의 목적.(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제는 절망과 저주와는 관련이 없는 '거룩한 존재들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쓸쓸하시거나 무료 하셔서 사람을 특별히 지으신 것이 아니다. 애당초 만물과 다르게 인간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영광과 생명을 함께 나누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는 이 놀라운 영광을 범죄로 인하여 상실하고 수치와 절망을 가지는 생각하는 동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아신 주님께서는 인간의 회복을 이미 예정하시고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의 길을 열어 놓도록 하신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3~6) "…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2) "…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14)



[1]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구속하셨다.



이 모든 것은 절대로 범죄한 인간의 가치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영광의 주님을 위하여, 위엄의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려고 우리를 속죄 하셔서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이다. 그럼으로 십자가의 보혈을 힘입는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삶의 첫째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왜?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피 흘리셨기 때문이다.



[2]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구속하셨다.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거듭난 우리 생명은 우리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해서 바울은 권면 하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당부한 바울사도는 다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 라고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의 사죄와 천국의 백성 됨의 삶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바란다. 우리 구원받은 삶은 이 세상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위해 영광을 돌리는 삶이 남아있는 것이다.



Ⅳ.사죄를 입지 못한 자들의 피할 수 없는 비극.(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오늘 말씀의 마지막은 은혜로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절하는 불신의 사람들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심판의 선언으로 끝맺고 있다.



사죄의 은혜를 이루시기 위해서 말구유간에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는 다르게 다시 심판 주로 오시는 주님은 온 역사의 모든 인류가 다 볼 수 있도록 이 역사의 종말에 임하실 것이다. ①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②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주님을 박해하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봐진다. ③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④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신앙의 사람들은 그를 인하여 감격과 기쁨과 찬양을 돌리는 데 반하여 불신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인하여 땅을 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저분을 믿었어야 했는데" 라고 애통해 할 것이라는 말이다. 우는소리는 같을 수 있다. 그러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기뻐서 우는 것과 억울하고 슬퍼서 우는 것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찬양하는 존재들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