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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16:21~27 2001-09-30
주여 그리 마옵소서!(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행하고 있을 비 내리는 중추절 아침에 불신자들이 운전대를 잡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이런 푸념을 듣는 것 같다. "하나님, 추석날 초 칠일 있습니까, 2천만이 이동한다는데 날씨 좀 좋아주면 안 되요?" 이것이 오늘 우리의 주제와 더불어 생각하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가 오고 자신들에게 어떤 어려움과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아멘!(주님이 옳습니다)"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 바로 앞에서 바른 믿음의 고백 뒤에 주님으로부터 엄청난 영광과 복을 약속 받는 베드로를 본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7~19)



바른 신앙은 '고백'으로 끝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런 고백과 응답 뒤에 오히려 신앙의 훈련이 올 수 있고 그러기에 "죽도록(끝까지) 충성하라!"는 당부를 듣게 되는 것을 느낀다.



마치 회개(悔改)라는 것이 뉘우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데에까지 가야하는 것과 같다(많은 사람들은 뉘우치기는 잘 하는데 고치는 것은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로 베드로를 어리석다고 비판하면서도 실상은 항상 이런 모습이 아닐까?



Ⅰ."주여, 그리 마옵소서"는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언어이다.(22)



잘못된 신앙의 사람들의 기도는 늘 "주여, 그리 마옵소서(하나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그런 일은 믿는 나에게는 없을 거야)" 라고 확인해보고 애걸하는 나 자신이 아닌지...



분명히 하나님나라나 전체에게는 유익이 되는데도 나 자신의 입장 때문에 "주여, 그리 마옵소서" 라고 하나님께 항변할 때가 많다.



우리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간사한지 모른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미국의 뉴욕의 WTC(세계 무역센터) 건물과 수 천명의 목숨을 놔두고 대신에 우리 중 누구의 건물을 우리 가족과 함께 못쓰게 하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 가치의 경중(輕重)에 관계없이 우리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 것을 알고 늘 말하면서도 분명히 베드로처럼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할 것이다. 언제나 주님의 뜻을 찾으면서도 비극에 내가 관련될 때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게 된다.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병드는 일, 손해나는 일, 죽는 일, 평탄치 못한 힘겨운 일들이 우리에게는 결코 미치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우리의 삶에도 꼭 같은 고통이 있고 오히려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이라는 각오로 맛설 필요가 있다.



'어찌 고난 당하지 않겠는가!' 라는 각오가 더 중요하고 이런 모습으로 맞설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감당하게 해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억울한 수모와 죽음 앞에서도 "…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18: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들이 반드시 우리의 이성적으로 다 이해되고 항상 그렇게 반가운 것들만은 아니다.



베드로는 고난 뒤의 영광의 약속을 들을 수 없었다.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만 듣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듣지 못했다.



Ⅱ.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늘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할 수밖에 없다.(23)



"…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setting your mind on God's interests)"는 말은 '하나님의 관심에 마음이 맞추어져 있다'는 말이고, 반대로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setting your mind on man's interests)"는 말 역시 '사람의 관심에 마음이 조절되어 있다' 라는 의미다.



우리의 마음이 천국에 맞게 조절되어 있는가? 사람 즉, 세상에 맞게 조절되어 있는가가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로 표현되어 있어 특이하다.



바울사도는 '머무르든지 떠나든지, 먹든지 굶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면 기뻐하겠다고 고백하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



어리석어서 세상에만 눈을 박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습게 여기고 모세에게 반기를 든 다단과 아비람은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민16:13) 라고 빈정거리는 것을 읽게 된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고자 할 때 "그리 마옵소서" 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도 내 자신이 주인으로 있다는 단적인 예다. 나 자신이 중심이 된 세계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빙자하면서도 자신의 영광, 자신의 자존심, 내 육신의 이익을 위한 투쟁의 모습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죽었다면,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서 사신다면 어떤 자신의 불이익 앞에서도 "아멘"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사람에게...



골3:22~23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살전2: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때로 "그것이 구원 얻는데 지장이 있느냐?"는 이기적인 자세로 신앙의 문제를 헤아리려 할 때가 많다.



Ⅲ.아직도 자기 부인이 안된 사람은 늘 "주여, 그리 마옵소서" 라고 할 수밖에 없다.(24~25) 자기가 주인인 사람



"…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 부인"이 있어야 주님을 따를 수 있다. '①자기 십자가를 지고... ②좇아야'



"자기 부인"과 "목숨" 또한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 오늘도 어느 쪽을 "부인"의 대상으로 선택할 것인가의 싸움이 바로 신앙의 과제다. '나 자신을 부인할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부인할 것인가?' 지금 나의 판단은 현재와 순간의 안락과 영원한 미래의 영광을 선택하는 기로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은 평생동안 지속될 싸움이며 어제 주님께 순종을 드렸어도 오늘 부인하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주님은 목숨을 건 순종을 원하신다. 매일 " 순종에 목숨을 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자기 부인(죽음)이 있어야 하늘의 가치가 바로 보인다. 언제나 보이는 이 가죽부대가 문제다. 좋은 것 담기를 원하는 이 겉 사람, 이것이 죽지 않고서는 사단의 역할 밖에는 못한다.그래서 욥은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19:26)고 고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바른 선택의 상급은 가장 큰 영광의 순간에 주어질 것이다. 때문에 이 땅에서의 영광은 보류될 수 있다.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주님을 위해서 잃는 순종까지 간다면 영광과 영원은 주님께서 보장하시는 것이다.(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5)"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생명을 잃기를 원하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사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그 목숨을 버리라고 하니 어렵다. '귀하다'는 말씀을 하시지 말든가 '버리라'고 하시질 말든가, 참으로 이래서 어렵다.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잃는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또 분명한 엄청난 보상이 약속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순간 "을 생명을 연장시켜 가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옛날 인사는 오늘에 더 실감이 난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우리 인생의 가장 귀중한 가치가 생명의 문제임이 분명하다.(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그러나 그 가장 귀중한 가치를 부인할 수 있어야 영원의 사람이다. 영원은 거져 주셨지만 그것을 누리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결과로 확고해 진다.



주신 생명이 중요하고 누리는 생명 또한 귀하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죽고 사는 생사의 문제가 주님께 있었듯이 오늘 세상 속에서는 다시 나에게 우리 각자에게 있다.



Ⅳ.결론



우리는 주님을 믿으면 무조건 고난과는 상관이 없고 무사 태평의 시간들만이 있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때로 어려움이 닥치려 하면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고 주님을 붙들게 된다. "그리 마옵소서"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언어이다.



인생 속에서 당하는 우리의 모든 상황은 늘 '주님을 부인할 것인가?' '나를 부인할 것인가?'의 두 가지 갈림길이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었다고 해도 주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때로 가장 가까운 신앙의 사람이 "넘어지게 하는 자"로 역할 할 수도 있다. 가장 가까이 순종하고 사랑하던 대상이 사탄이 될 수도 있다. 영적으로 경성(警省)치 못하면 어제의 칭찬은 오늘의 육신 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사탄으로 내 몰릴 수도 있다.



자신의 살 것을 먼저 생각하면 죽고, 죽음이 막아서도 주님을 위하면 살 것이다.



영원한 세계에서는 자신의 선택한 결과를 따라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