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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2:1~5 2000-08-20
인간의 수완, 하나님의 능력  
오늘의 제목은 어쩌면 인류역사와 더불어 늘 함께 해왔던 갈등이며 신앙의 사람들은 반드시 극복해야할 일생의 과제인 동시에 교회의 과제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사람의 지혜는 한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간교한 처세술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적인 가치에서는 한 사람을 평가할 때도 '능률'이나 '재산적 가치'로 즉, '유용성'에 의해서 평가한다.



50년 이상이나 떨어져 살던 사람이 만나는 것조차도 정치적 입지나 국가의 이익과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입장이고 보면 참으로 사람들의 간악함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떤 과정이든지 맛, 멋, 재미, 기호를 중심해서 가치를 계산한다. 이것이 사귐에도 결혼 대상을 고를 때도 사원 체용에도 급여에도 연봉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완이 있는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 가 곧 그 사람의 위치를 결정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평가할 때 생명의 가치로 평가하신다. 하나님은 독생자의 생명을 죄인들의 생명을 속하는 일에 쓰셨고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8:36)라고 하심으로써 이 우주보다도 한 생명의 가치를 위에 두고 계신다. 이러한 분이 바로 나의 주님이시다. 감사하지 않는가? 감격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생명의 힘은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것 같이 보이지만 희생의 십자가와 성령의 능력으로 어떤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사실은 생명과 진리가 사람의 가치요 목표요 방법이라고 고백하는 교회 속에서도 세상적 평가 기준이 절대적인 가치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Ⅰ.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인간의 수완은 어떤 일을 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신앙의 사람들도 어떤 일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보다 인간적인 지혜나 정치적인 방법을 바탕으로 하고 시작하면 그 일은 계속해서 그런 방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비극과 불신의 고리를 끊을 수가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범죄 한 역사 이후로 계속해서 그의 종들을 보내서 경계한 것은 인간의 수완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죄악 된 세상 사람들 속에 여전히 앉아서 손가락을 헤아리며 그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서 산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언제나 간악한 사람들의 간교한 수완은 하나님을 거스른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11:3~4)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분명히 하나님의 언약이 다윗에게 넘어갔음을 알면서도 다윗을 죽이는 일에 온 정력을 다 소모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저지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그의 남은 인생을 써버린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믿음 안에서 자신의 잔꾀를 버려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철저하게 어리석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방법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 어리석은 것 같으나 지혜 있고 폐하는 것 같지만 이기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v5에서 신앙인들을 향하여 경계하기를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하여 신앙은 절대로 인간의 수완에 의해 이끌려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에서도 그렇거니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는 사람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Ⅱ.어줍잖은 인간의 수완은 스스로를 점점 비극으로 이끌어 갈 뿐이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왔다는 것은 자신의 수완과 방법을 포기했다는 고백이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그러나 완전한 회개 없이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방법과 수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고 앉아있는 것이다.



가룟 유다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런 부류의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언제나 신앙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된 사람들이다.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고후10:12)



인간의 權謀術數는 어떤 문제도 근원적인 해결점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의 적수로 만들고 하나님의 대적들이 당한 비극적인 결말로 자신을 이끌어 갈 뿐이다. 애굽의 바로 왕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배푸시는 이적들을 자신의 술객들도 행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대적하다가 결구에 가서는 온 애굽을 울음바다로 만들고 만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나 자신의 교훈으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성경에나 있는 일이고, 말씀이고, 오늘날 그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살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책을 주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이다. 유치한 신앙은 권위주의에 순종과 복종은 잘하고 교회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환난을 만날 때는 여지없이 무너질 수 있다. 그 때 그곳에 주셨던 말씀은 오늘 여기에 있는 나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다. 믿어지는가? 이것을 믿어야 내가 성경 속의 비극적인 인물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고 그런 이유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를 교훈하고 계신 것이다.



"말씀은 그렇지만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것은 불신의 변명이다. 그렇게 정말 살아 봤는가? 이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지 못해서 역사를 경험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가 확실히 믿고 그대로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도 그 약속대로 동일한 역사를 이룰 것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11) 그렇지 않다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인간의 간악한 지혜는 우리를 비극으로 이끌어갈 뿐임을 망각치 말아야 한다.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논리로 생각할 때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내가 산다.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 말씀과 성령의 능력은 함께 역사 하신다. 믿는가?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통탄해야 할 것이다.







Ⅲ.결론.



개인과 교회가 말씀에 철저해 보지 못하고 "과연 그럴까?"라고 의심한다면 천국은 맛볼 수 없다. 종교개혁을 했던 신앙의 선배들이 사람의 권위와 미신적인 종교행위를 버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돌아가자고 선언하고 시작했는데 그것을 추종하는 많은 개혁 교회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개혁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느낌이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혼란한 신앙을 말씀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환원운동을 하게 됐는데 오늘 우리의 분위기는 "그래가지고는 안돼" 그래서 다른 교회를 그대로 본받아 가는 분위기다.



에덴의 범죄 후 세상 속에서는 언제나 人間의 理性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해 왔다. 온갓 삶을 편하게 부요 하게 하기 위한 수완들은 언제나 하나같이 인간을 비극으로 쳐넣었다.(다이나마이트, 핵, 그리고 지금은 유전자 공학이 또 그럴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재미없는 삶의 방식으로 치부되어져 왔고 오늘도 여전히 그렇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을 의지해 왔던 역사 속의 인물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그 상황이나 형편에 관계없이 최고의 삶의 감격을 고백하고 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4~5)는 바울 사도의 권면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순종으로 주님의 능력의 역사를 경험하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