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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 귀한 은혜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서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4:2)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본문의 내용은 마09:09-13; 막02:13-17에도 함께 기록되고 있는 내용이면서 복음에 반응하는 죄인들의 반응과 진정한 회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그림을 보는 듯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주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사악한 세상에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진리를 안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오히려 메시아이신 주님을 거절하고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힘쓰시는 예수님의 사역에 언제나 방해하는 존재로 나타나는 것을 신약 성경에서 자주 자주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오늘의 주인공인 레위는 당시 세관에 앉아서 동족을 착취하고 자신의 민족들의 혈세를 거두어서 로마에 바치고 뒷주머니를 차고앉아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삭개오와 같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이스라엘 동포들로부터는 매국노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이러한 삶에 더 이상 매력을 잃고 있는 가운데 어느 사람이나 차별 없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초청에 응하여 마침내는 복음서를 기록하는데 까지 하나님의 나라에서 귀중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바로 마태복음이다.
또 이러한 레위의 삶의 변화는 주변에 같은 천대를 받고 죄인취급을 당하며 살던 사람들에게 소망과 기쁨이 되었다. 우리는 이 레위의 삶의 변화가 순간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믿음의 진전으로 나중에 성령의 능력과 더불어 초대 교회의 귀중한 일꾼으로 주님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증거하고 주님의 행적을 책에 기록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하는 소중한 하나님의 도구로 남는 것을 상고하면서 오늘 같은 은혜 속으로 불림 받은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주님의 구원 사역의 효력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인류의 모든 죄를 의식하지 못하고 버려진 자들과 과거의 삶이 어떠했든지 복음을 기쁨으로 환영하는 모든 겸손한 자들이 누리게 됨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2)[마, 막에서는 단순히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되어 있다.] 흔히 우리가 읽고 전하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에 감화를 누리지 못한다면 참으로 가련한 인생이 될 것이다.
성경은 이세상의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한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했고 다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죄인 됨을 의식치 못하는 지옥의 자식들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를 의지하면서 기꺼이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는 용서받은 죄인들이 있다. 그래서 절망의 선언 뒤에는 은혜의 음성이 들린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3:24~25)
당연히 죄의 값인 사망의 선언 뒤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준비되어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Ⅰ.레위 같은 회개로 사는가?(27~28)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그의 과거의 삶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기에 충분한 하나님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동족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할 만큼 죄 가운데 있던 사람이었다. 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그를 필요로 하시고 부르셨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만큼 예수임의 보혈이 효력이 미치지 못할 만큼의 죄인은 적어도 하나님 앞에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바리세인들의 비난에 답변으로 말씀하신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2) 것처럼 언제나 주님은 죄 중에 있는 영혼을 긍휼과 은혜로 불러내시는 것이다. 레위는 기도하거나 삶을 고치려고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때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338:1]"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2]"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영혼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라고 찬양할 분이다.
1.절대적 순종을 본다.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27b)
그는 과거의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 먹고 쓰기 위해서 가졌던 직업, 사람들이야 조롱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안락할 수 있었던 위안도 이제는 주님의 부름 앞에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오직 사랑의 주님께서 "나를 좇으라"는 음성만이 그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른 것들은 몰라도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지체치 않는 것들만은 분명히 모범이 된다. 때로는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베드로, 안드레(마4:20)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야고보, 요한(마4:22)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베드로(눅5:11)
어떤 면에서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학식과 지식이 있어 존경받고 자기 위치가 확고한 사람들이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 재보고 저것 헤아려보고 주저했을지 모른다.
주님은 단순한 순종을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비교한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것이다.
2.과거의 모든 것을 버렸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의 뒤에는 아직도 확실한 재산 증식의 방법인 "세리" 라는 직업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위는 좋건 궂건 과거의 이 모든 것을 다 뒤로 두고 새로운 벤처를 시작했다. 신앙은 분명히 모험이고 도전이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은 과거의 죄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끊어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믿음생활이 조금 소원해 지면 다시 과거의 것을 찾는 어리석음을 보는데 이것을 가리켜 베드로 사도는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2:22)
3.죄 가운데서 이제는 일어났다."일어나 좇으니라" 죄의 터전에서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예수께로 올 때 과거의 자리는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해 줄 토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잃어나야 할 자리다. 탕자의 모습에서 역시 같은 모습을 본다. (눅15:18~19)"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죄에 있는 사람을 잡아 일으키지 않으신다. 그 자리에서 주님을 향하여 일어날 때 맞아 주시고 안아주신다. 레위는 분명히 과거의 삶을 완전히 정히하는 모습을 오늘 우리는 배우게 된다.
Ⅱ.레위 같은 감격을 갖는가?(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이점에서 삭개오와 일반이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19:5~7)
구약의 엘리사도 자신의 농사일을 정리하고 주님을 위해 엘리야를 따라 나설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왕상19:21)
천국은 분명히 잔치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사실 잔치다. 그래서 진정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자들은 기쁨과 감사가 동반되는 삶을 산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의 순간부터 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이다. 그것은 술과 고기와 떡으로 즐기는 잔치가 아니라 생명의 말씀과 성령의 술로 채워지는 만족이다. 바울은 가르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그래서 육신적으로 즐거우나 괴로우나 기쁨과 감사가 함께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모두에게 이러한 잔치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열매는 오로지 이것을 위해서 있었다. 죄에 찌들고 마귀의 간교한 유혹에 넘어가 범죄하여 괴로워하며 앞에 닥쳐올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히2:15)을 자신의 피로 씻어 천국의 잔치에 참여시키는 이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 오셔서 수치를 당하시고 피를 흘리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이 천국에서 큰 기쁨이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
우리의 변화된 삶을 보시는 주님은 또 우리로 통해서 죄인 한 사람이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을 보시며 "그래 내가 이를 위해서 십자가를 졌지...!" 하시며 기뻐하실 것이다.
Ⅲ.사단의 참소는 끝이지 않는다.(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속담에도 호사다마(好事多魔) 라고 했듯이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에도 마귀는 여전히 그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 감격과 영광에 찬물을 끼얹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는 직접 대항하지 못하고 제자들에게 생트집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마귀의 간교한 교란은 언제 어디에서나 끊이지 않는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 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 하던 자'가 쫓겨났고"(계12:10) 하나님의 성령은 큰 죄를 용서받았다고 감사해 하고 겸손해 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마귀 사단은 항상 자신만을 의인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 하면서 교만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
한 영혼이 구원받는 일에 마귀의 방해 공작도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에는 못 미칠지라도 대단히 강하게 방해하는 것을 더러 느낀다. 그래서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은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하면서 구원 사역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
Ⅳ.죄인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3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우리는 누가복음 18:10~14에서 귀중한 예수님의 기도의 비유를 듣게 된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①바리새인이요 하나는 ②세리라, ①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②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저주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친히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나 중요 한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자만이 죄로 인한 사망의 저주에서 낳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나니" 라는 말씀은 그래서 귀중하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예수님 없이는 죄인일 수밖에 없는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과 십자가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용서받은 죄인임을 시인하고 계속해서 겸손으로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런 자로 살 때 주님은 변함없이 은혜를 주실 것이다. 지금도 용서받은 죄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회개의 삶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죄의 유혹보다는 천국의 기쁨을 더 사모하며 사단이 어떤 간교한 유혹을 쉼 없이 계속할지라도 주님을 순종하고 용서받은 죄인으로 아직도 죄 속에 있는 이웃과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제이 제 삼의 레위와 삭개오가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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